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내전과 지진이 일본인의 마음에 남긴 것···‘쇼군’[오마주]

백승찬 기자 2024. 5.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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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 10부작 ‘쇼군’
1600년대 일본에 표류한 영국인 시선
<쇼군>의 요시이 토라나가. 관록 있는 배우 사나다 히로유키가 연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1600년대 일본, 최고 권력자가 죽었으나 후계자는 아직 어립니다. 권력 공백기를 맞아 5명의 유력 정치인(5대로)이 대립합니다. 요시이 토라나가(사나다 히로유키)를 제외한 나머지 대로들이 연합을 맺자, 요시이 토라나가는 위기에 빠집니다. 모종의 임무를 띠고 항해에 나섰다가 표류한 영국인 항해사 존 블랙손(코스모 자비스)은 가까스로 일본에 도착합니다. 일본인들로부터 ‘안진’(항해사)이라 불리기 시작한 블랙손은 원치 않게 치열한 권력 투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듭니다. 가톨릭을 믿는 통역사 마리코(안나 사웨이)와 안진 사이엔 미묘한 감정이 싹틉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10부작 시리즈 <쇼군>은 제임스 클라벨이 1975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일본에 도착한 최초의 잉글랜드인이자 ‘서양인 사무라이’로 알려진 윌리엄 애덤스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 <쇼군>은 1980년대에도 드라마로 제작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쇼군>은 공개 이후 ‘일본판 왕좌의 게임’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치밀한 계략과 다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희생이 <왕좌의 게임>과 유사합니다. 주요 인물이 별다른 조짐도 없이 무참하게 죽어 나간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다만 <쇼군>에는 <왕좌의 게임>과 달리 드래곤이나 마법 같은 판타지적 요소가 없습니다. 주인공 요시이 토라나가는 실존 인물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상시킵니다. <쇼군>이 <왕좌의 게임>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예고편만 보면 대규모 전투 장면이 매회 이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군사 훈련을 하거나 소규모 충돌 장면이 나올 뿐입니다. 긴장감이 없거나 스펙터클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목숨을 건 간계와 권력 다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이어져 10부작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요시이 토라나가, 안진, 마리코 등 주요 인물 외에도 이시도 카즈나리, 가시기 야부시게 등 조연들의 캐릭터도 풍성합니다. 빼어난 서사를 위해선 캐릭터도 펄떡이며 살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쇼군>에서 일본에 표류한 영국인 항해사 존 블랙손(코스모 자비스). 일본인들은 그를 ‘안진’이라 부른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쇼군>에서 가톨릭에 귀의한 통역사 마리코. 마리코를 연기한 안나 사웨이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일본 배우다. 시리즈 <파친코>에도 출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특히 눈에 띤 점은 시리즈 내내 깔린 ‘죽음’의 키워드였습니다. 마리코는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삶과 죽음은 같습니다. 각자 목적이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살아남는 것이 주요 목적일 텐데, <쇼군>의 인물들은 죽음을 별스럽지 않게 여깁니다. “지금이라도 할복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자결을 허락해 주십시오” 같은 대사가 수시로 등장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주군으로부터 할복이나 자결을 허락받으면 큰 영광을 받은 듯 여깁니다. 조금 전까지 옛 추억을 회상하며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칼로 목을 내리치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살을 상대의 평판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까지 합니다.

<쇼군>에는 갑작스러운 지진이 몇 차례 나옵니다. 일본의 실제 환경을 반영한 설정일 겁니다. 이처럼 죽음이 도처에 깔려있는 환경도 극 중 인물의 생사관에 영향을 미친 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죽음이 캐릭터를 덮칠지 모른다는 점은 <쇼군>의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한 요소일 겁니다. 마리코는 말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지기 때문에 꽃입니다.”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물들 사이, 유일하게 ‘살고 싶었다’고 말하는 가시기 야부시게는 무척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임진왜란 직후입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무장이기에,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음을 암시하는 대사도 몇 차례 나옵니다.

사생결단 지수 ★★★★★ 죽음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

마키아벨리 지수 ★★★★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 계략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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