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허리디스크 한약도 건보…환자 부담 확 줄어든다

2024. 5. 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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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한방
비염,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 소화불량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4월 29일부터 보건복지부 한약(첩약) 건강보험 2단계 적용 시범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비염 환자는 약 611만여명, 허리디스크 환자는 210만여명, 소화불량 환자는 143만여명에 이른다. 도합 1000만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한약을 처방받을 때 본인부담률이 최대 30%까지 줄어드는 혜택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번 시범사업의 목표는 국민의 의료선택권 확대 및 건강지원 등 ‘보장성 강화’에 있다. 그동안 환자들의 만족도와 수요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약에 대한 비용 부담은 오롯이 환자에게 주어져 왔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 한방의료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방의료를 이용한 환자들은 개선사항으로 ‘보험 급여 적용 확대’를 1순위로 꼽았다. 또한 건강보험 급여 확대 시 먼저 적용이 필요한 치료법에 첩약과 한약제제가 우선순위에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1단계 시범사업, 환자 96%가 “만족한다”

한약의 건강보험 적용은 매우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왔다. 1984년 충북, 청주 등에서 첩약 시범사업이 실시된 바 있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19년 보건복지부의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다시 포함됐다. 2020년 11월에는 9024개 한의원이 참여하는 1단계 시범사업이 진행됐다. 당시 적용 질환은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이었고 사업 결과 약 96%의 환자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환자에게 계속 시범사업에 참여할지를 묻는 질문에도 ‘참여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94%나 됐다.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 개요
진료 중 만성적으로 질환에 시달려왔던 환자들을 만나보면 단기간에 증상 정도를 낮추는 것보다 근본적인 치료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SCI(E)급 국제학술지 ‘헬스케어(Healthcare)’에 게재한 연구에서도 환자들은 허리디스크로 인한 통증 완화보다 ‘기능 개선’(55.8%)을 더욱 원했고, 빠른 치료보다 ‘재발 없는 안정적인 치료’(78.2%)를 선택했다. 치료 효과 측면에서도 효과 높은 치료보다 ‘부작용 없는 안전한 치료’(56.4%)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래 증상을 겪어온 환자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환자들 자신도 본질적인 질환의 원인을 해결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체감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척추 사이 디스크(추간판)가 제자리를 벗어나 발생하는 허리디스크는 나이가 들수록 재발 가능성이 높아져 단기적 통증 완화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수술을 해도 마찬가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2 주요수술 통계연보’에 따르면 1년간 이뤄진 일반 척추수술 건수는 약 20만4000건으로 백내장 수술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이뤄진 수술로 집계됐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수술은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마취와 함께 신체를 일부 절개하는 등 몸에 큰 변화가 생긴 경우 이를 오롯이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수술 후에도 통증에 고통받는 척추수술 후 실패증후군의 위험성도 있다. 또한 수술 후에는 안정과 더불어 지속적인 관리도 필수다. 방치할 경우 근육량이 감소하거나 수술 조직들이 유착돼 굳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앞선 이유 등으로 만성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한의학은 안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특히 한약, 침·약침, 추나요법 등으로 이뤄진 한의통합치료는 부작용이 적으며 치료 효과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등 예후가 좋다는 것이 강점이다. 그중 실제 방풍, 우슬, 두충 등의 한약재로 조제한 한약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염증과 부종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의통합치료의 장기적인 효과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SCI(E)급 국제학술지 ‘통합의학연구’에 소개된 논문에 따르면, 한의통합치료를 받은 허리디스크 환자들을 10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하지방사통이 약 7배 개선됐으며 허리 기능은 약 3.6배 회복된 상태를 유지했다. 치료 효과가 안정적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질도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의학은 허리디스크 외에도 다양한 질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소화불량에도 한의치료의 효과가 뛰어나다. 특히 부작용에 민감한 임산부의 경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소화불량 치료를 위한 한의학의 활용은 국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세계소화기학회에서도 소화불량에 한의치료를 적용한 연구가 발표된 바 있는데, 환자 중 침 치료를 받은 그룹은 대조군과 비교해 60%의 호전율을 보였다. 더불어 열감과 복부 불편감, 식후 더부룩함 등의 증상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장기능 개선에 효과적인 한약재로는 진피(陳皮)가 유명하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처방인 ‘정로환’도 진피 성분이 활용됐다. 정유, 플라보노이드 등 진피의 약효성분은 소화액의 분비와 위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해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아 발생하는 식체에도 도움된다. 환절기마다 일상의 큰 불편함을 안겨주는 알레르기성 비염도 한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특히 맥문동(麥門冬)은 예부터 비염 증상 치료를 위해 널리 활용된 대표 한약재로 조선 왕실의 비방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검증기준 충족한 의약품용 한약재만 사용

과거에는 한약을 먹으면 ‘흰 머리가 많이 난다’라거나 ‘간이 나빠진다’는 속설이 돌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는 검증되지 않은 식품용 한약재를 개인이 임의로 섭취하는 경우가 아니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한의 의료기관에서 처방하는 한약에는 정부의 철저한 검증 기준을 충족하는 의약품용 한약재만 사용 가능하기에 원재료부터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더구나 이번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한약은 조제도 시범사업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운영되는 시설에서만 진행될 뿐만 아니라, 복약지도 및 상담 등 안내도 가능하므로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다.

인류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오랜 시간 의학을 발전시켜왔다. 한의학 또한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발전해오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과학화·표준화에 전념하고 있다. 유효성과 안전성이 보장된 신뢰도 높은 한약을 조제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국민의 의료선택권이 확장돼 환자들이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하인혁 부천자생한방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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