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52] 듣기, 읽기, 쓰기
글쓰기 전반을 책으로 쓰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을 때가 있다. 거절의 이유는 방법론을 얘기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그냥’ 쓰기 때문이다. 정해진 트랙을 도는 마라토너처럼 아침이면 의자에 앉아 그냥 쓴다. 지금도 그냥 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까지가 프로의 관건이라 믿는다. 쓰면서 스스로에게 종종 되묻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은지 ‘남이 듣고 싶은 얘기’를 쓰고 싶은지에 대한 구분이다. 이 차이 역시 중요한데 그 사이 어딘가에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쓰기에 대한 다른 시각을 더 얘기하자면, 글을 잘 쓰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쓰기가 아닌 ‘듣기와 읽기’에 있다. 내가 쓴 대부분의 글은 내가 귀 기울여 듣거나 읽은 것이다. 물론 읽고 들은 것을 나만의 것으로 소화해 발효시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책 한 권을 읽고 세상을 다 아는 용감한 바보가 된다.
요가를 배우며 머리 서기 자세가 안 될 때, 강사의 충고대로 셀프 촬영 후 문제를 파악한 적이 있다. 영상 속 내 동작은 늘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내가 바르다고 생각한 자세와 실제 정자세 사이에 차이가 존재했다. ‘실제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듯, 학습할 때 내가 무엇을 모르고 틀리는지 아는 메타 인지가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이것은 퇴고 과정과 흡사하다.
말은 내뱉으면 끝나지만 글쓰기에는 퇴고가 있다. 초보자가 퇴고를 이해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본인의 말을 녹음한 뒤 직접 풀어 글로 보는 것이다. 쓸데없는 조사, 부사, 형용사 범벅의 엉망인 문장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을 수선공처럼 정비하는 게 글쓰기의 핵심이다. 하지만 퇴고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다. 인생을 돌이켜 두 번 사는 것처럼 말이다. 글쓰기에서 기억해야 할 건 나를 포함해 자기가 쓴 글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더 좋은 글을 쓰려 노력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삶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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