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승리' 속 낙선…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국회기자 24시]
171석 얻었지만, 낙선·낙천도 다수
낙선 통해 깨달은 민주당 문제 반추해야
[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용기야 축하해!”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쾌하게 전용기 의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전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경기 화성시정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역시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유 의원은 경기 부천시갑 지역구를 터전 삼아 재선에 도전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선과 낙천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표정은 모두 밝았습니다.
지난 2일 4·10 총선 후 처음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는 마치 긴 방학을 마치고 개학한 학교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활짝 웃으며 악수를 주고받는 의원들은 서로 ‘고생하셨어요’, ‘축하합니다’, ‘그간 고마웠어요’라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2월 27일 총선 전 마지막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가죽은 벗기지 않고 남의 가죽만 벗기려 한다”며 공격적인 발언이 오간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의원총회장 맨 뒤엔 의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제22대 국회에선 함께하지 못하는 변재일 의원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입니다. 5선을 지낸 그는 당의 어른으로서 당의 중심을 지켜왔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일관된 평입니다. 변 의원은 “마지막 의총이야”라며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고마웠네!”라며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감회가 남다른 듯 보였습니다. 안정적으로 관리해 오던 서울 성동갑 지역구를 두고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며 서울 서초을로 지역구를 옮긴 그는 ‘여당 텃밭’에서 어려운 선거를 치르고 낙선했습니다. “주어진 역할을 마지막 순간까지 다하면 좋겠다”고 한 이재명 대표와 다르게 홍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어떤 분들에게는 축하를 드리지만, 몇 분께는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취재진들을 향해선 “제가 더 이상 여기에 설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동안 참 많이 고마웠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전체 300석 중 171석을 확보했고 개혁신당까지 포함한 범야권 의석은 192석에 달합니다. 민주당은 이 의석수를 활용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제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성과를 내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은 민주당 몫으로 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전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13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정부·여당에 압박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당이 야권의 계획을 밀어붙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답노트를 쓰는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는 이번 총선으로 끝났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즉, 이제 국민의 평가 대상은 입법 권력을 쥔 민주당입니다.
이재명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3일 당선인 총회를 열고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소명을 다하지 않으면 가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사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제가 환호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것”이라며 “그 엄중한 책임의 무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 선거 백서 작업에 소극적…‘낙선’의 정치적 자산 놓칠까
문제는 민주당이 이번 선거 과정을 반추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난 보궐선거, 지방선거, 대통령선거를 선거를 연달아 지며 백서를 만들어 온 민주당은 이번엔 백서 제작에 소극적입니다. 공천 과정의 잡음과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를 모두 덮어두고 승리했으니 쉬쉬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민주당 스스로도 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힘에 대한 반사이익을 봤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같은 날 “역사에 없는 야당의 압도적 다수 (국회를) 이루게 됐는데 그게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엄청 커서 이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 정당(국민의힘)을 심판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된 측면들이 있는 것인가”라며 “저는 후자의 비중이 더 클 거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답노트는 낙선자들이 쓸 수 있습니다. 민주당의 문제를 온몸으로 느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낙선인들의 성찰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 얻은 귀중한 정치적 자산마저 놓치고 말 겁니다. 총선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은 낙선인들 중심으로 벌써 수차례 회의를 열고 총선 패배 원인을 찾는 중입니다.
일례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180석에서 185석 정도를 예측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측보다 적은 의석을 얻은 원인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들은 김준혁·양문석 등 일부 후보자들의 논란, ‘비명(非이재명)횡사’ 공천 등 몇몇 이유를 꼽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했던 민주당 의원은 “격전지 한강벨트에서 진 이유는 그 후보들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승리한 이들은 굳이 생각하지 않을 문제겠지요.
낙선한 이들의 마음을 제가 알 리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한 민주당 인사는 “영문도 모르고 차인 기분”이라고 눈높이 설명을 하더군요. 선거가 마음을 얻는 싸움이라면 말입니다,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이별의 이유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수빈 (suv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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