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왜 ‘내 편’을 끝까지 지키지 않나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2024. 5.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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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KBS 편파보도에 맞섰다 해고된
이영풍 기자 복직 불허 타당한가
일러스트=유현호

“KBS를 상대로 해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절차에 돌입하겠습니다.”

지난달 23일 이영풍 전 KBS 기자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쓴 글이다. 먼저 이것부터 알아보자. 이영풍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해임됐을까. 2023년 초, KBS는 현 정부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편파·왜곡 보도를 쏟아내고 있었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함께한 일본 의장대 사열이 대표적인 예. 당시 KBS는 그 장면을 영상으로 내보내며 다음과 같은 해설을 내보냈다. “일장기를 향해서 윤 대통령이 경례하는 모습을 방금 보셨어요. 의장대가 우리 국기를 들고 있을 것 같지는 않고요.”

이 뉴스는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고, 좌파는 친일파 운운하며 대통령을 신나게 까댔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카메라 각도를 달리해 보면 의장대가 일장기와 함께 태극기도 들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문제가 되자 KBS는 “상황 설명에 착오가 있었다”며 사과했지만, 이 사건은 KBS에 시청료를 내지 않겠다는 불만이 폭주한 계기가 됐다.

이쯤 되면 KBS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만, 편파 보도는 계속됐다. 그러는 가운데 희대의 ‘영상 바꿔치기 사건’이 터졌다. 그해 5월 18일, KBS 이소정 앵커는 뉴스에서 민노총 건설노조의 집회를 보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찰은 며칠 전 건설노조의 1박 2일 집회를 불법이라고 못 박고 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이 집회시위법에 어긋나느냐는 논란이 불거졌고, 경찰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당일 백 브리핑에서 경찰은 민노총 건설노조 집회에서 어떤 행위가 불법인지 구체 사례까지 제시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KBS가 이런 왜곡 보도를 한 이유는 구성원 대부분이 민노총 언론노조에 속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민노총 간첩단 사건이 터졌을 때, 유독 KBS만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것도 자신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지난해 5월 18일 방영된 KBS '뉴스9' 보도 화면(왼쪽)과 이튿날 수정된 화면. 9시 뉴스 진행자인 이소정 앵커의 옷이 다르다. /KBS노동조합

하지만 KBS 안에는 소수일지라도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의로운 기자들이 있었다. 이소정의 왜곡 보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 그러나 KBS가 보여준 대응은 코미디 그 자체였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자를 징계하는 게 맞지만, KBS는 그렇게 하는 대신 18일 뉴스에서 문제가 된 부분만 재녹화해, 저장된 영상을 슬쩍 바꿔치기해버렸다. 이게 탄로 난 것은 해당 부분에서 이소정 앵커가 입은 옷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뉴스를 말할 때는 줄무늬 옷을 입었는데, 건설노조 집회 건을 보도할 때만 민무늬였으니까. 19일 뉴스를 진행할 때 입은 옷이 민무늬인 걸 보면, 다음 날 출근한 김에 바꿔치기 영상을 찍은 모양이다.

시청자를 속이려 든 것도 괘씸하지만, 들키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한 게 더 문제. 그런데도 KBS는 반성하지 않았다. 대신 여기에 관해 문제를 제기한 이영풍 기자를 민노총 위원장 출신인 성재호 보도국장이 자기 방으로 불러 겁박했다. 성재호는 이전에도 민노총 간첩단 사건에 대해 KBS가 보도하지 않은 일을 비판한 정철웅 기자를 방으로 불러 겁박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정 기자는 공황장애로 치료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성재호는, 이번 건에 대해서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보도국장실에서 나온 이영풍은 “국민 여러분, KBS를 살려 주십시오”라는 호소문을 만들어 보도국에 뿌린 뒤 김의철과 성재호의 사퇴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두 달간 계속된 그의 투쟁에 KBS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들 성원이 답지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KBS는 이번에도 반성하지 않았다. 기자 정신을 제대로 보여준 이영풍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해고를 당했지만, 이영풍의 투쟁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사장직에서 구차하게 버티던 김의철은 결국 KBS 이사회에서 해임됐고, 문화일보 출신 박민이 새로운 사장이 됐다. 취임 다음 날 박 사장은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한동훈 당시 검사장을 거짓으로 음해한 검언 유착 오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의 생떼탕 의혹, 지난 대선 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 윤 대통령의 일장기 경례 오보 등등 그간 KBS가 자행한 각종 공정성 훼손 사례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많은 이가 가출했다 돌아온 공영방송 KBS를 환영해 줬다. 아쉬운 대목은 다음이다. 오늘의 KBS를 만드는 데 공을 세운 이영풍 전 기자의 복직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화해 권고를 했으니 받아들이면 되는데, KBS 측은 이를 거절했다.

박민 KBS 신임 사장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유가 뭘까. 박민이 KBS 사장이 될 당시 이 전 기자가 사장직에 응모한 게 불쾌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경선에서 지긴 했지만, 국민의힘 소속으로 지난 총선에 출마한 게 꺼림칙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해임된 이가 자의로 정치적 행동을 하는 건 기자로 복직하는 데 결격 사유가 될 수 없다. KBS 측도 이 대목을 걸고 넘어지진 않는다. 대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댄다. “외부 로펌 등 4곳에 법률 자문을 해보니 이 전 기자를 복직시키는 게 회사에 배임이 될 수 있다.”

이영풍이 한 일이 다 옳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 방송을 외치며 회사에 항의한 게 해고당할 만큼 큰 잘못일까? 왜곡 방송으로 KBS의 명예를 떨어뜨린 이소정·성재호 등은 건드리지 못하면서 왜 이영풍에게만 이러는가. 정 배임이 걱정된다면 일단 복직시킨 뒤 그에 걸맞은 징계를 내리면 될 터, 그런데 이런 것조차 안 한다면 우리가 박민의 KBS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채널A 검언 유착 사건’의 피해자인 이동재 전 기자가 생각난다. 그 사건은 MBC와 김어준, 그리고 좌파 정치인들이 만든 공작이었지만, 당시 채널A는 이동재를 지켜주는 대신 해고해 버렸다. 이동재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뒤 해고 무효 소송을 벌이며 복직을 시도했을 때도, 채널A는 사력을 다해 그의 복직을 막아냈다. 그래서 이동재는 지금 백수다. 좌파에게 배울 점이 하나 있다면, 자기 사람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다. 다른 건으로 퇴사시키긴 했지만 MBC는 검언 유착이 공작임이 드러났음에도 이 사건을 주도한 장인수를 해고하지 않았고, ‘바이든’ ‘날리면’을 보도한 이기주도 여전히 MBC에서 근무 중이다.

보수가 이런 자격 미달자들까지 지키자는 건 물론 아니다. 최소한 이영풍이나 이동재처럼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낸 이들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비슷한 일이 또다시 벌어졌을 때 제2, 제3 이영풍이 앞장서서 싸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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