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연출하고 출연자 섭외·편집까지… “발전 가능성 무서워” [S스토리-문화계로 뻗어간 AI]

송은아 2024. 5. 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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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제작 등 최전선서 활약
거문고 명인과 협연하고 작곡 참여도
미술계선 이미지 생성 후 작품에 활용
음성·영상제작 등 문화계 대혁명 예고
전문가 “완벽하진 않지만 가능성 커”
생성형 AI의 강점 ‘비용·의외성’ 평가
문화 확산의 생산·효율성 증대 기대
“얼마나 다룰줄 아느냐가 미래 결정”
인공지능(AI)이 악보 없이 음악을 이해하고 즉흥적으로 사람과 협연할 수 있을까. 거문고 명인 허윤정 서울대 교수가 지난달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연 ‘즉흥, 발현하다’ 공연은 이 답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허 교수가 무대에 홀로 앉아 현을 뜯자 AI가 다른 음을 이어갔다. 그의 손이 빨라지며 가락이 고조되니 AI도 복잡한 선율을 얹어 화음을 만들어냈다. AI임을 알고 들으니 ‘다소 단순하다’ 싶었지만, 사전 정보가 없다면 두 사람의 무대로 오해할 만한 수준이었다.
AI에 연출·진행 등을 맡긴 MBC 예능 'PD가 사라졌다!'. MBC제공
‘인간성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문화 창작에 생성형 AI가 전방위로 침투하고 있다. 무대에서 인간의 거문고 음에 맞춰 연주하는 것은 물론 AI가 작곡한 곡이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배우·스태프 하나 없이 AI로 단편영화를 만드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방송에서는 AI가 전방위로 활약한다. AI가 유명 가수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커버송도 온라인에서 인기다. 문화계에서는 창작하는 AI를 ‘예정된 미래’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파급력이다.

◆어느새 곁에 온 AI 창작물

글을 쓰고 음성·영상을 만들 줄 아는 AI는 문화계 전반에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적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지난달 “언젠가는 첨단 AI 시스템이 감독의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나오고 있다.

생성형 AI 스타트업 프리윌루전 대표인 권한슬 감독은 AI만으로 3분짜리 단편영화 ‘원 모어 펌킨’을 찍었다. 이 작품은 올해 2월 말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원 모어 펌킨’에는 배우, 성우, 카메라·녹음·조명 등 제작 인력이 전혀 투입되지 않았다. 무료 AI 프로그램과 컴퓨터만으로 200살 넘은 부부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내용의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제작 기간은 5일에 불과했다.

방송계는 AI 활용의 최전선에 있다. 올해 3월까지 방송된 MBC 예능 ‘PD가 사라졌다!’는 AI가 연출했다. 출연자 섭외부터 진행, 편집, 출연료 산정을 모두 AI가 했다. KBS는 이달 10일 AI와 인간 가수 중 누가 노래를 불렀는지 가려내는 파일럿 예능 ‘싱크로유’를 방송한다. 뉴스·교양 프로그램에서 AI가 앵커나 진행자로 나선 지는 이미 오래다.

가요계도 AI 파고를 실감하고 있다. 올해 전남교육청이 연 ‘글로컬 미래교육 박람회’ 주제가 공모전에서는 AI가 작곡한 노래가 최종 선정됐다. 당시 심사를 한 작곡가 김형석은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위로 뽑힌 곡이 제법 수작이었으나 주최 측으로부터 오늘 AI를 사용해 만든 곡이란 통보를 받았다”며 “이걸 상을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라고 난감해했다.

미술계 역시 AI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난달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노상호 작가 개인전에서는 AI가 창작에 참여했다. 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AI 프로그램 ‘미드저니’에 입력해 이미지를 생성시킨 후 작품에 활용했다.
◆AI의 창작력, 발전 가능성 커

생성형 AI를 써 본 이들은 “지금은 완벽하지 않지만 발전 가능성이 무서울 정도”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시각특수효과(VFX)에 참여한 미국 웨타FX의 김승석 시니어 페이셜 모델러는 “AI의 단점은 작업하면서 내가 원하는 부분만 고치고 싶을 때 결과물이 정확히 안 나오는 것”이라며 “한 시간 이상 클릭클릭하다가 결국 ‘내가 하고 말지’ 이렇게 된다”고 전했다.

허 교수는 “즉흥 연주는 인간의 즉흥성·원초성을 담은 음악이라 AI와 가장 대척점에 있다”며 “이번 공연에서 AI는 아직 열심히 보살피고 키워줘야 하는 음악적 어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영화 ‘원 모어 펌킨’ 역시 배우의 동작이 단순하고 입 모양은 더빙한 듯 어색하다. 피부 표현도 다소 인공적이다. 권 감독은 “인간의 세밀한 움직임을 AI가 조작하지 못하는 등 영화 퀄리티로 보면 당연히 아직 부족하다”며 “오픈AI의 ‘소라(Sora)’는 실사 촬영과 구분이 안 될 정도라, 앞으로 ‘소라’가 일반에 공개되면 기존 기술을 뒤엎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소라’의 뛰어난 능력은 미국 배우 윌 스미스가 스파게티를 먹는 영상에서 단적으로 보여진다. 1년 전 AI 프로그램 ‘런웨이’가 만든 영상에서는 윌 스미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엉망이지만 올해 ‘소라’가 만든 같은 내용의 영상은 실제 배우가 출연했나 싶을 만큼 정교하다.

‘PD가 사라졌다!’를 기획한 MBC 최민근 PD는 “이 프로그램 촬영을 지난해 9월 했는데 이후 6개월 사이 AI가 엄청나게 진화했다”며 “지금 다시 보면 몇 년 전 방송 같다”고 말했다.
◆“AI 쓸 줄 아느냐가 미래 가를 것”

생성형 AI의 강점은 비용과 의외성이다. 권 감독은 “AI로 전체 영화 제작비의 90% 이상을 절감한 듯하다”고 밝혔다. 최 PD 역시 “‘PD가 사라졌다!’를 찍을 때 작가가 없었고 카메라 감독 수가 반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오픈AI는 디자이너, 영화 제작자 등과 ‘소라’로 만든 영상 7편을 공개했다. 여기에 참여한 영화감독 폴 트릴로는 “시간, 돈, 다른 사람의 허락에 구애받지 않고 대담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비용이 덜 든다는 건 인건비가 적게 지출된다는 뜻이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침식하리라는 전망은 새삼스러울 것 없다. 권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는 무성에서 유성, 흑백에서 컬러로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변화했다”며 “‘뭔 디지털카메라로 영화를 찍냐’고 했던 분들이 다 사라져 갔듯 (AI라는) 신진 문물을 받아들인 신흥세력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문화계 관계자들이 우려하는 점은 일자리 실종이 아닌 ‘AI에 능숙한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을 밀어내는 현상’이다. 최 PD는 “AI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저 의존하는 사람으로 나뉠 텐데 전자는 극소수, 후자는 다수가 될 것”이라며 “AI로 인해 (영상) 창작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크리에이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데이터정책팀 전창영 책임연구원은 “사람이 AI에 의해 대체되는 게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 기업에 의해 대체될 것 같다”며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경계가 생길 수 있기에 공공의 기술·인력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AI는 문화산업의 생산성·효율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며 “관건은 AI의 도움을 받아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3년 전 ‘AI와 음악’이란 수업을 만들었다. 인간과 AI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런 방향 제시 없이 경제논리로만 가면 자꾸 인간을 대체시키려 할 것”이라며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도와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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