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 올드바인으로 빚는 풀리아의 보석, 신퀀타 블랙 어떤 맛일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4. 5. 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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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4000년 와인 양조 역사 지녀/강렬한 맛과 향 지닌 프리미티보·네그로아마로 유명/60년 수령 올드바인·부시바인으로 빚는 ‘신퀀타 블랙’ 탄생  

산 마르짜노 꼴레찌오네 신퀀타·블랙. 최현태 기자
빠른 탬버린과 기타 연주가 어우러지는 이탈리아 남부의 정열적인 리듬. 음악이 시작되자 몸매가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댄서는 제자리를 빙빙 돌며 정열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마치 영화속 팜프파탈처럼, 당신을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눈빛을 내뿜으면서. 빠른 속도와 열정적인 분위기가 처음 보는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춤은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Puglia)의 전통춤 피치카(Pizzica). 춤처럼 강렬하고 검은 과일향을 마구 내뿜는 포도 품종이 있습니다. 풀리아를 대표하는 프리미티보(Primitivo)와 네그로아마로(Negroamaro)랍니다. 한잔의 와인에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과, 바람 그리고 흥겨운 피치카를 듬뿍 담는 열정의 와인을 만나러 풀리아로 떠납니다.
풀리아 전통춤 피치카.  투어리스티인풀리아
◆독거미에 물린 환자를 치료하던 춤

타란텔라(Tarantella)는 3박자나 6박자의 아주 빠른 템포에 맞춰 미친 듯이 정열적으로 몸을 흔드는 이탈리아 남부의 전통춤입니다. 춤의 유래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남부에는 독거미 타란튤라가 많았는데 한번 물리면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답니다. 유일한 민간 치료법이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면서 독기를 뽑아내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타란텔라가 유래됐다고 하네요. 또 하나는 풀리아의 타란토(Taranto) 지역에서 유래된 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피치카는 박자나 춤 동작이 거의 비슷해 타란튤라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풀리아 사람들은 전통춤을 피치카라는 이름으로 고집합니다. 치료를 위한 춤이었지만 지금은 연인의 사랑을 얻기 위한 춤으로 발전해 보통 한쌍의 남녀가 마주보며 춤을 추고 흥을 돋우는 기타와 템버린이 필수 악기로 사용됩니다.

이탈리아 주요 산지. 와인폴리
◆이탈리아의 숨은 보석 풀리아 와인

작열하는 태양과 아름다운 해변이 넘쳐나는 풀리아는 유럽인들의 여름 휴양지로 사랑받는 곳입니다. 최근에는 영화배우 맷 데이먼 등 미국의 셀럽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가수 마돈나는 생일 파티를 열었답니다. 남쪽 살렌토(Salento)는 바다를 끼고 있어 여름휴가를 보내기 좋고 북부는 밀가루, 토마토 등 과일, 채소 등이 풍부해 미식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풀리아 위치와 와인 산지.  와인폴리
풀리아의 와인 역사는 무려 4000년에 달합니다. 그리스 문화 이전인 페니키아 문명 시절에 페니키아 상인들이 포도나무를 풀리아 지방으로 전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풀리아는 날씨가 매우 덥고 건조합니다. 하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이 포도밭의 온도를 적적하게 조절해 줍니다. 특히 완벽한 평야지대라 기계를 이용해 와인을 대량 생산하기 최적화된 곳입니다. 포도가 아주 잘 익어 과일향이 풍성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탄탄한 풀바디 레드 와인이 대부분 생산됩니다. 따라서 가성비 좋은 진하고 파워풀한 와인을 찾는다면 고민할 것 없이 풀리아 와인이 정답입니다. 풀리아는 올리브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이탈리아 올리브의 절반이 풀리아에서 생산됩니다.
프리미티보. 인스타그램
◆프리미티보
이처럼 오랜 와인양조 역사를 지닌 풀리아를 대표하는 레드 품종은 프리미티보(Primitivo)와 네그로아마로(Negroamaro)입니다. 특히 프리미티보는 한 모금 넘기는 순간 붉은 드레스 자락을 마구 휘날리며 열정적인 피치카 춤을 추는 여인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프리미티보(Primitivo)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원시적’이란 뜻이 아니라 ‘빨리 익는다’는 뜻입니다. 문헌에도 등장합니다. 1700년대 후반 교회의 문서에 따르면 ‘포도원의 한명이 다른 포도들보다 먼저 성숙해 8월에 수확할 수 있는 검고 달콤하며 맛있는 포도를 가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산 마르짜노 풀리아 만두리아 포도밭. 인스타그램
뜨거운 태양아래 포도가 잘 익으면서 다른 품종보다 매우 빠르게 당도를 축적하기에 완전 발효하면 알코올 도수가 많게는 18도까지도 나오는 강렬한 와인으로 만들어집니다. ‘팜므파탈 와인’이란 별명을 얻은 이유랍니다. 이처럼 빠른 숙성 덕분에 프리미티보 와인은 검은 과일향이 풍성하게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풀바디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신선한 무화과, 블루베리, 구운 블랙베리와 같은 검은 과일향이 지배적이고 말린 과일향과 가죽같은 숙성된 3차향도 잘 느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프리미티보의 또 다른 특징이 포도알이 고르게 익지 않는 점입니다. 덜 익은 포도가 섞여 와인의 맛에 약간의 복합미도 더해줍니다. 프리미티보는 가물과 봄 서리에 약하고 비가 많거나 습한 해에는 꽃이 쉽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이탈리아 반도의 ‘부츠 뒤축’ 풀리아는 프리미티보가 자라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산 마르짜노 부시바인. 인스타그램
프리미티보는 풀리아와 마주보는 아드리아해 건너 크로아티아가 기원입니다. 트리비드라그(Tribidrag) 또는 키엘낙 카스텔란스키(Crlenak Kaštelanski)로 불리던 품종으로 아드리아해를 건너 풀리아에 심어졌는데 놀랍게도 잘 적응하며 뿌리를 내려 지금은 풀리아의 토착품종으로 여겨집니다. 프리미티보는 DNA 검사결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많이 재배하는 진판델(Zinfandel)과 같은 품종으로 확인됐습니다.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남부 이민자들은 고향의 프리미티보를 캘리포니아로 가져가 심었고 기후가 비슷한 캘리포니아에서 잘 자라 훨씬 잼 같은 느낌의 당도가 높은 강렬한 진판델 와인이 탄생합니다.
네그로아마로 올드바인. 인스타그램
◆네그로아마로

