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산양이 남긴 1090개 죽음의 기록 [고은경의 반려배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왜 죽었는지를 아무도 몰라요. 알려고도 하지 않고요."
올겨울 설악산과 강원 화천군 및 양구군 일대를 무려 24번 찾아 3만여㎢에 걸쳐 산양을 조사한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의 말이다.
그럼에도 산양이 왜 이렇게 떼죽음을 당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산양 10마리 중 6마리는 탈진해 굶어 죽었고, 앞서 언급한 화천군과 양구군의 경우에는 아사 비율이 무려 77.4%에 달한다는 점(본보 4월 18일 보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 죽었는지를 아무도 몰라요. 알려고도 하지 않고요."
올겨울 설악산과 강원 화천군 및 양구군 일대를 무려 24번 찾아 3만여㎢에 걸쳐 산양을 조사한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의 말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에게 지난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지난달 중순까지 무려 750마리가 목숨을 잃었는데 발견되지 않은 죽음을 포함하면 실제 사망 수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태어나서 지금껏 산양을 본 적 없는 기자가 올해 2월 말 6시간 동안 설악산 일대를 돌며 만난 산양만 무려 40여 마리다. 폭설로 인해 도로 근처까지 쫓겨 내려온 것이다. 산양은 사람들과 눈싸움을 하듯 응시했지만 실은 힘들어도 도망가야 할지, 자리를 일단 지켜야 할지 온갖 고민을 했을 테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41714550002697)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0615230005712)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2517110001458)
올해 산양이 어디서 얼마나 죽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19년부터 올해 2월까지 문화재청으로부터 멸실(사망)신고 기록을 받아 보았다. 어떤 분석도 돼 있지 않은 엑셀 파일이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연도별, 지역별로 자료를 분류했고, 545마리 중 416마리(76.3%)가 화천군과 양구군에서 죽었음(본보 3월 7일 보도)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또 이 지역에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와 농가가 친 울타리가 집중돼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부가 주장하는 폭설 이외에 울타리가 산양의 죽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산양이 왜 이렇게 떼죽음을 당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해당 기간 접수된 멸실 신고서를 받아 보았다. 하지만 파일을 받아 보고는 행정편의주의에 깜짝 놀랐다. 마리당 멸실 신고 내용이 담긴 파일과 사진이 첨부된 파일 2개로 구성돼 있어 총 1,090개의 파일을 일일이 열어 봐야 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활동가들과 함께 일일이 사체로 발견된 산양의 추정연령, 성별, 사망 원인 등을 분류해 분석했다. 하지만 작성기관이나 작성자에 따라 내용 편차가 커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산양 10마리 중 6마리는 탈진해 굶어 죽었고, 앞서 언급한 화천군과 양구군의 경우에는 아사 비율이 무려 77.4%에 달한다는 점(본보 4월 18일 보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민단체와 정부의 자료를 분석하면서 왜 정부가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을 언론과 시민단체가 힘들여 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도 났다. 요즘 같은 첨단 기술 시대에 앱(응용소프트웨어)으로 제대로 분류해 입력하게만 해도 됐을 텐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환경부는 최근 ASF 차단 울타리를 부분 개방하기로 하고 이를 사회관계장관회의에 보고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부분 개방 정도가 미약해 벌써부터 효과를 나타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말 못하는 산양의 죽음은 자칫 묻힐 뻔한 파일로만 기록돼 있었다. 울타리 개방과 함께 이제라도 그들이 남긴 기록을 철저하게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산양의 소리 없는 외침이 곧 개원하는 제22대 국회에도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산양의 죽음을 방관한 관계기관에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8㎏ 둘째 낳고 떠난 아내… 남편도 의사도 함께 울었다 | 한국일보
- "보기와 달리"...미주, 방송 중 ♥송범근 직접 언급 | 한국일보
- "개인카드로 경호팀 식사 챙겨"...장민호, 미담 터졌다 ('편스토랑') | 한국일보
- '채 상병 특검법' 표결 불참 안철수 "다시 투표하면 찬성표 던질 것" | 한국일보
- 임영웅, '온기' 뮤비서 선보인 감성 연기 | 한국일보
-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공수처 소환…'VIP 격노' 등 질문엔 침묵 | 한국일보
- 이원석 검찰총장 "디올백 사건 전담팀 구성·신속 수사" 지시 | 한국일보
- 2세 아들 앞에서 살해된 엄마, 25년째 범인 쫓는 아빠 | 한국일보
- "은퇴까지 고민"...이무진, 깜짝 심경 고백 ('송스틸러') | 한국일보
- '비계 삼겹살'에 제주지사 "식문화 차이"… 누리꾼 "비계만 먹는 문화라니"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