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영장 청구서로 재구성한 ‘오타니 스캔들’ [경기장의 안과 밖]

최민규 2024. 5. 4.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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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가 통역사의 불법 도박·불법 송금과 관련한 대형 스캔들에 휘말렸다. 통역사에 대한 영장 청구서를 입수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영장 청구서에 오타니가 피해자로 되어 있다.
2023년 12월 오타니 쇼헤이(오른쪽)와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왼쪽)가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UPI

메이저리그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29·LA 다저스)가 2024년 시즌 개막과 함께 대형 스캔들에 휘말렸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이 열린 3월20일, 그의 통역사인 미즈하라 잇페이(40)가 구단으로부터 해고됐다. 오타니의 개인 계좌에서 돈을 훔쳐 불법 스포츠도박을 했다는 사유다. 그런데 미즈하라는 해고 전 스포츠 채널 ESPN과 ‘오타니가 내 도박 빚을 갚아주기 위해 도박사에게 직접 송금을 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미즈하라는 이 발언을 철회했고, 오타니의 변호인은 ‘절도’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미즈하라가 어떻게 오타니 몰래 큰돈을 송금할 수 있었는지 의혹이 뒤따랐다. 미국 은행은 거액 송금에 대해 엄격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다. 자금 출처와 용도에 대한 증빙도 요구한다. 오타니가 송금 과정에 개입했다면(이럴 경우, 오타니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법률에 따라 처벌되거나 추방될 가능성도 있었다. 불법 도박 자체보다 불법 송금이 훨씬 중죄다.

이 사건을 관할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연방법원 치안판사는 4월11일 미즈하라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사건을 수사 당국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미국 국세청(IRS) 경력 22년인 수사관 크리스 세이무어가 작성한 36쪽 분량 영장청구서에서 알 수 있다(미국 법률에 따라, IRS가 영장을 청구할 수 있고 이후 기소와 재판은 연방 검찰이 담당한다). 청구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보았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활동 중인 이종원 변호사의 도움을 얻었다. 청구서는 오타니를 ‘피해자(Victim)’로 기술하고 있다.

■ 문제의 x5848 계좌

청구서에는 ‘x5848’로 끝나는 계좌번호가 등장한다. ‘피해자’인 오타니가 구단으로부터 받는 급여가 입금되는 미국 은행 계좌다. 2021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총 1600만 달러(약 223억원)가 이 계좌에서 불법 스포츠도박 운영자와 관련된 계좌로 이체됐다.

청구서에는 익명 처리됐지만 이 운영자는 매슈 보이어라는 인물이다. IRS와 국토안보부는 지난해 10월 보이어의 자택을 급습해 휴대전화 등을 압수했다. 휴대전화에서는 그와 미즈하라 사이에 암호화 채팅 앱으로 오간 텍스트 메시지 수천 건이 발견됐다.

메시지에서는 미즈하라가 보이어가 개설한 불법 도박으로 수백만 달러를 잃고, 변제 요구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미즈하라가 돈을 갚지 못하자 보이어는 2023년 11월17일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왜 전화를 받지 않나. 지금 뉴포트비치에 있는데 오타니가 개를 산책시키고 있네. 오타니에게 물어볼까?”라는 협박이었다. 이틀 뒤 미즈하라는 “솔직히 암호화폐와 스포츠베팅으로 너무 많은 돈을 잃었다. 물론 내 잘못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미즈하라가 x5848 계좌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협박을 받기 훨씬 이전부터다. 이 계좌는 2018년 미즈하라가 오타니와 함께 은행에 가서 개설했다. 영어를 못하는 오타니 대신 미즈하라가 개설에 필요한 모든 일을 대신했다. 이 계좌는 개설 이후 2021년 10월27일까지 아무런 온라인 송금 거래가 없었다. 미즈하라는 2021년 은행에 연락해 계좌와 연동된 전화번호, 이메일, 휴대전화 등을 모조리 자기 것으로 교체했다. 이메일 계정은 오타니의 것과 한두 글자 틀릴 정도로 유사하게 만들었다.

미즈하라는 2021년 11월15일 처음으로 오타니의 돈을 훔쳤다. x5848 계좌를 페이팔과 유사한 온라인 송금 서비스에 연결해 4만 달러(약 5400만원)를 인출했다. 6만 달러 한도까지는 본인 인증 없이 앱으로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였다. 처음 인출한 금액은 이 정도였다.

하지만 한번 성공한 뒤에는 대담해졌다. 2022년 2월2일 앱을 통하지 않고 x5848 계좌에서 직접 송금을 시도했다. 용도는 ‘자동차 구매’로 신고했다. 갑작스러운 거액 송금을 수상하게 여긴 은행은 계좌를 동결했다. 그리고 사실인지확인하기 위해 계좌와 연동된 전화번호로 연락했다. 물론 오타니가 아닌 미즈하라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오타니 행세를 하며 계좌 동결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은행은 규칙에 따라 본인 확인을 위한 질문(시큐리티 퀘스천)을 했고 미즈하라는 모두 맞게 대답했다. 자기 자신이 설정한 질문과 답변이라 틀릴 수가 없었다.

