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불교·가톨릭이 함께…평온한 ‘포용의 도시’ [ESC]

김규남 기자 2024. 5. 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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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베트남 냐짱
3개 종교 건축물 옹기종기
54개 다민족 공존사회 단면
혼째섬 리조트 ‘호캉스’ 제격
해변 절경에 다양한 놀이기구도
까이강 인근에 있는 힌두교 뽀나가사원에서 사람들이 엎드려 절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방문한 베트남 중남부 휴양도시 냐짱(나트랑)의 태양은 강렬했다. 낮 기온은 30도에 달했고 습했다. 하늘은 맑았다.

냐짱은 8세기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참파 왕국(192~1832년까지 베트남 중남부를 지배했던 말레이계 참족의 왕국)의 수도이자 아시아 해상 교역의 중심지였다. 19세기 프랑스 식민 지배 시대에 휴양지로 개발됐고, 지금은 베트남에서 리조트 사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로 꼽힌다. 카인호아성의 성도인 냐짱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카인호아성 관광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전체 관광객 120만여명 중 한국인 관광객은 50만여명(약 42%)으로 외국인 관광객 수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카인호아성 전체 관광객 240만여명 중 한국 관광객은 125만여명(약 52%)으로 역시 외국인 관광객 수 1위였고, 이는 2022년에 견줘 7.5배 증가한 수치다.

냐짱은 흔히 영어식으로 발음하는 나트랑의 베트남 발음이다. ‘새하얀 집’이라는 뜻이다. 6㎞에 달하는 긴 해변에 깔린 희고 고운 모래와 조화를 이루며,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일조량이 풍부한 기후로 ‘베트남의 나폴리’로 불리기도 한다. 냐짱 시내 중심에서 동쪽으로 3㎞ 이상 떨어진 곳에는 여의도보다 11배 정도 큰 ‘혼째’(32.5㎢)라는 이름의 섬이 있다. 선착장에서 스피드 보트나 케이블카를 타면 7~8분 만에 섬에 도착한다. 혼째섬 안과 밖의 냐짱이 다르다.

“다낭에 비해 평온, 붐비지 않아”

“어푸, 어푸.” 파도는 잔잔했고, 초록빛 바다는 깊지 않았다. 강한 볕에 데워진 바닷물은 따뜻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지만 안락한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는 느낌이었다. 혼째섬에 있는 ‘냐짱 메리어트 리조트 & 스파’(이하 메리어트 리조트)가 보유한 1.7㎞의 프라이빗 비치(사유권이 인정된 리조트 전용 해변)에서의 수영은 느긋했다. 저멀리 수평선 끝에는 냐짱 시내 건물들이 봉긋봉긋 솟아있었다. 그 뒤로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로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푸른 산들이 안구를 정화시켰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자 맨발에 닿은 흰 모래는 뜨겁고 고왔다. 403개의 객실과 426개의 풀빌라(각 객실에 개인 수영장이 딸려 있는 숙소)를 갖춘 드넓은 이 리조트 곳곳에서 서식하는 후투티와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의 지저귐은 평안함을 선사했다.

‘냐짱 매리어트 리조트 & 스파’의 본관과 수영장.

혼째섬에 있는 메리어트 리조트는 분주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즐기기에 적합하다. 바다 수영뿐 아니라 리조트 내의 넓고 깨끗한 수영장 7곳에서 안락하게 수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수영을 하고 났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리조트에 있는 뷔페 식당 ‘샌즈’에서 쌀국수·반미·반세오 등 베트남 음식은 물론, 각종 회·생선구이와 돼지고기·타조고기, 망고·용과·멜론·패션푸르츠·로즈애플 등 다양한 음식과 열대 과일들을 맛볼 수 있었다. 달달한 베트남 연유 커피와 시원한 각종 과일음료도 디저트로 먹고 나니 고갈됐던 여행자의 에너지가 다시금 충전됐다. 뷔페에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동서양의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리조트에는 호캉스 시간을 알차게 채워줄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들이 있다. 그중 약 350㎡(약 106평) 규모의 유기농 정원인 ‘엠 밸리’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유기농으로 직접 재배한 포멜로·당근·허브·고수·레몬 등 신선한 식재료로 샐러드를 직접 만들어 시식하는 요리교실에 참여했다. 깨끗한 유기농 재료로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는 손맛을 느낄 수 있었다. 커피콩을 활용한 향긋한 그림그리기를 비롯해 요가·스파·피트니스 등 다양한 호캉스 메뉴들을 맛보느라 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메리어트 리조트 ‘앰 밸리’에서 열린 요리교실에서 사용된 식재료들.

