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DMZ 남북 연결도로 지뢰 매설이 심상치 않은 이유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난센스 퀴즈 하나. 짜장면을 먹으려면 중국집에 가고, 초밥을 먹으려면 일식집에 가는데 평양냉면, 함흥냉면을 먹으려면 어느 집으로 가야 할까? 정답은 조선집이다. 냉면은 냉면집에 가야지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하지만 20~30년 후에 '남북관계'가 아니라 '한조(한국-조선)관계'라는 말이 일반화하는 시대가 혹시 오면 마땅히 조선집에 가서 냉면을 먹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음식을 하는 조선집 말이다.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도 모두 남의 나라 음식 조선냉면으로 부르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로마의 카르보나라, 볼로냐의 볼로네제, 나폴리의 나폴레타나를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이탈리아 파스타로 통칭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상상의 시작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비롯했다. 2023년 12월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그는 "북남(남북)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말했다. 2024년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발언은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1991년 체제'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시도다. 1991년 9월에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하며 국제사회에서는 두 개의 주권 국가로 존재함을 공식 확인했다. 동시에 그해 12월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해 서로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해 내부적으로는 두 개의 주권 국가 사이가 아님을 확인했다.
'남북 특수관계' 규정한 '1991년 체제' 흔들
이로써 남북은 '남북한 특수 관계'라는 한 기둥과 '국제적 일반 관계'라는 또 다른 한 기둥이 떠받치는 '1991년 체제'를 구성했다. 1991년 체제에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사람이 오갈 때 출입국이 아닌 '출입경'이라는 용어를 썼고, 물품이 오갈 때는 수출입이 아니라 '반출·반입'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도 남북한은 유엔에서는 두 개의 의석을 가진 개별 주권 국가로 활동했다. 그렇게 30년 이상이 흘렀다. 그러던 중 김 위원장은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왔다. 1991년 체제의 중대한 변곡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언제부터 남북한이 더 이상 특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김정은 시대에 우리민족제일주의가 아닌 우리국가제일주의가 대두된 점을 보면 속으로는 애초부터 통일이나 남북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언명만 보아서는 2019년 이후 남북관계의 효용성에 대해 본격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2019년 10월 금강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를 내리며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남북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인식이 있음을 보여준 표현이었다.
2019년 2월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불발 이후 남한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의구심도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김 위원장의 평가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때마침 2020년 초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구체적으로 다시 진전될 여지가 없었고,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급기야 정면 돌파와 강 대 강, 선 대 선 기조를 선언했다.
2022년 이후 한미연합훈련이 계속 확대되고 한·미·일 안보 협력도 강화되자 북한은 남북관계에 기댈 여지가 없다는 점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해 8월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남한 당국에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2023년부터는 남한을 '남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 칭하며 두 국가 인식을 표면화했다.
그리고 2023년 말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정리했다. 국력 경쟁에서 이제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남한에 대해 아예 단절을 선언하는 동시에 핵을 가지고 미국을 상대할 수 있는 전략국가로서 남한과는 다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우월감이 뒤섞이면서 모순된 현실의식이 질서 없이 터져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뒷받침할 작업들이 착착 진행되는 모습은 결코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비롯한 대남 기구 정리는 물론이고 다음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북한 헌법에서 '평화통일'이나 '민족 대단결' 같은 표현도 일체 삭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북한이 DMZ 내 남북 모든 연결도로에 지뢰를 매설하기까지 했다고 우리 군 당국은 전했다. 북한은 남북한 특수 관계에 대한 부인을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하나하나 옮기고 있다. 단순한 전술적 변화가 아닌 전략적 변화로 적대적 두 국가론을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남북관계 골든타임, 2년도 채 안 남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전략적 변화인지 아닌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2026년 초 제9차 당대회가 될 것이다. 일당독재 국가인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결정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최종 효력을 가진다. 이때 당 규약에 적대적 두 국가론을 완전히 명문화한다면 1991년 체제는 사실상 그리고 규범상 마감하는 수순을 밟을 공산이 크다. 이때까지가 남북한 특수 관계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우리나라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중간 단계로 내세우고 있는 남북연합도 두 국가를 이미 전제로 하고 있는 개념인데, 이는 평화적 두 국가를 의미한다. 북이 적대적 두 국가를 얘기했다면 우리는 이미 20세기부터 선언했던 평화적 두 국가의 공존과 신뢰 구축을 재확인하고 이 단계를 거쳐 통일로 간다는 꺾이지 않는 의지를 다질 필요가 있다. 보수·진보정권 모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공식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중요한 건 역시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그리고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도 모두 계속 우리 민족의 음식으로 남아있어야지 남의 나라 음식 조선냉면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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