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폐지, 또 유예? 금투세 샅바싸움 ‘시즌2’
[주간경향] 변죽만 울리던 대통령과 야당의 기싸움이 일단락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며 임기 시작 721일 만에 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물꼬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결과가 텄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을 맞게 된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대통령의 임기 말 통치력 약화)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국면 전환은 불가피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의 만남 직후 “야당 대표와 소통을 자주 해야겠다”는 소감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계기가 무엇이든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은 일하는 정부, 국회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특히 정책의 일방적 추진과 맹목적 반대 구도가 대화와 타협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구체적 사안도 추려지고 있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상징하며 임기초부터 추진한 여러 정책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윤 대통령이 2년간 유예를 선언하고, 올해 초 폐지까지 공언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여부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기존 방식대로 밀어붙이기도, 이제 와서 물러서기도 애매한 지점에 금투세가 놓였다.
금투세는 왜 도입했나
금투세의 시작점은 2020년 12월 여야가 합의한 ‘금융세제 개편방안’이다.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금융투자상품 거래에서 발생한 모든 소득에 대해 과세하자는 것이 명분이 됐다. 즉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가 대원칙인 셈이다. 방식은 단순하다. 현행 소득세법 제4조 제1항 ‘소득의 구분’은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거나 183일 이상 거주지를 둔 ‘거주자’가 얻는 수익을 종합소득, 퇴직소득, 양도소득으로 구분한다. 금투세는 제4조 제1항 제2호 퇴직소득 아래 제2호의2를 신설하고 여기에 금융투자소득 항목을 집어넣었다. 이 금융투자소득에는 소득세법 제87조의2에 따라 주식 양도소득, 채권 양도소득, 투자계약증권 양도소득, 적격 집합투자기구로부터의 이익, 파생상품의 거래 또는 행위로 발생하는 소득 등이 포함된다.
과세표준은 국내 상장주식 등을 거래해 얻은 소득을 합산한 금액에서 연간 5000만원 공제, 해외주식 등 기타 금융투자소득을 합산한 금액에선 연간 250만원을 공제해 결정한다. 최종 납부세액은 과세표준이 3억원 이하면 22%, 3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분에 대해 27.5% 세율(각각 지방소득세 포함)을 곱해 산출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금융투자로 얻는 일정액 이상의 수익에는 모두 과세할 수 있게 요건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권이 금투세에 합의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현행 소득세법대로라면 상장주식의 장외거래, 비상장주식 거래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만 과세할 수 있다. 해당 거래는 일반적인 개미 투자자가 아닌 주로 전문 투자자 혹은 대주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들이 거래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개미 투자자가 장내 거래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훨씬 큰 경우가 많음에도 과세가 제한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또 현행 방식대로라면 주식 및 파생상품 이익은 양도소득으로 과세하고, 적격집합투자기구 및 파생결합증권의 이익은 배당소득으로 과세하는 등 투자 방식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는 문제도 있었다.
실제로 금투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구성됐다. 그로부터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금투세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금투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등 표면적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정부·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도 금투세 시행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가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금투세는 ‘연간 주식으로 5000만원 이상 수익을 내면 세금 폭탄을 맞는 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2022년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5대 증권사(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키움증권)를 통해 연간 투자이익이 5000만원이 넘는 대상이 전체 투자자 2309만4832명의 0.9%인 20만1843명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기획재정부 역시 2008~2018년 동안 11개 증권사의 주식 거래내역을 분석한 결과 금투세 과세 대상 인원은 약 15만명이라며 과세 대상 ‘1%’ 주장에 힘을 더했다. 그러나 이는 “주식 시장의 생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세 대상 ‘1%’ 주장의 결론은 ‘금투세로 개인·개미 투자자가 입는 피해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세 대상 1%에는 기존 소득세법이 규정한 대주주들(개별 기업 지분 기준 코스피 1%, 코스닥 2% 또는 개별 종목당 보유금액 50억원 이상)이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개미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지점은 직접적 피해가 아닌 금투세 도입으로 인한 파생 효과에 있다는 점이다. 우선, 매해 최대 5000만원까지는 반드시 수익을 실현할 동기가 생긴다. 이는 주식을 장기 투자할 이유가 줄었다는 말과 같다. 금투세에는 5000만원이라는 수익을 토대로 한 과세표준, 세율만 있을 뿐 미국처럼 1년 이상 장기 투자에 따라 세율을 낮춰주는 등의 혜택이 없다. 결국 연말이면 벌어지는 대주주요건 회피를 위한 ‘큰 손’의 주식 매도 현상이 금투세 도입으로 배가될 수 있다. 이는 주가 하락으로 인한 개미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문제는 또 있다. 금투세를 도입하면 주식을 매매할 때 부과하는 증권거래세의 명분이 없어진다. 