불가리아인 로스(41)는 12살 아들과 10살 딸과 함께 선베드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노이에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그는 남편을 포함해 네 가족이 함께 냐짱으로 일주일 휴가를 왔고, 이 리조트에서 5일간 머물 거라고 했다. 그는 “이곳은 다낭에 비해 평온하고, 붐비지 않아 마음에 든다. 물이 깨끗하고 해변도 좋아서 산책하기에도 좋다. 가족들과 함께 한가롭게 휴양하기에 적합한 것 같다”고 했다.

알파인 코스터 타고 즐기는 섬 야경

혼째섬에 있는 테마파크 ‘빈원더스’. 홍학들이 입구에서 맞아주는 동물원이 있다.

혼째섬에 있는 테마파크인 ‘빈원더스’는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해변에 있다. 베트남 최대 기업인 빈그룹이 운영하는 곳으로 홍학들이 입구에서 맞아주는 동물원과 식물원, 집라인과 관람차, 롤러코스터, 알파인 코스터 등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있다. 이중 가장 ‘핫한’ 놀이기구는 알파인 코스터다. 1865m 길이의 레일 위에서 운행되는 알파인 코스터에는 한명 또는 두명이 탑승한다. 오르막길 위주의 전반부는 자동으로 운행되고, 내리막길 위주의 후반부는 탑승자가 양쪽 골반 옆쪽에 위치한 손잡이를 조종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탈 수 있다. 저녁이 됐는데도 다른 놀이기구들과 다르게 이곳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20분 정도 기다린 뒤에 드디어 탈 수 있었다. 높은 산 위에서 바람을 가르며 달렸고, 섬과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았다. 형형색색 조명이 켜진 혼째섬과 케이블카 등이 연출한 야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이후 거대한 성 모양의 구조물에 각종 조명을 쏘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영웅과 악당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현란한 춤을 추며 서로 전투를 벌이고 마침내 영웅이 승리하는 ‘타타쇼’를 수백명이 함께 관람했다.

혼째섬의 각종 건물, 섬과 뭍을 오가는 케이블카 등에 켜진 형형색색의 조명이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혼째섬에서 나른한 휴양을 즐기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지면 섬에서 나와 냐짱 시내 관광을 하면 된다. 경기도 고양시보다 조금 작은 면적인 냐짱(251㎢) 시내는 하루 정도면 충분히 관광할 수 있다. 베트남은 인구의 86%가 비엣족이지만 그외 53개 민족이 함께 사는 다민족 국가다. 아담한 도시 냐짱에는 유서 깊은 힌두교, 불교, 가톨릭 3개 종교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 베트남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까이강 인근에 위치해 있는 뽀나가사원은 동서양 관광객들과 복을 빌기 위해 방문한 현지인들로 붐볐다. 1979년 베트남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이 사원은 참파 왕국 시절의 유적지다. 참파 왕국에서 힌두교가 활발하게 발전한 시기인 8~13세기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원에 있는 4개의 탑 중 가장 높은 23m 탑은 뽀나가 여신에게 헌정된 것이다. 이 여신은 풍작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한다. 베트남인들은 지금도 이곳을 신에게 복을 빌고 기도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탑에서 기도를 마친 베트남인 린 윈(53)은 “가족의 건강과 평안, 행복을 위해 기원했다”며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면 마음에 안식을 얻기 위해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세월을 견딘 거대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연일 방문자들을 부르는 이곳엔 관광객들이 활용할 포토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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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로 흥정하는 재미

