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방금 예약함’ 당신을 꾀어내는 온라인 쇼핑몰의 속임수

황지윤 기자 2024. 5. 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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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속이는 ‘다크패턴’ 고발
/김영사

당신이 속는 이유

대니얼 사이먼스·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지음|이영래 옮김|김영사|472쪽|2만4000원

/어크로스

다크패턴의 비밀

해리 브리그널 지음|심태은 옮김|어크로스|344쪽|2만원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앞서 러시아는 군대를 집결하고, 군사 작전을 펴고, 침공을 암시하는 정치적 조치를 취했다. 미국 정부는 몇 개월 전부터 침공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도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당신이 속는 이유’(김영사)의 두 저자는 말한다. “러시아가 실제로 무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속는 게 당연, 묻고 또 물어라

‘투명 고릴라 실험’으로 유명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가 신작을 냈다. 이 실험은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라는 요구에 몰두한 실험 참여자들이 지나가는 고릴라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내용. 그만큼 인간의 주의력은 쉽게 흐트러지고,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우리는 잘 속는다. 보고 들은 것을 진실이라고 가정해버리는 ‘진실 편향(truth bias)’도 갖고 있다. 사기꾼은 이 점을 십분 활용한다.

인간의 4가지 인지 습관(집중·예측·전념·효율)이 특히 취약하다. 심령술사의 말에 빠져들다 보면 그가 ‘맞힌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예측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맹신하기도 한다. 2004년 미 CBS는 조지 W. 부시가 방위군으로서 의무를 회피했다는 대형 오보를 낸다. 선입견에 근거해 취재원이 제공한 메모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효율을 중시하다가 중요한 질문을 빼먹기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는 습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라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고 자문해야 한다. 매 순간 의심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지 되짚고,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필요하다.

1993년 체스 월드 오픈에 ‘폰 노이만’이라는 낯선 선수가 출사표를 던진다. 예측 불가의 수상한 플레이를 벌여 부정행위가 의심된다. 주변을 맴도는, 공범으로 추정되는 이도 포착된다. 하지만 물증은 없다. 우수한 성적으로 특별상을 받게 된 노이만을 수석 감독이 조용히 부른다. 간단한 체스 퍼즐을 풀어보라고 요구한다. 노이만은 수상을 거부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사실상 부정행위를 시인한 셈. 수석 감독은 적시 적소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노이만은 그 뒤로 다시는 체스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온라인에 판치는 속임수들

온라인으로 범위를 좁혀보자. ‘다크패턴의 비밀’(어크로스)은 온라인에서 소비자를 속이려 드는 기업의 민낯을 폭로한다. 다크패턴(dark pattern)이란, 사용자가 어떤 행위를 하도록 속임수로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이 말을 만든 연구자 해리 브리그널이 책을 썼다.

호텔 예약 플랫폼의 압박 판매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2017년 부킹닷컴을 예로 든다. 호텔을 예약하려고 하면 새빨간 박스에 작은 알람 시계 아이콘과 함께 ‘누군가 방금 예약함’이라는 문구가 뜬다. 마치 누군가 실시간으로 예약한 것처럼 보인다. 조바심이 느껴져 얼른 예약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커서를 갖다대 보면 ‘4시간 전에 예약함’이라고 뜨는 식이다. ‘기간 한정 할인’에 과연 종료일이 있는지도 미지수다.

영국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는 항공권을 구매할 때 여행자 보험 가입이 필수인 것처럼 인터페이스를 만들었다. 보험 미가입 항목은 찾기 어렵게 숨겼다. 이런 다크패턴 때문에 라이언에어는 2015년 이탈리아 반독점 규제 당국에 85만유로의 벌금을 냈고, 2022년 노르웨이 소비자 평의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다크패턴을 비판하는 기사를 숱하게 써온 ‘뉴욕타임스’도 다크패턴을 쓴다. 디지털 구독을 취소하려면 고객 서비스 센터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집단 소송을 당한 후 지난해에야 손쉽게 온라인 구독 취소가 가능해졌다.

저자는 대안으로 엄격한 규제를 이야기한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처럼 애플·구글·메타·아마존 등 다국적 기업의 다크패턴을 엄격히 규제하는 법이 있어야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7월 ‘온라인 다크패턴 자율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올해 1월 6개 유형의 다크패턴 규율을 위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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