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일선물로 ‘충성 선서’ 받은 김정은…내년엔 명절로? [뒷北뉴스]

고은희 2024. 5. 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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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다가오면 통일부 출입 기자들은 바빠집니다. 우선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여부를 챙겨야 하고, 한해 포부와 대남 정책 등을 담은 '신년사'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벤트가 있습니다. 바로 1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날입니다.

■ '만 40세' 생일도 조용하게 지낸 김정은… 닭공장 방문' 보도만 나와

올해는 특히 김 위원장이 만 40세가 되는 해여서 생일에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높았습니다. 북한은 통상 '정주년'이라고 해서 0이나 5로 끝나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를 크게 기념합니다. 이에, 평소에는 조용히 넘어가곤 했던 김 위원장의 생일을 이번만큼은 그냥 넘기지 않으리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0세 생일을 맞기 하루 전인 1982년 2월 15일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50세 생일 즈음인 1992년 2월 7일 자기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지정한 바 있어 더욱 그런 관측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올해 생일도 비교적 조용히 지냈습니다. 딸 주애와 함께 '닭공장을 현지 지도했다'는 짤막한 소식만이 관영매체 보도를 통해 공개됐을 뿐입니다. 심지어 이날 스포트라이트는 고위 간부보다 먼저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소개된 딸 주애에게 집중됐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닭공장을 함께 닭공장을 찾은 모습 (1월 8일, 노동신문)


영국 BBC는 김 위원장이 생일 때마다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이유에 대해 북송 재일교포 출신으로 알려진 친모와 비교적 어린 나이 등을 부각하지 않기 위한 의도로 추정된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1984년 1월 8일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2020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과 2014년 1월 미국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 김 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던 것 등을 근거로 1월 8일을 김 위원장의 생일로 추정할 뿐입니다.

그런데, 북한 내부 사정은 다르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2년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 생일 전날인 1월 7일 오후 5시부터 9일 0시까지 특별경비근무 기간을 선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8일 당일에는 각 단위별로 '충성의 선서 모임'을 갖고 동상과 사적지 등에 꽃다발을 증정하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 알고보니 김정은 생일 아침 '충성 선서' 받아..."김정은 생일에 한 건 처음"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 생일을 안 챙기는 줄 알았는데,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챙기고 있더라'는 전언이 사실에 가깝다는 근거가 제시됐습니다. 바로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 맹세를 담은 '선서문'이 입수된 건데요. 이 선서를 김 위원장 생일인 올해 1월 8일 아침 출근 직후 모든 인민들을 대상으로, 사업소별로 받아냈단 겁니다.

이 선서문을 입수한 샌드(SAND)연구소의 최경희 대표는 "이 문건은 우리가 2월에 입수했고, 제보한 사람에 따르면 1월 8일 김정은 위원장 생일에 전국 모든 인민들이 같이 (선서)한 것"이라며 " 원래 태양절(김일성 생일)이나 광명성절(김정일 생일)에 주민들의 충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선서를 하는데 김정은 생일에 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샌드(SAND)연구소 영문뉴스레터’가 공개한 김정은 충성 맹세를 담은 ‘선서’문


■ 선서문 속 '김정은 조선' 표현 눈길… 자신만의 우상화 브랜딩 작업 '착착'

5개 조항으로 된 선서문을 보자면, 첫 조항부터 "우리의 운명이시며, 미래이신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견결히(굳세게) 옹호보위하겠다"고 돼 있고, 두 번째 조항은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영도에 절대 충성, 절대 복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의 전면적 발전을 위해 힘찬 투쟁과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강도 높은 투쟁도 선서문에 강조돼 있습니다.

가장 의미심장한 건 다섯 번째 조항입니다. "조국통일과 주체 혁명 위업의 종국적 승리를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가겠다"는 다짐인데요, 앞서 '우리는 김정은 조선의 공민된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우리 국가의 존엄과 명예를 수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최경희 대표에 따르면,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은 노동신문에 딱 한번 나왔고, 올해 들어서 신년 경축 음악회를 할 때 아나운서가 "김정은 조선을 빛낸다"고 멘트한 게 다라고 합니다. 그만큼 희소하게 사용되던 표현인데 북한 내부에선 이 표현이 담긴 선서가 최근 집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최 대표는 "2024년 들어서 김정은이 국가의 어버이로 등극하면서 하나의 대(大)가정론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북한이라는 이 하나의 공간이 '김정은 조선이다'"라고 강조하려는 의도라면서 "북한을 '김정은 조선'이라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런 의지들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새 선전가요 ‘친근한 어버이’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4월 17일, 조선중앙TV)


최근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 새 찬양가인 '친근한 어버이'를 발표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친근한 어버이'는 화성지구 2단계 1만 세대 주택 준공식 기념 공연에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조선중앙TV를 통해 뮤직비디오도 공개됐는데, 리춘히를 비롯한 아나운서들이 엄지를 치켜드는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김명식 해군사령관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등도 등장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노래 가사 구성 자체는 김정일 찬양가인 '친근한 이름'과 유사한데,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만을 위한 신곡을 발표함으로써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지도자 및 국가 브랜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부 당국자 또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독자 우상화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친근한 어버이' 가사를 학교와 기관에 부착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북한이 ‘김일성 생일 112주년 경축 평양학생소년궁전 예술소조원 종합공연’을 진행하면서 무대 상단에 ‘태양절’ 대신 ‘4.15 경축’이란 문구를 등장시킴 (4월 13일, 조선중앙통신)


■ '선대 지우기' 주력 동시에 셀프 '태양' 우상화는 박차… 본인 생일도 명절로?

김정은 위원장은 독자 브랜딩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선대 지우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간 북한의 최대 명절로 꼽혔던 김일성 생일(4월 15일)인 '태양절'을 철저히 감추는 것도 그 일환으로 보입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올해 '태양절'을 '4월 명절'이나 '민족 최대 명절' 등으로 바꿔서 표현했습니다.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도 기존 '태양의 성지'라는 표현 대신에 '애국, 혁명의 성지' 등으로 바꿨습니다. 북한 전문 여행사인 '고려투어'는 최근 홈페이지에 "북한 파트너(당국)로부터 '태양절'(김일성 생일)이란 문구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을 '태양'으로 지칭하는 사례는 늘었습니다. 지난달 17일 노동신문에 게재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글에서 김 위원장은 "주체 조선의 태양"으로 불려졌고, 지난 3월 강동종합온실 준공 행사에선 '주체 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현수막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북한은 지난 2016년 제7차 당대회를 앞두고 김 위원장을 '21세기 위대한 태양'으로 부르며 우상화 작업을 착착 진행시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럼 우상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이 진행될까요? 가장 유력하게 점쳐지는 건 바로 내년 김 위원장 생일을 '태양절'이나 '광명성절'처럼 명절로 지정하는 안입니다. 이미 내부적으로 생일 아침에 인민들의 충성 선서를 '생일 선물'로 받았으니,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자신의 유일 영도 체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을 명절화해 우상화의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심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입니다. 김 위원장은 올 초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지 말고 남북은 별개의 국가로 살아야 한다며 '통일 지우기'에 열을 올리는 등 대남 정책에 있어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에 분명히 선을 긋는 정책을 천명했는데요. 조만간 헌법 개정을 통해 이를 명문화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도 최고인민회의를 거쳐야 하는데요, 임기가 만료된 현 14기 대의원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조만간 회의를 열고 헌법 개정 문제 등을 처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새로 개정될 헌법 속에 대남 노선은 어떻게 정리될지, 또 그로 인해 남북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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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희 기자 (ging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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