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지금 '재희 타임', 정재희 '부스터'는 꺼지지 않는다[인터뷰]

김성수 기자 2024. 5.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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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팬들에게 친절하고, 동료들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성실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선수가 독기까지 품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영일만 부스터' 정재희(30)는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햄스트링 부상을 이겨내고 팀의 주포로 떠올라 'K리그1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스포츠한국은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한 포항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정재희를 만나 지난 시즌 부상으로 고생했던 것, 이를 딛고 올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을 들어봤다.

햄스트링 부상을 이겨내고 올 시즌 K리그1 득점 선두를 달리는 포항 스틸러스 정재희.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정재희가 포항에 오기 전, 기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경기가 있다. 바로 2021시즌 FA컵(현 코리아컵) 결승 2차전 대구FC와 전남 드래곤즈의 경기. 당시 정재희의 소속팀 전남은 홈에서 펼친 1차전서 대구에 0-1로 밀린 채 2차전 원정에 임했기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재희는 김천 상무 전역 후 첫 경기로 출전한 이 맞대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1골 1도움을 올리고 팀의 역전 우승을 이끌었다. 전남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역대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포항으로 이적한 것.

"전역 후 전남에 복귀해 새로운 선수들과 합을 맞추는 중이었다. 약 한 달간 쉬다가 훈련에 들어간 탓에 컨디션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훈련 중에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 (박)찬용이가 '뭐하는 거냐. 상무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더라(웃음). 김천에서 K리그2 우승을 이루고 온 뒤라 자신감이 많이 올라온 상황이었는데, 정작 퍼포먼스는 좋지 않아서 경기에 나서면 팀에 폐만 끼치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잔디를 밟으니 다시 자신감이 올라왔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강한 정재희의 '해결사 본능'은 포항에서의 세 번째 시즌인 올해 초반부터 번뜩이고 있다. 그는 K리그1 10라운드까지 8경기 7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앞서 터뜨린 4골이 모두 후반 추가시간에 나온 득점(3월17일 vs광주 후반 추가시간 3분, 3월30일 vs제주 후반 추가시간 2분, 4월7일 vs대전 후반 추가시간 2분, 4월13일 vs서울 후반 추가시간 3분)이고 그중 초반 3골이 결승골이다. 정재희가 워낙 극장골을 많이 넣으니, 포항 팬들 사이에서는 '재희 타임'이라는 믿음의 신조어까지 탄생했을 정도.

"교체로 운동장에 들어갈 때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반드시 골을 넣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뛰려는데, 공이 운 좋게 발 앞에 오더라. '호재희'로 함께 불릴 정도로 (이)호재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 지난달 20일 김천전에서는 이제 본인에게도 어시스트를 달라고 하더라. 솔직히 그날 호재에게 공을 주고 싶었는데 위치를 잘 포착하지 못했다(웃음).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좋은 호흡을 이어나갈 것이다."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1 선두 질주 주역인 정재희(왼쪽)와 이호재.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누구보다도 빛나는 2024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는 정재희지만, 지난 2023시즌은 그에게 '악몽'이었다. 무려 네 번이나 찾아온 햄스트링 부상에 눈물을 머금고 시즌 대부분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포항이 지난해 K리그1 2위와 FA컵 우승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선수로서 기쁘면서도 많이 아쉬웠을 한해다.

"지난 시즌 6라운드에서 햄스트링이 15cm 이상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나마 재활을 빨리 해서 7월 복귀를 눈앞에 뒀는데, 그때 또 찢어진 거다. 결국 2023년에만 4번의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대부분의 경기를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팀원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기뻐하는 것은 나 역시 좋았지만, 그 안에 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슬펐다. '복귀하면 잘할 수 있을까, 계속 다치는데 이전 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정재희의 성실함과 의지는 올 시즌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올 시즌 개막 전, 평소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복귀 시기도 일부러 늦췄다. 동계 훈련 때도 몸을 천천히 끌어올리며 최대한 다치지 않으려고 했다. 밀가루, 튀김, 탄산, 초콜렛도 모두 끊었다.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 갔을 때, 그들이 튀김이나 치킨을 먹으면 쳐다보기만 하다가 기름기 적은 고기와 밥을 먹으며 참아낸다."

정재희는 포항에 FA컵 우승을 안긴 김기동 감독 체제에 이어 현재 리그 1위를 이끌고 있는 박태하 감독 체제까지 경험하고 있는 선수다. 구단 레전드이자 전현직 사령탑인 두 감독을 보는 정재희의 시선은 어떨까.

"박태하 감독님은 굉장히 차분하다. 현재는 내게 요구하시는 게 많지 않은데, 초반부터 너무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그러신 듯하다. 김기동 감독님은 상대적으로 장난기가 있으신 편이다. 그런데 두 분 모두 훈련이나 경기 중 변화를 줘야할 때 요점만 찍어주시는데, 그게 다 들어맞는 게 신기하다. 심지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좋다."

ⓒ프로축구연맹

정재희는 팬들 사이에서도 특히 친절하기로 유명한 선수다. 팬을 향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

"경기 끝나고 기다리는 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사인을 해드리다가 보안요원들의 퇴근을 위해 양해를 구하고 가다가도, 팬들의 목소리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분 더 해드린다. 많은 응원을 보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있다. 최근 홈 승리가 없다는 점에서 죄송하다. 전북전은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주시길 바란다. 요새는 어린 팬들도 나만 보면 그냥 골도 아닌 '극장골'을 넣어달라고 한다(웃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득점이든 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재희는 마지막까지 투지 넘치는 각오로 인터뷰를 마쳤다.

"감독님이 내게 후반전 '조커 카드'로서 흐름을 가져오는 역할을 자주 부여해주셨기에 그에 집중했다. 물론 선수로서 선발로 뛰고 싶은 욕심은 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다. 선발로 나섰을 때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감독님의 마음을 조금은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웃음). '오늘도 다치지만 말자'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간다. 골을 넣으면 당연히 좋지만, 득점하지 못하더라도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고 있다.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프로축구연맹

정재희는 해당 인터뷰 직후 펼쳐진 10라운드 강원FC 원정경기에서 곧바로 선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해트트릭'을 터뜨린 정재희는 '팀 승리, 팀 1위 탈환, 개인 득점 선두 등극'까지 네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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