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잉 관광’ 몸살…“우리 마을 지켜라” 관광세 부과 카드까지 등장

박대원 일본통신원 2024. 5. 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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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유치’와 ‘지역주민 생활 보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日 지자체들

(시사저널=박대원 일본통신원)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올해 3월 한 달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전이었던 2019년 3월과 비교해 약 12%나 증가한 수치다. 올해 1분기(1~3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약 340만3000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방일 외국인 관광객 규모가 약 세 배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월 방일 외국인 중 한국인은 66만3100명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대만(48만4400명), 중국(45만2400명) 순이다. 엔화 약세에 힘입어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숙박 및 상업 시설 등의 수요가 증가해 관광업계 및 백화점 업계는 큰 호황을 맞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몰리면서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교토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교통 혼잡 및 관광객의 예의 없는 행동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내버스 노선에 관광객들이 가득해 버스를 수차례 보낸 후에야 탑승이 가능하거나, 버스에 탑승하더라도 관광객들의 대형 수화물이 통로를 차지해 승하차 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또 관광객이 무단으로 사유지에 들어가 사진촬영을 하거나 자판기 주변에 설치된 페트병 수거함에 일반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은 올해 3월 한 달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방일 외국인 중 한국인은 66만3100명으로 전체 1위다. ⓒ연합뉴스

사상 최다 방일 외국인 관광객에 피로감 호소

지난 2월 교토시장 선거에서 오버투어리즘 대책을 강조했던 마쓰이 고지가 당선된 것은 지역주민들이 과잉 관광으로 인한 피해 대책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시사한다. 외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지역주민들의 피로감 호소가 계속되자 교토시 측에서는 교통 혼잡 완화를 위해 시영버스 및 지하철의 임시 증편, 대형 수화물 보관소 개설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6월부터는 주말 및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관광특별버스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지역주민들과 관광객이 이용하는 버스 노선을 나눠 동선을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특별버스 요금은 일반버스 요금의 약 2.2배인 500엔(약 4500원)이다. 이 외에도 대형 수화물을 들고 이동하지 않는 '빈손 관광'을 장려하거나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을 세우는 등의 조치도 하고 있다.

또 다른 관광 몸살도 있다. 일본의 랜드마크인 후지산으로 유명한 야마나시현은 후지산을 배경으로 로손 편의점 건물이 위치해 일본스러운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 '사진 명소'로 알려져 관광객이 집중되고 있다. 해당 장소가 SNS에서 유명해지면서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무단으로 투기하거나 주차장이 아닌 곳에 차량을 장시간 주차하는 등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을에서는 경비원을 배치하거나 영문으로 작성된 팻말을 설치하는 등 대책에 나섰으나,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로손 편의점 뒤로 높이 2.5m, 너비 20m의 차단막을 설치하기로 했다. 지역주민은 "후지산이 가장 예쁘게 보이는 장소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쉽다. 그러나 언제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야마나시현에서는 후지산 등산객의 급증을 우려해 인기 등산로인 요시다 루트에 대해 7월부터 1일당 등산객 상한을 4000명으로 하고 등산객에게 통행료 2000엔(1만8000원)을 징수할 방침이다.

교토와 야마나시의 사례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대해 일본 국민이 느끼는 불편함이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교통 혼잡 문제다. 대중교통 이용 대기시간이 길어지거나,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 주정차하는 외국인들로 인해 불편을 겪는 일이다. 둘째, 쓰레기 문제다. 일본에서는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발견하기 어렵다. 자판기 주변에는 페트병이나 캔을 수거하는 수거함만 있을 뿐, 일반 쓰레기는 각자 집으로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관광객이 쓰레기를 길거리나 자판기 근처에 투기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은 관광객 증가로 인한 지역사회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잘못을 지적해도 금방 개선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이에 외국인 관광객과 지역주민의 상생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려는 지역사회 및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투하 현장에 평화기념관을 설치한 것으로 유명한 히로시마현의 오코노미야키 음식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지역주민들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매주 금요일을 "현민의 날"로 정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후지와라 료타 점장은 "코로나19 당시 어려웠을 때 가게를 방문해 줬던 단골손님들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지역주민들이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의 이용 규제를 결단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랜드마크인 후지산은 '과잉 관광'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JTBC 뉴스 캡처

교통·식당 등 외국인 이용 규제 점차 증가

일본 제2 도시인 오사카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가 계속될 것에 대비해 '관광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내년 4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로 오사카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관광세 도입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오사카부(府)는 2017년 1월부터 내국인, 외국인 상관없이 관광객에게 숙박세로 1박당 최대 300엔(약 2700원)을 부과하고 있다. 관광세 도입이 결정될 경우 오사카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숙박세와 관광세를 이중으로 지불해야 한다. 관광세 도입과 관련해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부지사는 방일 외국인 급증과 오버투어리즘에 대응할 필요성을 지적하며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공존공영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관광객들에게) 비용 부담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세 부과 논의에 대해서는 여러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외국인에게만 부담을 요구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명확지 않다는 점,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외국인 관광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로마 같은 주요 관광 명소에서 '오버투어리즘' 대책으로 관광객에게 세금(City tax)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사카를 시작으로 일본 내 관광세 도입움직임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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