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 흔들리면 경제 침체 부를 수도

한겨레 2024. 5.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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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2023년 11월24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백화점이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고객으로 붐비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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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인사들의 매파적(강경)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금리인하를 위해 더 많은 데이터를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은 이제 진부하다. 더 나아가 “올해 3회 금리인하는 전망에 불과할 뿐 약속이 아니다”라며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에 대해 자기부정까지 하고 있다. 이런 연준의 입장 변화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2024년 들어 발표되는 물가통계는 전망치를 웃돌고 있다. 4월10일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그랬다. 헤드라인(가격 변동성이 큰 필수 소비재의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인플레이션), 근원(필수 소비재의 인플레이션을 제외한 것) CPI 모두 전달보다 0.4% 상승했다. 둘 다 월가 전망치를 뛰어넘었다. 인플레이션이 재발화하리라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전망치를 웃도는 물가 관련 데이터는 연준의 금리인하 명분을 흐리게 한다.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연준의 태도로 볼 때 시장이 금리인하 시기와 폭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당연하다. 물가에 대한 불안은 연준뿐만 아니라 시장을 지배한다. 2024년 금리인하 횟수를 줄이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연 연준이 데이터를 보고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것은 합당한가? 그 답은 미국 경제의 구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잘 알다시피 미국 경제는 소비 의존 경제다. 소비가 무너지면 경제는 둔화, 침체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탄탄한 소비는 지속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개인소비지출 현황

미국의 소비자지출 혹은 개인소비지출(PCE)은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그 근거로 사용하는 데이터다. PCE는 상품과 서비스 구매액 모두를 포괄한다. 다시 말해, 미국인이 소비에 쓰는 모든 돈을 포함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추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인의 소비지출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급등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2024년 2월 말 기준 19조달러(약 2경5923조원)를 넘는다. 역사적 최고치다.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 15조달러 미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으로 늘었다.

왜 이렇게 늘어났을까? 상실감을 달래는 방법은 많지만, 대표적인 게 소비다. 팬데믹은 고립과 상실을 낳았다. 이를 극복하는 방편으로 많은 사람이 소비를 택했다. 여행, 외식, 꾸미기 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이연(pent-up) 소비’, 즉 미뤄놨던 소비를 뒤늦게 한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소비, 즉 ‘보복 소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의 경우 그 주요 재원은 경기부양을 위해 뿌려진 재정지원금이었다. 공짜 돈이 생기자, 소비 광풍이 불었다.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이른바 ‘부기 브로크’(Bougie Broke) 현상이 팬데믹을 거치며 폭발했다. 부기 브로크란 이들의 소비 행태를 일컫는 신조어로, 본인의 재정 능력 이상으로 부를 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자신의 고급 자동차, 명품 의류를 자랑하는 사진과 영상이 넘쳐났다. 비싼 음식 가격의 식당, 호화로운 5성급 호텔, 고급 휴양지에서 찍은 셀카를 올리는 것이 유행했다. 이들 대부분은 밀레니얼세대, 이른바 청년세대가 올렸다.

글로벌 투자은행 웰스파고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세대의 59%는 재정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저축과 적정 소비 대신 과다 지출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 물론 이런 소비 행태는 자기 돈만으론 충당할 수 없다. 빚에 의존한 소비를 하고 있다.

소비가 급증한 배경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가 개입돼 있다. 문제는 이런 심리적 요인에 따른 소비 행태의 지속 가능 여부다. 소비를 지속하려면 물리적 돈이 필요하다. 임금이 오르든지, 저축이 많든지, 싼값에 빛을 내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에서 살펴보겠지만 현재 이 중 어떤 것도 쉽지 않다.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미국의 소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2008년 이래 가장 낮은 저축률

저축률(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저축액 비율)은 현재 2008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24년 1월 기준으로 3.8%다. 저축 총액은 팬데믹 전이던 2017년 수준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수치를 차감한 실질 저축액은 1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에 가깝다.

명목 저축액은 2019년 초 1조3천억달러를 넘었다. 2024년 1월 현재는 7800억달러로 급감했다. 팬데믹 기간에 폭등했던 저축액이 그전 수준보다 훨씬 낮아졌다. 그런데도 명목 저축액은 여전히 역사적 평균치보다 많다. 저축을 덜 인출하고 있다. 이는 임금 상승, 실업률 역사적 저점을 고려할 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겉으로는 그렇다.