이에 따라 현행 0.23% 부과에서 0.15% 부과로 세율을 낮추게 된다. 이를 금투세가 개미 투자자에게 주는 혜택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개미 투자자들의 부담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거래금액이 큰 대주주, 외국인 등이 납부하는 증권거래세는 더 많이 줄어든다. 특히 외국인은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라 한국 주식시장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자국 정부에 세금을 낸다. 증권거래세 부담이 줄어들면 한국에선 사실상 ‘비과세’에 가까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결국 금투세의 맹점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한국 주식시장에선 단기 투자를 진행하되, 절세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수익을 보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실제로 전직 애널리스트 출신의 한 자산운용사는 “이미 금투세 시행을 대비해 고객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세금을 회피할 방법이 다양해지고,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뻔히 어떻게 될지 보이는데 정치권에선 꼭 시행해보고 보완할 생각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금투세를 놓고 정치권이 다투는 것은 예상되는 문제를 보완하자는 것이 아니다. 폐기냐, 시행이냐로 격돌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유예도 여전히 선택지에 있다. 금투세 시행을 사회적 필요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정쟁의 결과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금투세 폐지를 정부 정책으로 확정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금투세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폐지 의지를 표명했다. 시작은 대통령 후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내세운 공약이 ‘금투세 폐지’였다.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에 관료들은 힘을 실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금 자체만 놓고 보면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지만 자본시장 관련으로 보면 (금투세 폐지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금투세 폐지 추진은 당위성과 별개로 정책적 일관성만큼은 확보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주식시장을 향해 ‘공매도 금지’, ‘대주주 양도소득세 완화’라는 두 개의 화살을 쐈다. 지난해 11월 5일 주말을 틈타 전격 시행된 공매도 금지는 반년이 넘도록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에는 대주주 기준을 현행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소득세법 시행령도 개정됐다. 두 가지 조치는 주가 하락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의 중단과 개정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방향성을 보인다. 금투세 폐지는 정부가 추진하는 ‘주식시장 활성화’의 마지막 퍼즐이 될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지난 4·10 총선과 함께 이러한 기조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와 여당에서조차 금투세 폐지 가능성을 두고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난 4월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금투세를 폐지하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상황 아니냐”며 “폐지보다는 다시 유예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투세) 유예 이야기도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과하게 말하면 좀 비겁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며 “금투세를 비롯한 밸류업(기업가치 상승) 관련 이슈들은 기본적으로 민생 이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실제로 유예가 논의되고 있음을 방증했다.
반면 민주당 입장은 상대적으로 선명하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4월 25일 “2025년 예정대로 금투세 시행을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유예든 폐지든 금투세 시행을 미뤄 부자들 세금을 걷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경제위기 상황에서 부자 감세로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소득 격차만 더 늘리는 조세정책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판단의 근간에는 금투세를 바라보는 정부와는 다른 관점이 있다. 금투세 폐지가 곧 ‘부자 감세’라는 논리다.
동일한 금투세를 두고 정부와 제1야당은 완전히 다른 인식을 보인다. 이런 상황은 근원적 의문을 만든다. 금투세는 2020년에도 ‘여야 합의’로 신설됐고, 2022년에도 ‘여야 합의’로 유예됐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당의 유예결정은 2022년 11월 14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가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금투세 강행을 고집해야 하느냐”고 말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2022년에는 이 대표가 ‘부자 감세’에 동의한 셈이 된다. 정부·여당 역시 폐지는 말하면서 금투세 신설에 합의했던 이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양측 모두 금투세를 두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 입장에서 금투세를 보면 선택지는 시행 혹은 폐지밖에 없다. 개선 없는 유예는 단순히 결정을 미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행한다면 금투세의 맹점에 대한 보완작업이 필요하다. 반대로 폐지한다면 원래 금투세가 개선하려고 했던 과세 불공평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아무 조치가 없다면 금투세는 2025년 1월 1일 그대로 시행된다. 당장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예상되는 문제를 밝히고 대안을 말하는 쪽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금투세는 정치적 세싸움으로 시행 여부를 판가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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