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동포 정착 도움…LH 고향 보금자리 제공 [이지민기자의 하우징]

이지민 기자 2024. 5. 4. 12:0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돼 러시아 사할린에 이주, 역사적 아픔을 한평생 가슴속 깊은 곳에 품고 살아야만 했던 사할린동포의 고국 정착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이한준. 이하 LH)가 나섰다.

우리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사할린 탄광, 벌목장, 군수공장 등에 강제로 동원돼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할린동포들은 독립 이후 일본이 패전하면서 귀향을 꿈꿨지만, 노동력이 필요했던 소련의 반대에 부딪혀 귀국을 하지 못한 채 이들은 사할린에 남겨지게 됐다.

시간이 흘러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정부는 소련과의 친선우호 화평을 도모했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할린동포를 송환하기 시작했다. 20여년에 걸쳐 고향인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사할린동포는 전체 4만3천여명의 10분의 1가량인 3천500명으로 집계됐다.

LH는 사할린에서 평생을 보낸 우리 동포가 고국인 대한민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우며 이들이 불편함 없이 대한민국에서의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특히 LH경기남부지역본부는 안산 고잔1단지 LH 고향마을 아파트를 조성, 다소 낯설 수 있는 한국살이를 동향이자 동포와 함께할 수 있도록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 이들의 적응을 돕고 있다.

80여년 전 머나먼 이국 땅 사할린으로 이주한 사할린동포와 동반가족에 새롭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돼 주고 있는 LH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를 찾아 평생을 그리던 조국에서의 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대한민국에서의 삶,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안산 상록구 고잔1단지 LH 고향마을 아파트 단지 전경. LH경기남부지역본부 제공

4일 안산 상록구 고잔1단지 LH 고향마을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내리쬐는 햇빛 속에도 살랑이는 바람을 맞기 위해 단지 내 정자에 모인 이곳 거주민 사할린 동포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간단한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또 눈이 닿는 곳마다 쓰여진 러시아어도 이 단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는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시범 사업지로, LH는 사할린 한인전용아파트를 건립, 지난 2000년 2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현재 489세대 약 760여명의 사할린동포와 동반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입주민 배씨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사할린을 거쳐 현재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에 뿌리를 내렸다. 1943년 당시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춥고 먼 사할린에 강제 이주된 배씨는 수십년간 사할린에 살면서도 고향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66살이라는 지긋한 나이가 돼서야 밟게 된 한국 땅, LH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에서 배씨는 두 번째 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2009년 한국으로 와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사할린동포 주후춘씨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지민기자

배씨처럼 사할린에서 이주해 온 주후춘씨(79)도 한국 땅을 밟은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주씨는 2009년 11월6일 한국에 들어와 충북 음성을 거쳐 장모가 살고 있는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가족 같은 사할린동포와 함께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는 주씨는 4년 전부터 노인회장을 맡아 언어가 서툰 동포를 도우며 지내고 있다. 주씨는 “부모님을 따라 사할린으로 이주했던 세대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일가친척이 많이 없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사할린동포 전용 아파트인 LH 고향마을 아파트에는 사할린 생활을 했던 이웃들이 있어 동질감이 형성되고 걱정보다 빠르게 녹아들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할린에서도 동포 대부분은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며 “가슴 아픈 일제강점기 역사의 희생자인 우리에게 따뜻한 눈길과 관심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머나먼 사할린동포에서 이웃이 되기까지

안산 고잔1단지 LH 고향마을 아파트 내부. LH경기남부지역본부 제공

LH는 이들처럼 영주귀국한 사할린동포를 대상으로 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영주귀국 및 정착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국내에 정착한 사할린동포는 총 5천86명이며, 이 중 사망자 등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는 3천여명이다. 초기 영주귀국자를 대상으로 펼친 정부의 사할린동포 주거지 지원안은 2021년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따라 이주비용 및 생활·주거지원으로 확대됐다.

이에 LH는 이들의 국내 거주 희망 지역 등을 반영해 2000년부터 시행해 온 임대주택 주거 지원을 확대해 운영 중이다.

영주귀국 동포들은 귀국에 필요한 운임 및 초기 정착비, 거주 및 생활 시설에 대한 운영비, 임대주택 등의 지원을 받는다. 입국 동포들은 전국 각지 거주 예정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들의 한국 생활 적응과 정착을 위한 지원 캠프를 운영한다. LH가 20여년간 이들에게 제공한 주거공간은 총 2천169세대에 이른다.

대한적십자사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시 중단됐던 ‘사할린 동포 일시 모국 방문 지원사업’을 4년 만에 재개했다. 사할린동포와 그 가족들은 지난 3월부터 속속 귀향길에 올랐으며, 261명의 동포가 추가 입국할 예정이다. LH 역시 추가 주거지원 계획을 수립, 올해 영주귀국을 신청한 131세대의 임대주택을 확보해 연내 모든 세대의 계약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 단순 주거지가 아닌 공동체 마을이 되기까지

LH고향마을 아파트내 공용시설. 이지민기자

안산 LH고향마을 아파트 단지는 사할린동포를 위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있다.

우선 LH는 고령인 거주자들의 생활방식에 맞춰 아파트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넓게 설계했으며 손잡이를 설치, 거동이 불편한 거주민이 보다 편한 이동이 가능토록 했으며 주거공간은 전용면적 49㎡에 방을 1개 내지 2개로 구성해 1인 또는 소규모 가족이 머물기에 적당하다. 게시판에는 모든 공지사항이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기재돼 있어 우리말이 서툰 동포를 위한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또 LH는 지난 2022년 단지 환경 개선을 위해 거주자의 의견을 반영, 공용공간인 체력단련실과 노인정의 환경개선 공사를 시행, 고령자 맞춤형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입주민 연령 등을 고려한 안마용품, 재활·일반운동기구를 교체했다.

안산 고잔동 사할린동포 전용 아파트인 고향마을 아파트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된다. 고향마을 복지관 제공

이와 함께 단지 내에 영주 귀국자들의 생활을 돕는 영주귀국동포지원사업소와 각종 설비를 갖춘 복지 시설, 강당 등 사할린동포 맞춤형 프로그램과 시설이 구비돼 있어 이들의 한국 적응을 돕는다. 그중에서도 복지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 한국역사 교육 등은 사할린동포가 마음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LH는 가천대와 협업해 운동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LH 임직원이 단지에 방문해 오래된 벽면 도색 작업을 진행하고 소통의 시간을 가지는 등 입주민을 대상으로 사회공헌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LH경기남부지역본부 관계자는 “사할린동포들의 아픔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만 조국에 돌아와서 잘 적응하실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력해 주거안정을 돕겠다. 또한 곳곳에서 주거의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