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구장에만 존재하는 ‘필승 코스’가 있다? 잠실 라이벌전 지배하는 ABS
[잠실=뉴스엔 안형준 기자]
ABS가 잠실 라이벌전을 지배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는 5월 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경기에서 3-2로 승리했다. 연이틀 승리를 거둔 두산은 올시즌 잠실 라이벌전 전적을 4승 1패로 만들며 절대적인 우위를 이어갔다.
두산은 시리즈 1차전에서 6-4 승리를 거뒀다. LG 선발 엔스를 상대로 5점을 얻었고 마운드가 고비마다 실점을 최소화하며 승리했다.
선발 김유성이 강판된 4회말은 승부처였다. 두산이 5-1로 앞선 상황이었지만 LG 타선은 2사 후 득점권 찬스를 만들며 두산 불펜을 압박했다. 하지만 찬스에서 이병헌이 홍창기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LG의 흐름을 끊었다.
홍창기가 삼진을 당한 공은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온 시속 147km 직구. 이병헌의 '반대투구'였다. 그리고 좌타자가 사실상 제대로 타구를 날릴 수 없는 코스였다. 홍창기는 ABS 존에 대해 불만을 표했지만 정해진 존을 기계가 정확히 판독한 것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이날 경기에 앞서 두산 이승엽 감독은 전날 경기를 돌아보며 "운이 따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ABS 덕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엽 감독의 생각으로도 홍창기를 잡아낸 공은 '운좋은 스트라이크'였다는 것이다.
또 이승엽 감독은 "타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쳐야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우리 타자들도 그렇게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승엽 감독은 현역시절 한국야구 최고의 좌타자였던 전설. 그런 이 감독의 눈에 ABS 존은 '인정할만한 스트라이크'보다는 '규정이니까 따라야하는 것'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KBO는 모든 구장의 ABS 존이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은 다르다. 벌써 각 구장마다 ABS 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현장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각 구장마다 구조의 차이가 있어 ABS 카메라가 설치된 위치가 다르고 이로 인해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 특히 잠실구장은 '좌타자 몸쪽'에 후한 판정이 내려진다는 것이 현장의 의견이다. 홍창기가 삼진을 당한 바로 그 방향이다.
1차전에서 그 공 하나가 흐름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일까. 2차전은 '바로 그 코스'가 사실상 경기를 지배했다. 양팀 투수들은 어떻게든 그 코스에 공을 던지려고 경기 내내 시도했다. 타자들 역시 그 코스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ABS 존은 야구 규칙이 규정하는 스트라이크 존보다 좌우가 넓다. KBO는 ABS 존을 설정하며 기존 KBO 심판원들의 스트라이크 존을 감안해 규정상의 S존보다 좌우로 2cm를 더 넓게 설정했다. 안그래도 규정보다 넓은 ABS 존에서 잠실구장은 좌타자 몸쪽으로 더 존이 넓다는 느낌을 현장에서 받고 있다.
정확한 측정값이 아직 나오지는 않고 있지만 원래 S존보다 2cm가 더 넓고 여기에 '+@'가 더 넓다는 현장의 느낌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그 ABS존에 걸치는 공은 타자들이 기존의 타격 위치에서는 제대로 쳐낼 수가 없는 공이라고 볼 수 있다. 좌타자의 경우 지나치게 몸쪽으로 붙는 공이고 우타자의 경우 지나치게 바깥쪽으로 먼 공이기 때문이다. 타자들 입장에서는 '건드리는 것이 고작'인 공인 셈이다.
실제로 넓은지는 확실치 않지만 모든 선수들, 코칭스태프들까지도 넓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잠실구장에는 타자가 무조건 당할 수 밖에 없는 스트라이크 코스가 있다'는 강한 인식이 생긴 것이다. 투수 입장에서는 '필승 코스'인 만큼 어떻게든 그 곳에 공을 던지려 하는 것이 당연하고 타자 입장에서는 그 코스로 들어오는 공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날 양팀 투수들은 좌타자의 몸쪽, 우타자의 바깥쪽을 공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두산 선발 최준호는 1회말 초구부터 그 코스를 노리고 던지다가 LG 리드오프 홍창기를 맞힐 뻔하기도 했다. 홍창기는 이날도 '그 코스'를 공략한 공에 당했고 두산 측에서는 양석환, 강승호 같은 우타자들이 지나치게 먼 공에 스트라이크 콜이 나온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타자들이 특정 코스의 공을 의식해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는 모습도 여러차례 나왔다.
ABS가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심판이 직접 판정할 때는 정확히 같은 코스의 공을 두고도 판정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ABS는 적어도 타자의 키가 같다면 스트라이크 존도 정확히 동일하게 적용된다. 양측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공정성은 확보한 것이다. LG 염경엽 감독처럼 '적어도 ABS는 공정하다'고 ABS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정함은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가치. 하지만 공정함만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를 치르는 현장이 제대로 납득할 수 없는 요소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KBO의 주장처럼 구장마다 ABS 존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이는 그저 처음 도입된 규정이 생소한 현장에서 느끼는 착오, 해프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사실이 아니다'는 말만으로 혼란을 잠재울 수는 없다. 이는 ABS 존에 대한 현장의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말 ABS 존이 모든 구장에서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KBO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를 현장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어보인다.(사진=홍창기/뉴스엔DB)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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