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팜므파탈 불일치의 감정들 [주말을 여는 시]

하린 시인 2024. 5.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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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최영랑의 ‘활성도가 높은 밤’
카페인이 주는 각성 효과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숨은 가능성이 드러날 때

활성도가 높은 밤​

내 머리를 떠난 생각들이 백야 속에 서성인다 엉킨 머리칼처럼 와글와글거린다 장막을 열어젖히고 배고픈 골목이 어둠을 할퀴며 건너온다 그 순간 팜므파탈은 시작된다

한참동안 나는 그 골목에서 출출해진 허공의 귓속말을 깨문다

내 안의 발톱들이 자리를 옮겨 다니며 생각의 반경을 넓힌다

어떤 뒷모습에선 낯선 남자의 끈적이는 등과 허리가 무너지기도 한다

눈을 감아도 도발적인 어둠은 어디론가 밀려가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잔재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곧 탄성을 얻을 것처럼 탱탱해질 것이다

통증처럼 백야는 아가리를 벌린다 노골적인 생각이 흩어진 감각들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몸속 가득 팽창되는 중력
발끝마다 서성이는 얼룩의 세계
프릴의 주름처럼 난해해지는 심장의 소란과
정수리에 흐르는 역류성의 감정

남자의 뒷모습을 세워놓고 불협이 증폭된다 지금은 파열의 시간 그리고 무성해지는 날 것의 시간, 내 안에 자라는 파멸을 위해 손톱들이 활성화되고 있다

최영랑
·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데뷔
·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
· 「발코니 유령」

최영랑, 「발코니 유령」, 실천문학, 2020.

각성 효과를 일으키는 카페인은 자의식을 가진 나를 만나게끔 한다.[사진=펙셀]

잘 알다시피 '카페인'은 현저하게 생리적 효과를 나타내는 물질로 차, 커피, 과라나, 마테차나무, 콜라나무 열매, 카카오 등에 많이 들어있다. 생리적 효과 중에서 우리는 잠이 오지 않게 만드는 각성작용을 '카페인'의 주된 효과로 인지한다.

대표적인 음료로는 우리가 자주 마시는 커피와 에너지 음료가 있다. 그런데 카페인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뇌를 각성시켜 불면증, 행동불안, 정서장애 유발, 심장 박동수의 증가로 인한 두근거림, 혈압상승 등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만난다.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최영랑 시인은 그런 카페인이 갖는 특징과 속성에 주목하며, 카페인으로 인해 활성화하는 밤과 시를 쓸 때 나타나는 자의식, 그리고 그 자의식이 지향하는 극단을 포착했다. 시인은 그 모든 과정을 자신만이 가진 감각으로 축출해 불면에 시달리는 독자들이 읽기 좋은 시를 완성했다.

화자인 '나'는 분명 현실적 시인과 구분되는 자의식을 가진 자로서 "활성도가 높은 밤"에만 나타나는 창조된 인물이다. 이 인물은 '카페인' 이전과 이후에 확연히 다른 양상의 태도를 보이는데, "내 머리를 떠난 생각들이 백야 속에 서성인다"고 언술하며 자신 안의 통제되지 않는(자신을 떠나고 싶은) 자의식이 있음을 앞부분에서 제시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탈을 꿈꾸는 욕망이 꿈틀대더라도 현실에서 그것을 쉽게 실천하지 못한다. 그러다 '카페인'이 몸속에 들어오면 자의식의 활성도가 높아져 끝없이 분출하는 자신만의 생각과 만난다. 「카페인」 속의 화자도 마찬가지다. '카페인'이 몸속에 들어오자 '팜므파탈'을 실천하고 싶은 자신만의 '욕망'과 조우한다.

카페인이 제공한 '백야'는 백지상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래서 '백야'가 찾아오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장막을 열어젖히고 배고픈 골목이 어둠을 할퀴며" 건너오고, "발톱들이 자리를 옮겨 다니며 생각의 반경을" 넓힌다.

"낯선 남자의 끈적이는 등과 허리"를 할퀴는 '팜므파탈'도 활발해진다. '팜므파탈'이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운명을 가진 여자이기에 시 속 '팜므파탈'은 끊임없이 남성적 질서로부터 벗어나고픈 '노골적인 생각'과 '역류성의 감정'을 대변한다.

[사진 | 펙셀]

자의식은 왜 '팜므파탈'을 자꾸 껴입어야 했을까. 그 이유를 화자는 끝내 언술하지 않는다. 활성화한 싱싱한 상태의 힘과 감각만을 제시하며 누구든지 할퀴고 물어뜯을 수 있는 '팜므파탈'의 가능성이 자신 안에 내재해 있음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몸속 가득 팽창되는 중력"과 "발끝마다 서성이는 얼룩의 세계"와 "프릴의 주름처럼 난해해지는 심장의 소란"까지 독자들이 공감하게 된다. "파멸을 위해 손톱들이" 활성화하고 있는 이미지가 생생하게 반복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불일치의 감정을 시인들은 탐미한다. 따라서 불일치의 감정은 시의 출발인 동시에 추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자아는 세계와의 동일화와 비동일화의 접면을 껴안고 시적 상상과 시적 비유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현존성을 미학적으로 드러낸다.

최영랑의 「카페인」에서는 그것이 '팜므파탈'의 파괴적 이미지로 나타났다. 불모성을 내재한 현존의 뒤틀린 자아가 시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게 한, 힘과 감각이 돋보였던 의미 있는 시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poeth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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