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소달구지와 아이들
2024. 5. 4. 00:06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멀리 가지 않아 장난꾸러기들은 느린 소걸음이 답답해서 팔짝 뛰어내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제 발로 바람을 가르며 뛰어가는 편이 속 시원할 팔팔한 아이들이다. 벌써 뒷자리 아이들의 표정에 따분함이 역력하다. 아마 이 길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쯤 “에잇!”하고 뛰어내릴지 모르겠다. 상황 파악이 빠른 여자아이가 그 기회를 노리며 묵묵히 소달구지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 빈자리가 나면 냉큼 올라탈 심산이다.
산자락을 몇 개쯤 돌아야 마을에 도착하려나. 오른쪽에 외딴 초가집 두 채는 아직 더 깊이 들어가야 동네가 나올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보리밭에선 보리가 파랗게 물결치고 길가의 나무와 산등성이 모두 초록으로 물들어 짙어가는데 소의 고삐를 길게 늘여 잡고 앞장선 농부의 아내와 그 뒤를 소걸음으로 따라가는 농부와 아이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박제된 고향 풍경이다. 다시 오월이지만 또다시 볼 수도,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는 추억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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