2023년 12월25일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가 성탄절을 맞아 쇼핑을 나온 시민들로 넘쳐나고 있다. REUTERS

한데 이는 착시현상일 수 있다. 미국은 부의 불균형이 심한 대표적 나라다. 국가통계를 보면, 2023년 3분기 기준 미국 부의 30%를 상위 1%가 차지한다. 부유한 10%가 전체 부의 3분의 2를 보유한다. 하위 50% 인구는 부의 3% 미만, 정확히는 2.6%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저축액에 이 비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저축의 대부분은 극소수 부자들 것이다.

평균은 양극단으로 치우침이 심할수록 현실을 왜곡한다.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같은 거부들의 자산은 팬데믹을 거치며 급증했다. 이들의 저축액도 그만큼 늘었을 것이다. 미국의 총저축액은 평균보다 높은 상태지만 이들의 몫을 빼고 인플레이션 조정을 거치면 미국 국민 다수의 저축액과 그 실질 가치는 미미하리라는 추론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실제로 연준이 2023년 6월에 발표한 ‘미국 가계의 경제적 복지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 가구의 3분의 1 이상이 돌발적인 400달러 지출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의 저축도 없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미국인 대부분은 저축으로 소비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존 저축이 고갈되거나 줄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소비를 유지하려면 빚내야 한다. 현재 미국 소비 추이를 보면 많은 사람이 빚내어 소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차입이 팬데믹 전보다 더 가속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신용카드 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복수의 재정지원금 지급과 광범위한 경제회복 뒤 소비자의 자신감은 상승하고 그에 따라 신용카드 사용 잔고도 크게 늘었다. 현재 추세는 팬데믹 이전 추세보다 더 가파르다. 이런 상승률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많은 미국인이 신용카드 사용액 한도를 끝까지 쓴 뒤에 그도 모자라 ‘선 구매, 후 결제’(BNPL·Buy Now Pay Later) 방식을 이용해 소비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7900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 혹은 18살 이상 성인의 4분의 1이 BNPL을 사용하고 있다. 이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대출을 제때 갚을 수 있을까? 한 조사에 따르면 거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이 제때 갚을 수 없다고 답했다. 신용카드 대출금리는 20%를 넘나든다. 일자리가 있다면 이런 방식의 소비를 어찌어찌 이어갈 수 있겠지만, 일자리가 사라지면 바로 낭떠러지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임금상승률 하락

미국의 실업률은 완전고용 상태다. 2024년 2월 3.9%다. 최근 약간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1975년 이래 역사적 저점 수준이다. 임금은 2024년 1월 전년 동월 대비 5.72% 증가했다. 팬데믹 이후 임금은 추세선을 웃도는 성장률을 보였다. 두둑해진 주머니는 소비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2022년 이래 연평균 실질임금은 0.5% 이하로 증가했다. 팬데믹 이전 3년 동안 2.3%였으니 그때보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외려 감소했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은 여전하지만, 명목임금 성장률은 팬데믹 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최근 임금상승률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수준까지 둔화했다.

신용카드 사용 증가, 저축 감소, 임금상승률 하락은 소비자가 현재 페이스로 소비를 지속할 여지가 천천히 고갈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득은 소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실업률이 낮은 상태로 유지된다면 소비는 완만히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실업률 상승이 지속된다면 소비는 급격히 꺾일 수 있다.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압도적이다. 개인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소비가 흔들리면 일순간 경제는 침몰할 수 있다. 과다 수요에 따른 인플레이션 현상도 급속히 둔화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는 느닷없이 식을 수 있다.

남은 방법은 부채 원가를 낮춰 소비를 유지하는 것뿐이다. ‘유동성’은 현대 경제의 핵심이다. 총부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경제에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과 경제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공급이 줄거나 멈추는 순간 경제는 수축하거나 파열한다. 부채 의존 경제의 숙명이다. 금융 조건과 차입 조건을 혼동하면 안 된다. 현재 경제성장은 역사적 추세보다 강하고 금융시장은 거칠 것 없는 상승세다. 이를 보고 섣불리 긴축을 강화한다면, 유동성 축소로 인한 차입 조건 악화로 경제는 급속히 냉각할 수 있다. 7% 정도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20% 이상의 신용카드 금리, 7% 이상의 자동차 금융 금리가 지속된다면 미국인의 소비지출은 유지될 수 없다. 연준이 눈에 보이는 데이터에 집착해 고금리를 지속하면 결론은 뻔하다. 과연 연준은 어떤 선택을 할까.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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