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에게 따뜻해야 타인도 보듬는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5.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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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실패했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자신에게 "또야? 너(내)가 이러니까 안 되지. 인생 망했네" 같은 악담을 쏟아부으며 이미 많은 상처를 더 늘려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고 누구든지 넘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그 일로 인해 내가 상심이 크구나" 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사람들을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높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연구들에 의하면 힘들 때조차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구는 사람들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은 누구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듯 자신에게도 자애로움을 보일 줄 아는 사람들이 우울 증상과 불안, 곱씹기 등을 낮은 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자존감을 보이는 등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한 경향을 보인다(Neff & Vonk, 2009). 

언뜻 들으면 이들은 결국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아닌가 싶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멋지고 특별하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긍정적 자기지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비교적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더라도 팀원들을 가혹하게 굴려서 좋은 성과를 뽑아내는 상사처럼 자신을 착취해 가며 높은 성취와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Crocker & Park, 2004). 

또한 평상시에는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삶이 조금만 힘들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와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는 자존감과 상관없이 자기 자비를 연습할 것을 추천한다. 

●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 서툴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 자비의 요소로 다음의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Neff, 2003). 

1) 자기 자신을 향한 친절(self-kindness):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비난보다 따뜻한 말을 건네듯 나에게도 따뜻할 것
2)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 인지하기: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며 인생 1회차인 우리들에겐 매 순간이 어려운 것이 당연하므로 오직 나만 힘들게 산다던가 실패하는 건 비정상이라고 보는 오만함 버리기
3) 판단하지 않기(mindfulness): 힘들 때 이런 걸로 슬퍼하고 좌절하는 내가 싫다, 이런 일로 슬퍼하고 좌절하는 나를 싫어하는 내가 싫다 등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판단하려 들지 말고 그저 "지금 내가 많이 힘들구나. 그 일이 내게 많이 중요했구나"하고 바라봐주기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자기 자비를 실천할 줄 아는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너그러운 편이다. 일례로 자신에게 아주 높은 기대치를 요구하며 조금의 흠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들의 경우 타인에게도 비슷하게 높은 기대치를 설정 -> 애초에 비현실적인 기대치라서 상대방이 이를 만족시킬 가능성이 낮음 -> 똑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도 더 쉽게 실망하고 좌절함. 좌절을 사서 함 -> 사람과 관계에 대해 시니컬한 태도를 갖게 됨의 부적응적인 사이클을 보이곤 한다. 

반면 높은 자기 자비를 보이는 사람들은 애초에 자기 자신을 포함 한계가 많은 인간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상대의 실수나 잘못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과대 해석하며 호들갑을 떨거나 '원래 그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쉽게 판단하는 일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내가 실수했을 때 용서를 구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길 원하듯 저 사람에게도 만회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Welp & Brown, 2014). 

● 나에게 따뜻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연인과의 관계 또한 더 잘 유지하는 편이다. 

1년 이상 관계를 유지한 커플 약 2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줄 아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케어하는 경향을 보였다(Neff & Beretvas, 2013). 

흔히 관계에서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의 경우 결국 상대방이나 관계보다는 '나의 안전', '나의 결핍이 채워지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결과적으로 상대방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크게 신경 쓰는 다소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Lavigne et al., 2011). 그러다 상대가 지쳐 떨어지곤 하는데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는 반면 구속하지 않고 관계에서 더 많은 주도권을 차지하고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구 또한 적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어느 정도 보듬을 줄 알기 때문에 굳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따라서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낮은 사람들에 비해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쾅 닫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 또한 덜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의 이익이 충돌할 때 자신의 욕구만 채우려는 이기적인 모습 또한 덜 보였다(Yarnell & Neff, 2013). 

상대방에게 맞추는 이유 또한 '헤어지기 싫어서,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게 싫어서' 같은 다소 방어적이고 또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이 아니라 상대와 나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에 의함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이 설명이다. 

한편 자존감은 관계의 질이나 상대방을 케어하는 것, 집착하지 않고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 공격적인 태도 등과 별다른 상관을 보이지 않았다(Neff & Beretvas, 2013). 내가 나를 좋거나 나쁘게 생각하는 것과 상관없이 나를 포함한 인간 전반을 대하는 '태도'가 관계 유지에는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또한, 단순히 내가 멋지고 괜찮은 사람임을 떠올리라는 게 아니라 나의 부족함도 타인의 부족함도 감싸 안을 수 있는 자애로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Crocker, J., & Park, L. E. (2004). The costly pursuit of self-esteem. Psychological Bulletin, 130, 392–414.
Lavigne, G. L., Vallerand, R. J., & Crevier-Braud, L. (2011). The fundamental need to belong: On the distinction between growth and deficit-reduction orientation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7, 1185–1201.
Neff, K. D. (2003).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a scale to measure self-compassion. Self and Identity, 2, 223–250.
Neff, K. D., & Beretvas, S. N. (2013). The role of self-compassion in romantic relationships. Self and Identity, 12, 78-98.
Neff, K. D., & Vonk, R. (2009). Self‐compassion versus global self‐esteem: Two different ways of relating to oneself. Journal of Personality, 77, 23-50
Welp, L. R., & Brown, C. M. (2014). Self-compassion, empathy, and helping intentions.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9, 54-65.
Yarnell, L. M., & Neff, K. D. (2013). Self-compassion, interpersonal conflict resolutions, and well-being. Self and Identity, 12, 146-15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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