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은 총재 “전제 다 바뀌었다” 고금리 장기화 경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까지 생각했던 통화 정책의 전제가 모두 바뀌었다”면서 ‘연내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동안 금융시장에선 미국이 하반기에 금리를 적어도 2~3차례 내리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0.5~0.75%포인트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이 총재는 ‘바뀐 전제’의 구체적 내용으로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1분기 경제 성장률의 예상 밖 호조, 중동 지정학 리스크 증대 등을 지적했다.
미국 경제 성장세가 꺾이지 않고 물가도 3%대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서 미 연준은 금리 인하 시점을 계속 미루고 있다. 올 연말쯤 한 차례 소폭 인하에 그치거나, 올해는 금리 인하 없이 그냥 넘어갈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한미 간 기준금리가 2%포인트 이상 역전된 상황에서 한국이 금리를 먼저 내리긴 어렵다. 1분기 GDP 성장률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1.3%(전 분기 대비)를 기록한 점도 금리 인하를 제약하는 요소다. 성장세가 견조한데 금리를 내리면 물가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중동 리스크 고조로 국제 유가가 불안정하고 환율이 달러당 1400원대를 위협하면서 금리 인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금리가 내려가야 국민이 체감 경기 회복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상황이 매우 어렵게 된 셈이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 부채가 많은 취약 계층, 영세 소상공인, 한계 기업의 어려움을 더 가중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당 주장처럼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을 뿌리는 것은 물가만 더 자극해 금리 인하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고금리발 난국을 일거에 타개할 묘책은 없다. 가계, 기업, 정부가 각자 위치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기업은 생산성을 높여 고금리 충격을 흡수하고,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 빚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고통을 덜어줄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소상공인 이자·세금 부담 경감 등 현재 시행 중인 취약 계층 지원 정책을 재점검해 추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 고금리 직격탄을 맞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구조조정 작업을 신속히 마무리해 파급 효과가 큰 건설 경기가 선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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