롱선사의 한 방문객이 거대한 연꽃 위에 자리잡고 앉아 있는 24m 높이의 거대한 흰색 불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뽀나가사원에서 자동차로 10분 이동하니 불교 사찰인 롱선사가 나왔다. 롱선사는 19세기 후반에 건설되기 시작해 1940년에 완성됐다고 한다. 본당 오른쪽에 있는 40여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옆으로 길게 누운 거대한 부처상이 나타난다. 벽면에는 부처가 입멸했을 때 49제자들이 염불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부조가 조각돼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불상의 발가락을 두손으로 만지고 지나갔다. 조금 전 발가락을 만지고 간 한 외국인을 따라가 물어보았다. “발가락을 만지는 의미가 뭔가요?” 미국인 마크 크리스천(58)은 “베트남 가이드가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있을 것이라며 만져보라고 권했다”며 웃었다. 이곳에서 190여개 돌계단을 더 올라가면 짜이 투이 언덕이 나온다. 이곳에는 거대한 연꽃 위에 자리잡고 앉아 있는 24m 높이의 거대한 흰색 불상이 있다. 많은 방문객들은 이 불상 앞에서 두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인다. 불상 뒤쪽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불상 내부 네댓평 정도의 공간엔 또 다른 작은 불상들이 있어 이곳을 찾은 이들이 엎드려 절했다. 이 짜이 투이 언덕은 냐짱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구실도 한다.

롱선사에 있는 거대한 와불. 이 불상의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롱선사에서 냐짱대성당까지는 차로 6분 정도 걸렸다. 1933년 프랑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냐짱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건물 전체가 돌로 지어져 ‘돌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현지인들에겐 결혼사진 촬영지로도 애용된다고 한다. 성당 정문을 마주 본 건너편 쪽에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예수상이 있고, 성당 둘레엔 다양한 가톨릭 성인 조각상들이 잇달아 서 있다. 오후 4시40분께 성당 안에서는 여러 명이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하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바깥에서 성당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냐짱대성당의 정면 모습.
냐짱대성당의 옆 모습. 성당 안에서는 여러 명의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여행의 재미 중 하나로 현지 시장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냐짱 최대 상설시장인 담시장은 냐짱대성당에서 차로 4분 거리에 있다. 2층 원형 건물인 이 시장에는 과일·채소 등 각종 식료품과 전자제품·의류·일용잡화 등 다양한 상점들이 성업 중이었다. 시장 중앙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매장이 있다. 이곳에서 기념품을 살 때 흥정은 필수다. 일행 중 한 명이 수공예품으로 보이는 팔찌 10개들이 한묶음을 10만동(약 5천원)에 샀는데 만듦새가 좋아 보였다. 상점들을 죽 둘러보니 다른 가게 점원은 같은 물품 가격을 16만동(약 8천원)으로 불렀다. 6만동을 깎아달라고 하니 점원은 안 된다면서도 가격을 조금씩 낮춰주긴 했다. 하지만 6만동까지 깎아주지는 않으려는 눈치였다. 값을 깎아달라고 거듭 요구하자, 점원이 불쑥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이기면 점원이 6만동을 깎아주고, 지면 내가 덜 깎인 가격에 사는 것으로 협상했다. 승부는 단판이었다. 가위바위보! 내가 이겼다. 점원은 웃으며 물건을 내줬다. 재미있는 추억이 하나 보태졌다. 어느덧 냐짱 시내에서의 저녁이 깊어졌다. 우리 일행은 숙소로 복귀했다.

비수기인 3월의 냐짱은 다소 한갓졌다. 냐짱 관광의 성수기는 6~7월이다. 카인호아성은 오는 6월 성수기 시즌에 맞춰 냐짱 바다관광축제와 국제라이트베이축제를 연다.

냐짱/글·사진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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