네그로아마로(Negroamaro)는 풀리아에서도 살렌토(Salento) 지방에서 주로 재배됩니다. 품종 이름 자체가 ‘검다(네그로)’와 ‘쓰다(아마로)’가 결합된 단어이니 얼마나 묵직하고 진하며 강렬한 품종인지 쉽게 짐작이 됩니다. 잘 익은 자두, 구운 라즈베리, 아니스, 계피와 같은 달콤한 향신료가 특징입니다. 산도가 그리 높지 않고 탄탄한 바디감을 보여주며 과일향도 풍성해 미트볼이나 피자와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요즘 풀리아는 네그로아마로 품종을 엄청 밀고 있답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베로나 인근 발폴리첼라가 고향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와인’ 아마로네 와인과 좀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토착품종 코르비나(Corvina), 론디넬라(Rondinella), 몰리나라(Molinara)를 위주로 실내건조해서 만드는 아마로네 역시 ‘쓰다’는 뜻으로 이름도 비슷하네요. 네그로아마로는 건조한 포도로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다 아마로네 가격이 엄청 높으니 ‘아마로네 대신 네그로아마로네’를 마시라는 프로모션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산 마르짜노 수출매니저 알렉스 엔드리치(Alex Endrizzi). 최현태 기자
◆두 품종의 절묘한 결합 ‘신퀀타’ 탄생

이런 강렬한 두 품종을 섞는다면 어떤 와인이 탄생할까요. 시음해보지 않아도 짐작이 될 겁니다. 프리미티보와 네그로아마로를 50대50으로 절묘하게 섞어 풀리아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레드 와인을 선보이는 와이너리가 산 마르짜노(San Marzano)로 신퀀타 꼴레지오네(Cinquanta Collezione) 랍니다. 한국을 찾은 수출매니저 알렉스 엔드리치(Alex Endrizzi)와 함께 신퀀타와 한국 시장을 위해 새롭게 출시된 신퀀타 블랙의 매력을 따라 갑니다. 산 마르짜노 와인은 금양인터내셔날에서 수입합니다.

산 마르짜노 셀러. 인스타그램
세산타니. 인스타그램
두 품종으로 만든 풀리아 저가 와인은 보통 너무 잼같이 진하고 당도와 알코올도수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산 마르짜노는 50~60년 이상의 올드바인으로 만들기에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줍니다. 신퀀타는 이탈리아어로 ‘50’이란 뜻으로 와이너리 설립 50주년을 맞아 풀리아를 대표하는 프리미티보와 네그로아마로를 절반씩 섞어 선보인 와인입니다. 풀리아에서도 가장 뛰어난 프리미티보가 생산되는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Primitivo di Manduria) DOP 중심에 있는 작은 마을 산 마르짜노에서 1962년 와인 재배자 19명이 모여 칸티네 산 마르짜노(Cantine San Marzano)를 설립하면서 와이너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에프네그로아마로. 인스타그램
 
