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한 딸에게 매 한번 들지 않던 젊은 엄마의 지혜

김신회 작가 2024. 5.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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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도둑질에 몰두한 어린 딸
엇나가지 않게 잡은 비결은?
일러스트=한상엽

초등학교 1학년 때, 도둑질에 몰두했었다. 동네 가게에서 파는 간식이 먹고 싶어서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찾고 아빠 양복 주머니를 뒤지다, 급기야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 처음엔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한 번 더 해 보니 별거 아니구나 싶었다.

더는 집에서 주울 돈이 발견되지 않아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기로 했다. 가게 아줌마가 한눈판 사이, 당시에 유행하던 레몬 분말 과자를 바지 주머니에 몰래 집어넣었다. 계산을 치르지 않고 가게를 빠져나오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게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걷다가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구나, 성공! 생애 처음 성공한 도둑질의 날카로운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루는 엄마가 나를 불렀다. “엄마랑 어디 좀 가자.”

영문도 모른 채 엄마를 따라나섰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엄마는 눈앞에 보이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돌을 깎아 나무 모양으로 만든 벤치에 먼저 앉고는 남은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아.” 평소와 다른 엄마의 행동에 긴장해 고분고분 걸터앉으니 엄마는 말했다. “지금부터 엄마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거야. 솔직하게 말하면 집에 가고, 거짓말하면 저 뒤에 경찰서 가는 거야.”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경찰서 건물이 떡하니 서 있었다. 그동안 엄마는 다 알고 계셨구나. 도둑질한 나를 경찰서에 집어넣으려고(!)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구나. 밀려드는 두려움에 고개를 푹 숙이자 엄마는 비장하게 물었다. “엄마 지갑에 손댔어, 안 댔어? 솔직하게 말해 봐.” 여기서 거짓말을 한다면 바로 경찰서에 끌려갈 거라는 예감에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만이 흘렀다.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대답했다. “손댔어요.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는 동요 없이 다시 물었다. “집 앞 수퍼에서 과자 훔쳤어, 안 훔쳤어?” 혼미한 정신으로도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지?’라는 생각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사실대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꼼짝없이 경찰서에 구속 수감(!)될 것 같아 목놓아 외쳤다. “훔쳤어요!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엉엉엉.”

엄마는 말했다. “거짓말이랑 도둑질은 나쁜 거야. 해선 안 되는 거야.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다신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 흐엉 흐엉 흐엉.”

엄마는 대답했다. “약속한 거야. 다신 안 그러는 거야? 솔직하게 말했으니까 경찰서 안 간다.”

그런 다음 내 손을 잡고는 내가 도둑질을 한 가게로 갔다. 거기서 주인 아주머니랑 몇 마디 나누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줌마한테 잘못했다고 사과 드려.” 나는 아줌마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잘못했어요.” 아줌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지!” 아줌마의 상쾌한 대답에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갖고 싶은 거 하나 골라. 엄마가 사줄게. 먹고 싶은 건 계산하고 먹는 거야.”

내가 뭐 잘한 게 있다고 과자를 사줘요? 범행 현장에 재방문한 죄인으로서 먹고 싶은 것 따위 있을 리 없었지만, 재빨리 예전에 슬쩍 했던 레몬 분말 과자를 집어 들었다. 예상보다 사소한 쇼핑에 엄마는 “그거면 돼?”라고 물었다. 당연하죠.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랍니다! 엄마는 계산을 치렀고, 우리 모녀는 한 번 더 수퍼 아주머니한테 인사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 집 방바닥에 동전이 놓여 있든 지폐가 굴러다니든 내 손으로 집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동시에 거짓말도 싹 끊었다. 되돌아보면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한참 어린, 삼십 대 초반의 나이였다. 나는 삼십 대 초반에 뭘 하고 있었더라? 기억해봤자 득 될 게 없을 것 같아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어느새 엄마는 칠순이 되셨고, 나는 여전히 철없는 막내딸의 모습으로 어린이날 즈음이면 그때 일을 떠올린다. 매 한번 들지 않고 자식의 나쁜 버릇의 싹을 잘라낸 젊은 엄마의 지혜가, 온 동네가 함께 너그러움으로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어쩌면 그 길로 엇나갈 수도 있었을 아이를 바로잡아 준 것은 처벌이나 낙인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면 괜찮아진다’는 믿음이었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더 관대한 어른이 되리라 다짐한다.

어른도 그렇겠지만, 아이 역시 참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 아이들이 어린이날 단 하루만이라도 주변 눈치 안 보고, 공부 걱정 안 하고 자유롭게 보냈으면 좋겠다.

미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득하지만 그래서 더 기대해 볼 만하다. 지금은 작게만 느껴지는 아이들은 머지않아 어른이 되어 이 나라를 책임질 것이다. 도둑질이 취미 생활이었던 여덟 살 아이가 어느새 글로 신문 한구석을 채우는 어른이 된 것처럼. 어린이들아, 너희는 적어도 나보다는 나은 어른이 될 거야. 너희의 날을 (유노윤호 톤으로) 축하한돠!!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3일 오후 제4회 부산 봄꽃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부산시민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꽃터널을 지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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