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뛰는데 내 월급만 그대로”···소확행도, 체면도 버린 직장인들[World of Work]

정혜진 기자 2024. 5.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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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외출 일상서 지운 英 직장인들
맥주·커피·음료 소비도 줄여
中 직장인, 저임금 불만 폭발
SNS서 '역겨운 출근룩' 유행
美에선 지원 사각지대 '앨리스'
식비 절약 위해 평균 20곳 들러
더 싼 제품 구매하는 등 발품
[서울경제]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네”

인플레이션 앞에서 전 세계 직장인들은 국경도, 언어도, 문화도 넘어서는 비통함으로 대동단결한다. 가파른 물가 상승세에 ‘과거의 나’보다 상대적 소비력이 약화한 직장인들은 과거 일상생활 속에서 한때 중요하게 여겼던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팍팍해진 생계에 대응하는 방식은 국가별로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가졌던 친구들과의 수다와 맥주 한 잔 등 ‘소확행’부터 단념하기 시작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예산 절약을 위해 막대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에 사로잡힌 누군가는 심지어 체면마저 포기했다.

자체 외출 금지···외식·데이트 지운 英 직장인들

영국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여파로 내년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경제 성적을 받아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곳의 직장인들은 ‘외출의 행복’을 포기하기로 했다. 26세 직장인인 미아 웨스트랩은 올해를 ‘구매 금지의 해’로 규정하고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와 데이트는 물론 청량 음료 등 사소한 구매에서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의료 및 사회 관리 분야에서 근무하며 연간 3만 4000파운드(약 5820만 원)을 벌어들이는 웨스트랩은 매달 적자 예산을 감당하고 있다. 웨스트랩은 “이제 50파운드가 몇 년 전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며 “확실히 우리 세대는 재미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라이브스트리밍 플랫폼 킵허시에 따르면 영국 Z세대 가운데 외출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의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또한 갤럽은 18~34세 청년들 가운데 ‘술을 마신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최근 20년 동안 72%에서 62%로 감소했다고 전했다. 유흥가를 찾거나 담배를 피는 이들의 비중도 줄어들었다. 텔레그래프는 “치솟는 임대료와 생활비로 인해 청년층의 예산이 쪼그라들었다”며 “그들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진=이미지투데

외출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자 청년들은 맥주나 커피 한 잔의 ‘소확행’ 역시 빠르게 포기하고 있다. 영국맥주주점협회(BBPA)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9~2023년) 맥주 1파인트당 가격은 20% 이상 올라 4.60파운드에 달했으며 런던의 경우 평균 6파운드를 넘어섰다. 22살의 에밀리 쇼는 “5파운드 수준의 라떼 한 잔이야 사서 마실 수는 있다”면서도 “그래도 다음부터는 수돗물을 채워 마셔야 한다”고 전했다. 야간업산협회의 마이클 킬은 이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들에 대한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진 것)”이라며 “사회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일상생활에 드는 비용 때문에 직장인들이 쓸 돈이 없어 외출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어려움이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고 문화를 경험해야 하는 청년들의 경험의 폭이 좁하지고 있다는 우려 역시 내놓는다.

#역겨운출근룩···잠옷 입고 출근하는 中 직장인들

중국의 직장인들은 이보다 더 특이한 방식으로 현실에 맞서고 있다. 중국의 Z세대 사이에서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의 ‘역겨운 출근룩’을 자랑하는 유행이 불고 있다. 유행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것 같은 회색 잠옷 상·하의에, 후줄근한 플리스를 걸치고, 얼굴을 완전히 덮는 바라클라바를 쓴 다음, 원색의 양말에 털이 북슬북슬한 슬리퍼를 신고서 출근하기 직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이들은 #역겨운출근룩 #못생긴옷은일할때입어야 #ootd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사진을 SNS에 게시한 후 누가 더 갖춰입지 않았는지를 뽐내고 경쟁한다.

사진=더우인

#역겨운출근룩 해시테크는 중국 SNS 플랫폼인 웨이보에서만 1억 4000만 건 이상의 조회수와 토론을 이끌어냈다. 한 중국 틱톡커(중국명 더우인)는 최근 상사로부터 “끔찍하다”는 비난을 산 출근 복장을 게시해 75만 2000개의 ‘좋아요’를 받고 게시물은 140만 번 넘게 다시 공유됐다. 다른 한 중국 여성 역시 노란색 네온 조끼와 무릎 길이의 헐렁한 반바지로 맞춘 출근 복장을 게시하며 “직장 동료가 나보고 야인처럼 옷을 입었대”라고 자랑했다. 또 다른 이는 겨자색 발가락 양말에 화려한 구글이 달린 검정색 샌들을 신은 출근룩을 선보였다. 다른 게시글에는 이런 답글이 달린다. “그렇게 짠 월급을 받고 못생긴 동료들과 일하는데 도대체 내 복장에 뭘 기대해?”

외신들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중국에서 젊은 직장인들이 저임금과 고강도 연장 근무, 열악한 환경에 이르기까지 직장에 대한 갖은 불만을 엽기적인 유행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14.9%를 기록했다. 5개월 간 공백을 깨고 발표된 실업률에서 6200만 명의 대학 재학생 등을 제외됐다. 취업 관문을 어렵게 통과하더라도 이들은 쉽지 않은 근무 환경과 조건에 부딪힌다. 중국 컨설팅업체 마이커스에 따르면 중국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 첫해 받는 평균 월급은 5833위안(약 110만 원)으로 베이징 외곽의 허름한 아파트 월세 수준(6000위안)을 밑돈다. 패션 브랜드 컨설팅 업체 보프로젝트의 보한 치우 창업자는 “일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은데 (복장을) 왜 신경 쓰느냐는 게 직장인들의 관점”이라고 말했다.

국가 지원 ‘사각 지대’···발품 파는 美 ‘ALICE’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는 미국에서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앨리스(ALICE)’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앨리스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할 만큼 돈을 벌지만 주거비와 의료비 등 필수 생활비를 댈 여력이 없는 이들을 의미한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미국 인구 가운데 앨리스의 비중은 29%에 육박한다. 각 주별로 최소 32% 이상이 앨리스로 전락했고 남부 지역의 경우 주민의 절반이 앨리스이거나 그 이하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앨리스들은 삐걱거리는 사회 안전망에 틈틈이 난 구멍들로 빠져버린 그룹”이라며 경제적으로 소외된 더 많은 미국인들이 ‘앨리스 버킷’에 빠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직장인 가운데서도 나이가 가장 적거나 가장 많은 이들이 앨리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16~25세의 Z세대가 36%를, 부머 세대 이상이 39%를 차지했다.

이들 직장인들은 임금 인상 속도가 각종 생계비가 치솟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인 푸드 스탬프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저가 매장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있다. 데이터 분석 업체 뉴머레이터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최근 1년간(2023년 3월~2024년 2월) 평균 20.7개의 할인 매장에서 식료품을 구매했다. 이는 4년 전과 비교하면 23% 증가한 수준이다. 유나이티드포앨리스의 스테파니 후프스 책임자는 “대부분의 직업이 생계 비용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기 않는다”며 “이는 수학적인 방정식이자 구조적인 문제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토요일 ‘The World of Work’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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