산 마르짜노는 올드바인 프리미티보 단일 품종으로 만든 세산타니(Sessantanni), 올드바인 네그로아마로 단일품종으로 만든 에프 네그로(F Negro)를 먼저 선보였습니다. 이어 50주년을 맞은 2012년 두 품종을 50대50으로 섞은 신퀀타에 이어 올해 4월 신퀀타 블랙까지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둘 다 품종 비율은 같지만 신퀀타는 50년 수령, 신퀀타 블랙은 60년 이상 수령 포도로 만듭니다.
산 마르짜노 신퀀타. 인스타그램
산 마르짜노 신퀀타. 최현태 기자
신퀀타는 검은 자두로 시작해 카시스, 붉은 과일로 만든 잼과 감초같은 달콤한 향신료가 피어나고 바닐라향과 스파이시한 허브향이 더해집니다. 과일향을 신선하게 뽑아내기 위해 24~48시간 천천히 저온침용(콜드 마세라시옹)하며 스틸탱크에서 젖산발효를 거쳐 프랑스 오크통에서 12개월 숙성합니다. 복합미를 높이기 위해 리치하고 깊은 풍미를 보여주는 포도밭과 신선한 산도와 과일향을 잘 보여주는 포도밭의 포도를 섞어서 뛰어난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덕분에 너무 잼같은 느낌이 아니라 산도가 적당히 뒤를 잘 받쳐줍니다.
산 마르짜노 신퀀타 블랙. 최현태 기자
산 마르짜노 신퀀타 블랙. 인스타그램
◆60년 수령 신퀀타 블랙

신퀀타 블랙 에디션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된 와인입니다. 샴페인처럼 가장 좋은 뀌베를 아껴 놓았다가 만든 와인으로 신퀀타 보다 4개월 긴 16개월동안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합니다.

신퀀타는 두 품종을 섞은 뒤 숙성하지만 블랙은 프리미티보는 프렌치 오크, 네그로아마로는 미국오크에서 숙성한 뒤 나중에 블렌딩해 품종의 캐릭터를 더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신퀀타도 50년 수령이라 꽤 올드바인으로 만들지만 60년 수령으로 빚는 블랙은 신퀀타의 맛과 향이 훨씬 증폭된 느낌입니다. 커피로 따지면 신퀀타는 에스프레스, 블랙은 더블 에스프레소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 실크처럼 매끄러운 탄닌과 농밀한 질감, 고목이 주는 심연을 알 수 없는 깊은 복합미가 더해지고 스파이시한 향신료가 길게 이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숙성된 와인이 주는 3차향인 숲속바닥의 흙내음과 가죽향도 더해 그냥 “맛있다”는 탄성이 터집니다. 신퀀타는 15만병 생산하며 블랙 생산량은 2만~3만병에 불과하니 매우 귀한 와인입니다. 신퀀타는 국내 백화점에서 판매 1위를 달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산 마르짜노 부시바인 올드바인. 인스타그램
◆부시 바인이 만든 농밀한 집중력
산 마르짜노는 두 품종 외에 화이트 품종 베르멘티노, 피아노, 베르데카, 샤르도네, 모스카토 와 레드품종과 메를로, 산지오베제, 알리아니코 등도 재배합니다. 하지만 올드바인은 프리미티보와 네그로아마로만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덤블처럼 생긴 부시 바인으로 포도나무를 재배한다는 점입니다. 와이너리 설립 이전부터 포도밭에는 부시 바인이 자라고 있었는데 산 마르짜노는 이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새로 심는 나무도 부시 바인 형태로 재배합니다. 포도밭 120ha에서 50년~100년 수령의 포도나무가 자라며 평균수령은 75년, 가장 오랜 수령은 무려 100년에 달합니다.
산 마르짜노 부시바인 올드바인. 인스타그램
 
그렇다면 부시 바인 형태로 키우는 올드바인은 와인에 어떤 매력이 부여할까요. 사실 생산자 입장에서 부시 바인은 생산량에 큰 부담을 줍니다. 일반적인 꼬르통이나 기요 방식보다 포도나무 한 그루당 열리는 포도송이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부시 바인데다 올드바인이라면 생산량은 더욱 줄어듭니다. 올드바인은 뿌리가 땅속 깊숙하게 파고들면서 다양한 지층의 성분들을 끌려 올리기에 복합미가 뛰어난 포도가 생산됩니다. 특히 적은 포도송이에 맛과 향이 집중되면서 농밀하면서도 집중도가 뛰어난 포도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프리미티보와 네그로아마로 품종의 캐릭터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프리미티보와 네그로아마로 올드바인으로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은 거의 없고 산 마르짜노가 풀리아에서 규모가 가장 큽니다.
산 마르짜노 신퀀타와 블랙.  최현태 기자
기본적으로 대량생산하는 저가 풀리아 와인들은 너무 강하고 잼같고 알코올도수가 높아 살짝 밸런스가 맞지 않는 단점이 있지만 산 마르짜노는 부시 바인과 올드 바인 재배에 다양한 양조기술을 결합해 우아한 와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여성 와인메이커여 카타리나 벨라노바가 밸런스 있는 와인 만드는데도 큰 몫을 하고 있답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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