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가 원수 된 이유…유전자부터 달랐다 [Books]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5. 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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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사회 /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펴냄
바이오및뇌공학과 최정균 교수 [사진 = 카이스트]
자식을 사랑하면서 부모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여기에는 직접적인 근거가 있다. 어미 쥐가 새끼를 핥아줄 때 어미 쥐의 몸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뇌의 보상 체계를 통해 작동한다.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법칙인 종의 번식, 유전자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자식을 갖기 위해선 짝을 만나야 하고, 그 자식이 자라서 또 다른 자식을 가질 수 있도록 키워내려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필수적이다. 자기 만족을 주는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 회로에 작동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마약처럼 작동한다.

신간 ‘유전자 지배 사회’는 유전학자인 최정균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사람들의 일상은 물론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 문화를 움직이는 유전자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사랑과 정치 이념, 종교처럼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조차도 어떻게 유전자가 지배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진화생물학과 유전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를 위해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적인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논문을 통해 밝혀진 과학적 근거들을 총망라했다. 진화론을 둘러싼 과학과 종교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도 다룬다.

어떤 사람의 선천적인 신체적, 성격적 특성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갖고 태어나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유전자는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지만 그 과정에서 환경의 변화 등에 의해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킨다. 예컨대 한국 사람의 평균 신장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이유도 이런 유전자 변이에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을 살펴보면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왔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 아프고 늙고 죽어야 하는 이유도 유전자의 관점에서 비춰 보면 번식 경쟁, 생존 투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정치 이념으로 갈려 곳곳에서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고 있다. 저자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 성향과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 성향 역시 생물학적 속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면, 문제의 해결책도 사회과학이 아닌 자연과학에 있을지 모른다고 제안한다.

일례로 2007년과 2008년 각각 ‘네이처 신경과학’과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수적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서는 교감신경의 활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한 2010년대 연구에서는 보수 성향의 참가자들이 교감신경과 미래 예측의 중추인 편도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보수 성향의 사람은 사회적 위계질서와 높은 연관성을 지닌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돼 있고, 진보 성향의 사람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경향과 밀접한 도파민 분비가 활성화돼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다만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가 자연선택에 의해 인구 집단 내에서 계속해서 발현되고 확산되는 ‘양의 선택’을 받은 쪽은 보수였다. 그동안 위험을 줄이고 사회적 서열을 향상시키는 것이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도파민 활성에 관여해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경향을 만드는 도파민 수용체의 7R 변이는 유리할 때는 발현되고 불리할 때는 발현되지 않는 ‘균형 선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7R 변이는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는데,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성향의 장점과 위험성의 공존으로 인해 균형 선택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실 모든 유전자 변이는 목적 없이 우연에 의해 발생한다. 처음부터 이기적으로(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변이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유전자의 지배를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이가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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