계좌 정지가 풀리자 2월4일 미즈하라는 다시 30만 달러(약 4억원) 송금을 시도했다. 은행은 재차 확인 전화를 걸어왔고, 미즈하라는 “내가 오타니가 맞다”라고 답했다. 은행은 계좌 주인과 직접 통화가 가능하고 이메일과 휴대전화 번호가 일치하므로 송금을 승인했다.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2023년 6월에는 50만 달러를 송금했다. 다음 시도에선 100만 달러(약 13억5000만원)가 넘었다. 불법 도박 관련 송금 외에도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야구 카드’ 32만5000달러어치를 구매했다. 돈세탁용으로 추정된다.

■ 통역사의 ‘거짓말’

오타니는 연봉 외에도 광고 출연 등으로 거액의 수입을 올리는 ‘걸어 다니는 회사’다. 미즈하라 외에도 에이전트, 에이전트가 고용한 회계·재무·세무 담당자들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오직 미즈하라만이 일본어를 할 수 있었다. 에이전트 네즈 발레로는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을 두지 않았고, 필요할 때만 가끔 통역을 고용했다.

발레로는 x5848 계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미즈하라는 발레로의 문의에 “오타니가 개인 용도로 이 계좌를 쓰고 싶어 한다. 다른 누군가가 모니터링하는 건 원치 않는다”라고 답했다. 발레로는 이후 오타니에게 계좌 관련으로 직접 질문을 한 적이 없다. “미즈하라의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이유에서였다.

다저스 구단은 서울시리즈 기간 중 수사 당국으로부터 미즈하라의 혐의를 통보받았다. 구단 관계자들은 3월20일 1차전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미즈하라를 추궁했다. 오타니는 이 자리에 있었지만 대화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다. 미즈하라는 궁금해하는 오타니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라며 숙소로 동행했다. 이 자리에서 미즈하라는 x5848 계좌에 대해 처음으로 고백했다. 라커룸에서 구단 관계자 및 선수들에게 “오타니가 도박 빚을 대신 갚아준 것”이라고 거짓말했다고도 했다.

■ 수사 당국이 오타니를 ‘피해자’라고 판단한 이유

오타니는 한국에서 돌아간 뒤인 4월2~3일 IRS와 국토안보부 수사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일본어가 가능한 통역이 대동했다. 오타니에 따르면, 미즈하라와는 일본프로야구(NPB)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에 처음 만났다. 당시 미즈하라는 니혼햄 구단 외국인 선수 통역 담당이었다. 오타니가 2017년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와 계약하자 그를 따라와 통역 업무를 맡았다. 통역 외 운전, 가사 등 개인 매니저 업무도 수행했다. 올해 오타니가 다저스로 이적할 때도 동행했다.

오타니는 수사 요원들에게 개인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자발적으로 제공했다. 당국은 오타니, 미즈하라, 불법 도박업자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도 함께 조사했다. 오타니가 도박과 관련해 언급한 메시지가 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타니가 도박 사이트나 문제의 x5848 계좌에 로그인한 흔적도 없었다.

4월12일 미국 연방 검사 마틴 에스트라다가 미즈하라 잇페이를 기소했다고 발표하고 있다.ⓒAP Photo

당국은 미즈하라가 은행 직원과 통화한 녹음 기록도 확보했다. 영어가 유창해서 오타니의 음성이라고 볼 수 없었다. 송금 관련 통화는 은행에 기록으로 남는다. 오타니가 ‘공범’이었다면 굳이 미즈하라가 오타니로 가장해서 불리한 증거로 남길 이유가 없다는 게 수사 당국의 판단이다. 오타니가 도박에 개입했다면 도박 수입은 미즈하라와 나눠 가져야 한다. 하지만 수입은 모두 미즈하라의 계좌로 들어갔다.

미즈하라가 범행 사실을 인정한 흔적도 있다. 그는 ‘시그널’이라는 암호화 앱으로 보이어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도박 스캔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3월20일께 미즈하라는 보이어에게 “기사를 봤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보이어는 “네가 훔친 게 아니잖아”라고 답신했다. 그러자 미즈하라는 “엄밀하게 보자면 내가 훔친 게 맞다. 모두 내 책임(It’s all over for me)”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 오타니의 고난은 끝났을까

미즈하라는 연방법인 은행사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최고 징역 30년 및 100만 달러 벌금이 부과될 수 있는 중죄다. 4월11일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다음 날 보석금 2만5000달러와 도박중독 치료를 조건으로 보석됐다. 곧 기소 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를 심문하는 기소인부 절차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형법은 유죄에서 ‘합리적 의심을 넘어설 정도’의 증거를 요구한다. 미즈하라는 불리한 증거를 너무 많이 남겼다. 그래서 형량협상(plea bargain)으로 형을 감경받는 대신 유죄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즈하라는 이미 ‘알거지’ 상태라 오타니는 피해액을 돌려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송금 사기에 대한 조사는 통상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파장을 고려해 수사가 빨라졌다. 기소와 재판에서 원고를 맡게 될 연방 검찰도 4월11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오타니는 미즈하라의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에선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고난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오타니의 계좌에 대한 IRS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금융감독기관의 조사가 오래 이어질 것이다. 영장 청구서에서 드러난 다저스 프런트와 오타니 에이전트사의 심각한 실수도 조사 대상이다. 구단 관계자와 에이전시가 ‘크로스체크’ 없이 미즈하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전화 통화와 ‘시큐리티 퀘스천’만으로 계좌 동결을 해제한 은행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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