"방송 통해 진심 전해지길"…엄마에게 보내는 입양인의 편지

YTN 2024. 5. 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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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동포에게 친가족과의 재회는 기적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희박한 확률을 뚫고 기적처럼 가족을 찾더라도, 한국 가족이 만남을 거절하는 등 저마다의 사연으로 재회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미국 입양동포가 연락이 닿지 않는 친어머니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저는 한인 입양인이에요. 한국 입양인이에요. 가족 찾기 여정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시도했지만,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약혼자와 미국 뉴욕에서 살며 일하고 있습니다."

날 힘들게 했던 '정체성 혼란' 넘어 '입양인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다…

[문정현 / 미국 입양동포 : 입양인으로 살면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동양인이라고) 놀림을 많이 당했죠. 그러다가 자라면서 진짜 나를, 그리고 내 출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한국을 다시 찾아간 것도 도움이 됐어요. 한국이 단지 지도에서만 보던 곳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이 있는 나라고, 제가 이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저는 지금 특수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요. 일하지 않을 때는 여가 활동으로 영화에서 연기도 하죠. 그동안 규모가 작은 광고에도 몇 번 출연했고, 국내 영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단편 영화 등에 여러 번 출연했어요.]

'엄마 찾아 삼만리'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고향 통영, 구석구석 수소문

[문정현 / 미국 입양동포 : 입양 서류에는 제가 통영에서 태어났고 친모는 거제 출신이라고 나와 있어요. 친모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했죠. 친부에 대한 기록은 없어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요. 2019년, 처음 한국에 갔을 때 통영에도 방문했어요. 그때 하루 반나절 이상을 걸으면서 통영을 둘러봤죠. 버스를 오랫동안 타고 통영에 도착했을 때,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여기에서 자랐을 수도 있겠구나' 였어요. 당시 같이 간 입양인 친구와 동네를 걷는데, 마침 학교에서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 학교를 보면서 '우리도 여기 다녔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2022년에 다시 한국에 왔을 때 가족 찾기를 더 자세하게 할 수 있었어요. 한국인 친구들과 같이 마을회관, 초등학교 등을 찾아다녔고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여성하고도 연결됐어요. 거제 한 마을의 노인분도 만났어요. 그 마을은 친모의 성인 '문'으로 시작하는 여성이 사는 마을이었어요. 정말 거제의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며 문 씨 성을 가진 여성이 있는지 찾으러 다녔죠.]

친모 추정 여성 찾았지만, 연락 두절 "가족 찾기는 본능이라는 점 이해해주길"

[문정현 / 미국 입양동포 :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꿈만 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제가 친모를 찾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사람들과 연결해줬고 결국에는 친모로 추정되는 분을 찾아냈어요. 친모일 수 있었을 텐데 그분은 과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친모로 추정되는 분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과거를) 받아들이기 싫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제 생각에는 만약 그분이 친모가 정말 아니었다면 확실하게 '나는 찾는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 같아요. (가족 찾기는) 본능이에요. 사람이라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누군가를 보면서 '우리는 이 점이 비슷하구나', '나는 이 부분을 당신에게서 물려받았구나' 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당신을 위해 배운 한국어 "방송 통해 진심 전해지길 바라요"

[문정현 / 미국 입양동포 : 당시 시대적 배경이라면 어머니가 영어를 배우지 못하셨을 거예요. 그 이후로 한국에 사시면서 영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겠죠. 그래서 통역사 도움 없이 어머니와 직접 기본적인 의사소통이라도 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그저 당신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과거 내렸던 결정이 당신을 오랜 시간 괴롭혔을 것 같아요. 아이를 포기해야만 했던 엄마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거든요. 저는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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