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km 파나마 운하 건설의 최대 방해꾼은 '모기'였다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5.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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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5월 3일, 파나마 운하 공사가 시작됐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약 82㎞의 이 운하는 1914년 개통된 뒤 미국 관할하에 있다가 1999년 12월 31일부터 파나마에 전권이 이관됐다.

오늘날 매년 약 1만 9000척의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며, 이는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5%를 차지한다.

2007년 8월에는 통항량 증가와 선박의 대형화 추세에 따라 이 운하 옆에 새로운 갑문을 건설하는 공사가 착공돼 2016년 6월 26일 개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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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착공
파나마 운하 서쪽 끝 지점 보도 기사(출처: Unknown author, 흑백사진(190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4년 5월 3일, 파나마 운하 공사가 시작됐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약 82㎞의 이 운하는 1914년 개통된 뒤 미국 관할하에 있다가 1999년 12월 31일부터 파나마에 전권이 이관됐다. 이 운하는 오늘날에도 세계 무역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수로 건설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지만, 기술적인 어려움과 풍토병로 인해 수행되지 못했다. 19세기 프랑스가 운하 건설을 시작했지만, 역시 풍토병과 재정난으로 인해 9년 만에 중단됐다.

결국 미국이 1904년 운하 건설권을 인수해 공사에 들어갔다. 이때야 비로소 풍토병의 원인이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임이 밝혀졌다. 공사는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의무 지원을 총괄한 육군 군의관 윌리엄 크로포드 고거스 소장의 활약이 컸다. 그래도 운하 개통 공사 과정에서 총 2만 8000여 명이 사망했다.

파나마 운하 개통은 세계 무역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선박들은 더 이상 남미 대륙을 돌아가는 위험하고 시간 소모적인 항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로 인해 해상 운송 비용이 크게 절감됐고, 세계 무역량이 급증했다.

1903년에 체결된 '헤이-뷔노 바리야 조약'은 미국이 파나마로부터 영구적으로 파나마 운하 지대를 임대하고, 운하 건설 및 운영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약은 파나마에게 실질적인 주권을 박탈하는 것이어서 파나마의 불만이 컸다. 이에 1977년 '토리조스-카터 조약'을 체결해 1999년 12월 31일부터 파나마 운하 운영권이 파나마에 이양됐다. 단, 운하의 영구 중립을 보증하는 조건이 붙었다.

오늘날 매년 약 1만 9000척의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며, 이는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5%를 차지한다. 2007년 8월에는 통항량 증가와 선박의 대형화 추세에 따라 이 운하 옆에 새로운 갑문을 건설하는 공사가 착공돼 2016년 6월 26일 개통됐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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