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실'이라 쓰고 '법무법인 윤석열'이라 읽는다?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 14일 통의동 집무실 첫 출근 날 민정수석 폐지를 선언한다. 그는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세평 검증을 위장해 정적과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일명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라진 지 22년 된 '사직동팀'이 언급된 건 생뚱맞은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했지, 전직 대통령 네 명을 뛰어 넘고 김대중 정부를 거론한 이유는, 과거 민간인 사찰 '흑역사'의 상징인 '사직동팀'을 민정수석 폐지의 명분으로 삼은 건 왜일까. 그로부터 2년 후 총선에서 대패한 대통령은 다시 김대중 정부를 거론한다. 대통령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영수회담에서 "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문제점과 개선점이 있을지 정보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을 없앴다가 2년 뒤 다시 만들었는데 이해 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뜬금없이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걸은 건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민정수석실 업무를 '사정 정보 수집' 쯤으로 여기고, 민정수석실을 '사정 기관 통제 기구' 정도로 여겼다는 방증이다. 본인이 검사 출신이니 민정수석이 검찰 및 사정 기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행사하는 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게 구태여 '민정수석' 같은 거추장스러운 중간 단계는 필요 없었을 터였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조국 민정수석 보좌관을 지낸 황현선 씨의 책 <조국 그리고 민정수석실>에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민정수석'을 폐지하면서 동시에 정부 부처 안에 신설한 두 개의 조직에 주목한다. 하나는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이고, 다른 하나는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이다. 두 조직 모두 정부조직법에서 정하는 직무 범위를 벗어났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정권 초 힘이 센 대통령은 전국 총경들을 제압하고, 야당의 반대를 누르며 무리하게 신설안을 밀어붙였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조치들이 윤석열의 최측근인 한동훈과 이상민을 위한 설계라고 의심했다"는 황 씨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민정수석 폐지'라는 기만술을 펴는 한편에서 역대 어느 정권보다 사정기관을 장악력을 강화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을 법무부장관에 두고 민정수석실의 인사 정보 검증 업무를 밀어 넣었다. 자신의 왼팔에 해당하는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경찰 수사의 민주적 통제" 운운하며 경찰 조직 직할 통제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대통령은 과거 민정수석 기능을 정부 부처로 확장해, 정부 자체를 거대한 검찰로 재편했다. (여기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김대중 정부는 민정수석 기능을 없앤 게 아니고, 민정수석(차관급)을 민정비서관으로 격을 낮췄다. 지금처럼 아예 민정수석 기능을 자신의 측근이 포진한 정부 부처에 나눠준 게 아니다.)
총선 참패 후 민정수석 부활을 두고 많은 이들이 '민심 청취'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대통령실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 전달한다. 이런 게으른 분석엔 동의하지 않는다. 민심 청취가 목적이라면 굳이 검찰 출신이자 대통령의 서울 법대 후배가 민정수석에 유력하게 거론되는 배경이 설명되지 않는다. 김건희 영부인과 그 주변인들이 문제라면, 제2부속실 설치도 아니고, 특별감찰관 임명도 아니고 굳이 민정수석이어야 하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참고'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정수석을 부활시키면서 초대 민정수석에 검찰과 관계 없는 사회운동가 출신 김성재 한신대 교수를 임명했다.
결국 민정수석실 부활은 대통령의 양팔, 한동훈과 이상민의 퇴조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집권 2년차 막바지에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에서 떨어져 나갔다. 정치적 독립을 위해 기지개를 켰다. '정권 2인자'를 통해 관할했던 법무부와 검찰 조직에 대한 장악력은 약해졌다. 시스템 구축 대신 '측근'을 보내 조직을 장악한 손쉬운 결정의 후과다. 하필 서초동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영부인 소환 여부를 두고 서울중앙지검장이 정권 핵심부와 견해차를 보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경찰 쪽은 어떤가. 지난 18일 행안부 경찰국은 조달청 나라장터에 '경찰행정의 발전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행안부와 경찰의 바람직한 지휘관계를 정립하고 정부조직법, 경찰법 등 관련 법령 개정에 필요한 학술자료와 쟁점, 찬반 논거' 등의 수집에 나섰다. (4월 24일자 한국일보 "경찰국, 행안부 장관 '지휘권 확대' 착수... 경찰 장악 논란 재점화") 행안부의 경찰 통제를 강화하려는 일환인데,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이런 식의 경찰 개혁(?)이 제대로 될 거라 보는 사람들은 없다. 이미 '식물 장관'이 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겨냥해선 '이태원 특조위'가 곧 활동을 개시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 그 자신'이다. 민심 청취 기능이 생긴다 한들 '59분 대통령'이란 비아냥을 떨치지 못한다면 그 기능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용산 대통령실의 모든 수석이 대통령 면전에서 제대로된 쓴소리를 하지 못해 총선 참패와 레임덕 위기에 처했는데, 갑자기 민정수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대통령에게 안 하던 '아니오'를 할 수 있다는 걸 믿으라는 말인가.
민정수석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대통령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관리다. 문제는 영부인과 그 가족들이 연루된 의혹은 '관리'란 걸 하기도 전에 '이미' 발생해 있는 상태다. '친인척 관리'가 아니라, '친인척 비리 의혹 처리'를 관리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필연적이다. 제2부속실도 안 만들고 특별감찰관도 두지 않겠다면서 갑자기 '민정수석'을 새로 만든다면 그걸 "민심 청취 기능"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민정수석을 정권 중간에 부활시키로 한 건 최악의 선택이다. 애초에 폐지하지 말았어야 했거나, 다음 정부가 부활시키는 게 맞는 일이다. 결국 한동훈도, 이상민도 없는 정부를 끌고 갈 자신 없는 '레임덕 대통령'의 고육지책이 '민정수석 신설'이다. 온갖 '특검 위기'를 앞두고 대선 때 확언한 공약을 스스로 뒤집는 일이다. 참으로 궁색하다.
이 정부는 불리한 이슈만 있으면 김대중 정부를 팔았다. 굴욕적 한일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김대중 오부치 정신'을 찾고, 남북 대결 정책 기조를 내놓으며 뜬금없이 "국민의힘이 김대중 정신에 더 가깝다"는 궤변을 붙인다. 왜 23년전, 지금 상황과 맞지도 않게 '김대중 정부'를 팔아가며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키려 하는지, 수많은 합리적 의심들에 대해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곳곳에 포진한 '윤석열 사단'이 이제 아예 대통령실에 통째로 들어가 '윤석열 로펌'이 될 거라는 세평이 더 힘을 얻을 것이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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