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대로 영영 남남? “북한판 ‘2국가론’, 아직은 형성기”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1991년 12월 31일, 남북이 함께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다. 남과 북은 서로에게 외국이 아니며 남북관계는 외교관계가 아님을 분명히 한 ‘특수관계론’ 규정이다. 이 규정은 남과 북에서 법, 제도, 정부조직, 남북 간 벌어지는 모든 행위의 근거가 됐고, 남북관계를 32년간 떠받친 뼈대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4년 1월 남북관계가 더이상 같은 민족이 아니라 ‘교전 중인 적대국’이라고 규정한 것은 특수관계론 일방 파기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같은 북한의 ‘2개 국가론’이 이번 한순간의 선언이 아니라 수년전부터 모색돼온 북한의 전략이며,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아울러 ‘미완’의 전략이자 ‘진행 중인’ 전략인 만큼 향후 수정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전화인터뷰를 통해 양 교수의 분석을 들어봤다.
“문재인정부 시기 2018년 9월 평양선언 직후부터 ‘2국가론’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북·미간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논의를 희망한다고 했던 것이 그 징후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대국민보고회에서 개성공단 금강산재개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섭섭함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또 2019년 2월 북·미하노이 회담 합의서 채택 불발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한 모라토리엄을 계속 유지했는데, 미국전투기 100여대가 전개되는 식의 상황이었다. 결국 김 위원장은 그해 10월 금강산관광 남측시설 관련 기구 개편을 지시했다. 이듬해인 2020년 6월 대북전단에 반발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이어진 이 시기가 ‘모색기’였다.”
- 형성기는 언제부터인가.
“형성기는 2023년 7월 북한 외무성 담화때부터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 회장 방북 불가 방침을 조평통이나 아태위가 아닌 외무성이 내놓았다. 이것은 2국가론의 원칙과 방향이 정해진 것으로 보이는 시점이다. 이어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2국가론을 공식화한 것이고, 2024년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화를 선언했다. 지금 형성기에 있는 셈이다. 형성기의 최종 시점은 2026년 1월 개최될 9차 당대회에서의 당 규약 개정이 아닌가 싶다.”
- 북한의 노선 전환 가능성은.
“형성기에서 발전기로 나아갈지, 다시 남북 특수관계론이 복원될 지 여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주변 국가의 환경과 여건 변화 등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왜 지금 이 시점에 2국가론을 공식화했다고 보는가.
“중요한 것이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공식화하고 헌법에 넣겠다고 발표했는가다. 윤석열정부의 대북강경책과 중·러뒷배론이 작용했다. 북한으로서는 2국가론의 출현을 윤석열정부에 책임전가할 수 있고 중·러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또 북한 사회 내부적으로는 김일성, 김정일 선대의 유훈을 파기하는 충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 위원장이 당·정·군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타임라인상 분석을 해보면, 시기적으로는 제9차 당대회를 2년 앞두고 경제와 안보 두마리 토끼 잡기를 위한 시간끌기일 수 있다. 내부적으로 대남·대미 적개심을 고취시켜 핵무력을 강화하고 중·러의 도움으로 경제부흥을 일으키는 적기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 말대로 ‘존엄사수와 국익사수’를 위한 ‘정치적 결단’일지 모르나 평가는 냉혹할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은 반민족, 반통일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이다. 당국이든 민간이든 반관·반민이든 우리 측과 단 한번도 토론이 없었기에 일방적 결정이다.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성을 부정해 반민족적이다. 무력통일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평화적이고, 결국 영구분단을 고착화하겠다는 의도에서 반통일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치인이지 역사가가 아니다. 김 위원장은 2국가론 선언을 하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를 내놓았는데, 그러한 남북관계의 역사에 대한 판단은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분단 해소와 민족의 미래와 평화통일 비전을 논의하고 제시하는 정치인으로 돌아와야 한다. 200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 측 인사와의 면담에서 북한이 주장해온 대미비판론과 주한미군철수론이 북한 내부 주민교육용임을 고백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남북한간 신뢰가 제고될 때까지 대북용 아닌 내부용으로서 자유민주주의체제 강조가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이해해야 한다. 공격을 해온다면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부분은 군부에 의한 무력통일론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전 중인 대립관계 형성이 주민 통제에 유리하고 긴장고조를 통해 영향력과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 정부 대응은 어때야 하나.
“윤석열 대통령 역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의무가 있다. 한반도 긴장이 더 고조되고 평화통일이 점점 멀어지고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녹록치 않을 것이다. 남북 양측은 소위 ‘말폭탄’이 스스로에게 시원함을 줄 지 모르나 오래도록 독으로 돌아올 것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남북 양 정상은 8500만 민족이 안전한 평화의 질서를 원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좋은 전쟁은 없으며 동족간 화해와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체제통일, 흡수통일을 하자는 게 아니라 제2의 동족상잔을 막자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분단국가 입장에서 과정으로서의 평화정책이 해답이며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한 특수관계론을 지속 견지하고,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기반한 단계적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란 정책적 목표를 포기해선 안 되고 대화 장애물을 제거해나가야 한다. 대미편향외교와 ’힘에 의한 평화’에 매몰돼서는 오히려 북한에 말려들 것이 자명하다. 억지와 대화는 병행되어야 한다. 중국을 중재자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시 우리가 패싱되지 않도록 미 대선후보와의 소통도 중요시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대화와 협력이란 가치를 가지고 2국가론에 역공하는 것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국제공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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