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일 벌어졌는데"…하이브 사태가 놀랍지 않은 이유 [노유정의 의식주]

노유정 2024. 5. 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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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사태가 엔터업계서 놀랍지 않은 이유

연간 매출 2조원대, 자산 규모 5조원대 회사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회사와 핵심 자회사 대표 간 갈등이 벌어졌고, 자회사 간 상품 베끼기 논란이 불거졌죠. 회사 시가총액은 1조원 가까이 증발했습니다.

방시혁 의장-민희진 대표 / 사진=한경DB


요즘 가장 큰 화제인 하이브 이야기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의 아버지’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뉴진스 맘’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죠. 법적 공방에 서로 카톡 내용을 폭로하며 원색적인 비방이 난무합니다. 하이브가 사이비 종교 의혹을 받는 단체와 연루돼 있다는 등 각종 루머가 퍼지며 사안은 심각해졌습니다. 지난 3일 간판 그룹 BTS의 팬덤 ‘아미(ARMY)’가 하이브 사옥으로 근조 화환까지 보냈죠.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내부 분쟁이 생겨 설립자였던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회사를 떠난 게 약 1년 전입니다. 당시도 이 전 프로듀서가 걸그룹 가사에 나무 심기 내용을 넣으려 했다는 폭로전이 이어졌죠.

케이팝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 일등을 하고, 전 세계에서 국위선양을 하면서 엔터사들의 실적과 규모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죠. HOT나 빅뱅 같은 아이돌들이 지하 연습실에서 땀흘리던 조그마한 회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엔터사들은 왜 매번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사람이 상품이지만 ‘사람 리스크’에 매번 휘청이는 태생적인 한계를 한국 엔터산업이 극복할 수 있을까요?

 뉴진스 두고 싸웠나

요즘 제일 핫한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는 하이브 소속 레이블 중 하나입니다. 레이블은 독립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하이브가 구축한 체제인데, 자회사 격입니다. 하이브가 어도어 지분 80%를 들고 있고 민 대표가 18%, 다른 어도어 직원들이 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민 대표는 엔터업계에서 누구나 아는 사람입니다. 과거 SM에서 소녀시대와 샤이니, 에프엑스와 엑소 등 다수 아이돌의 컨셉과 브랜딩을 담당했죠. 그가 참여한 에프엑스 앨범 ‘핑크테이프’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유일한 아이돌 앨범입니다. 거기에 뉴진스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죠. 뉴진스가 유일한 소속 가수인 어도어는 지난해 매출 1100억원을 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하이브 측이 민 대표가 어도어 경영권을 탈취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며 감사권을 발동했습니다. 하이브가 가진 어도어 지분 80%를 다른 투자자에 넘기게 하려고 기밀유출 등을 했다는 겁니다. 또 민 대표 측이 어도어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 단독으로 뉴진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고도 하죠.

민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권 탈취는 사실무근이며 다른 게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하이브는 뉴진스를 홀대했고, 뉴진스를 베낀 걸그룹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3월 하이브의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아일릿이라는 여자 아이돌이 데뷔했는데,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했습니다. 그런데 뉴진스와 비슷하다는 반응이 많았죠. 이를 두고 항의했더니 자신을 내쫓으려 한다는 것이 민 대표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처음 나온 4월 22일부터 이틀 동안 하이브 주가가 약 8% 급락합니다. 시총 8500억원이 증발했어요. 같은 엔터주에서 블랙핑크 소속사인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시총이 8000억원대입니다. 회사 하나가 통째로 없어진거죠. 문제는, 당분간 주가를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엔터사, 빛 좋은 개살구?

국내 엔터사들은 성장 신화를 써왔습니다. 2000년대 빅뱅과 슈퍼주니어 등 히트한 그룹들이 아시아와 남미 등을 개척했고, BTS와 YG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그룹이 되면서 북미와 유럽을 뚫었지요.

실적도 폭증했습니다. BTS가 한창 활동한 2021년~2022년께 하이브 연 매출은 40~50%씩 증가합니다. 물론 하이브 측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도 컸지만요. 블랙핑크가 글로벌 투어 한 지난해 YG엔터의 매출도 45% 늘었고, 트와이스랑 스트레이키즈로 선방한 JYP엔터테인먼트도 성장세입니다.

장기간으로 보면 더 놀랍습니다. 지난해 JYP엔터 매출은 10년 만에 3083% 뛰고, YG엔터 매출은 빅뱅 투애니원으로 돈 벌던 10년 전보다 389% 증가합니다. 하이브는 M&A를 감안해도 BTS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16년 빅히트뮤직 매출보다 5950%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매출 2조1781억원 중 빅히트뮤직 매출이 5523억원으로 약 25%입니다. BTS 멤버 일부가 군대에 갔는데도 말이죠.

우리나라에 이렇게 급성장한 산업이 또 있을까요?

 사람에 좌우되는 엔터산업의 한계

보통 대기업에서 자회사 대표가 나간다고 주가가 폭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 대표는 단순 대표가 아니죠. 뉴진스의 콘셉트를 기획한 성공의 주역이며, 뉴진스 멤버들과 사이도 각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때문에 민 대표가 해임되면 뉴진스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지, 행여나 민 대표를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을지 우려가 나오지요.

민 대표만 떠나고 뉴진스가 남더라도 대중은 뉴진스를 볼 때마다 이번 사태를 떠올릴 겁니다. 그리고 민희진의 감각이 없는 뉴진스는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는 사람을 상품화하는 엔터산업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엔터산업은 회사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보다 가수든, 프로듀서든 천재를 한 명 영입하는 게 성공으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팬덤 산업이기 때문이지요. 대신에 ‘사람 리스크’가 커지죠. 불닭볶음면 같은 제품은 개발자가 나가도 회사 제품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요.

엔터사에서 매번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팬덤 때문입니다. 갈대같은 대중  뿐 아니라 핵심 수익원인 팬덤의 마음을 사로잡는 쪽이 경영권이든 아이돌이든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폭로전이 펼쳐지는 거지요.

사진=뉴스1

 엔터주 펀더멘털, 회복 가능할까

사람만 보고 투자하는 엔터주는 투심이 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2년 6월 BTS가 팀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는 발표를 한 날에 하이브 주가가 25%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이날 시총이 2조원 빠졌어요. 이때 bts가 하이브 실적 70%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와이지엔터는 지난해 말 블랙핑크 그룹 활동 재계약에 성공했는데, 아직 활동이 없습니다. 올 들어 와이지 주가 15% 정도 떨어졌죠. 올해 연 매출은 지난해보다 20% 깎일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엔터주 주주들의 투자방식을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주주들은 회사 공시보다 연예인 일거수일투족만 바라보죠. 최근에 SM엔터 걸그룹인 에스파 멤버의 열애설이 나왔을 때 에스엠 주가가 3% 넘게 빠졌습니다.

하이브 사태가 케이팝의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하이브나 SM 사태를 보며 대중도, 투자자들도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엔터사의 민낯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엔터주 투자할 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기획·진행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촬영 박수영·이종석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박수영·이종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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