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모험-과학 더해… 읽다보면 페이지 순삭[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정보라 소설가 2024. 5. 4. 01:4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창비 '신라 공주 해적전'은 제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듯이 역사소설이다.

이런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공주 해적전'은 역사책에 나오고 학교에서 한 번쯤 배웠을 법한 정사(正史)를 다루는 고전적인 역사소설은 아니다.

모험소설, 역사소설, 과학소설이라고 한마디로 이름 붙일 수 없는 '곽재식 세계'에 한번 빠지면 200여 쪽 장편소설 정도는 앉은 자리에서 '순삭'(순식간에 삭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웃음-감탄 자아내는 줄거리
현실 반영한 사회 비판까지
◇신라 공주 해적전/곽재식 지음/208쪽·1만4000원·창비
정보라 소설가
창비 ‘신라 공주 해적전’은 제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듯이 역사소설이다. 백제가 멸망한 지 약 200년 정도 지난 통일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장터를 떠돌아다니는 장희와 서생인 한수생이다. 한수생은 고지식하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마을에서 괴롭힘을 당해 누명을 쓰고 도망치는 몸이 되는데 우연히 만난 장희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한수생을 쫓아오는 마을 사람들을 피해 바다로 도망친 장희와 한수생은 이번에는 해적에게 붙잡히게 된다. 이 해적들은 이미 200년 전에 망해 버린 백제를 되살리려는 일종의 반란군이다. 한수생은 이 반란군 공주의 마음에 들어 난데없이 공주의 남편이 되고, 장희와 함께 부여의 왕자가 백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숨겨두었다는 보물을 찾는 모험에 나선다.

이런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공주 해적전’은 역사책에 나오고 학교에서 한 번쯤 배웠을 법한 정사(正史)를 다루는 고전적인 역사소설은 아니다. 독자에게 역사의 교훈이나 사실을 가르치려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주인공 장희는 담대하고 임기응변에 능하지만 장터를 떠도는 사기꾼이다. 그녀는 한수생과 함께 실체조차 불분명한 부여 왕자의 보물을 찾는다는 명목하에 우연한 사건들을 그때그때 얼렁뚱땅 넘기면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바다와 뭍을 오가며 해적과 반란군 등의 인물들을 만나고 다채로운 상황들을 겪는다.

이러한 줄거리 전개 방식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을 풍미했던 ‘피카레스크 소설’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준다. 피카레스크 소설에서는 주로 소매치기 혹은 사기꾼 등 낮은 신분으로 직업이 일정치 않은 주인공이 떠돌아다니면서 시정잡배부터 귀족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우연한 기회에 만나고 그러면서 사회 전반의 여러 뒷모습을 폭로하고 풍자한다. 피카레스크는 민중의 이야기이며, 작가가 당대 사회 현실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비꼬아 독자와 함께 마음껏 웃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소설 장르이기도 하다.

곽재식은 보통 남성이 주인공이 되는 모험 소설에 장희라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미 멸망해 사라진 전통과 정신에 매달리는 반란군을 장희의 관점을 통해 비판한다. “백제 병사들의 한 맺힌 기운이 그렇게 세다면, 왜 살아 있을 때에는 신라군을 이기지 못했나? 영령과 기운으로 싸움을 싸울 것 같으면, 네놈이 젓가락을 들고 대포고래의 대포에 대적해 보면 어떠한가?” 해적 ‘대포고래’와 맨손으로 대적할 위기에 처한 장희는 이렇게 분개한다. 예를 들면 이런 대사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정신력으로 극복’하라는 압박에 대한 반박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역사소설과 현실이 연결된다.

잇따른 위기를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가는 주인공, 난데없는 사건들의 집합체인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웃으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줄거리, 여기에 녹아든 사회비판과 풍자의 미학은 곽재식 작품 세계의 매력이다. 모험소설, 역사소설, 과학소설이라고 한마디로 이름 붙일 수 없는 ‘곽재식 세계’에 한번 빠지면 200여 쪽 장편소설 정도는 앉은 자리에서 ‘순삭’(순식간에 삭제)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라 소설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