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성범죄 트라우마 치료·상담 5명 미만…정신적 피해 치유 '시급'

광주CBS 김수진 기자,광주CBS 박성은 기자,광주CBS 박요진 기자 2024. 5. 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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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4년, 가슴에 묻은 진실④]
5·18 성범죄 피해자 "이제 와서 말해서 무엇하나" 포기하기도
트라우마센터 찾은 5·18 성범죄 피해자, 전체 5·18 상담자의 1% 미만
5·18 보상 심의 성범죄 피해 추가…판정 기준 여전히 '상이(傷痍)'
편집자 주
올해로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4년. 5·18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성범죄가 조금씩 규명되고 있지만 일부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입증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광주CBS 취재를 통해 일부 5·18 성범죄가 출산이나 유산 등 2차 피해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또 남성들 역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많은 5·18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한 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숨기며 지내고 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인정받은 극히 일부만 트라우마 관련 치료를 받았을 뿐이다. 광주CBS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나 그들의 자료를 직접 듣고 보며 5·18 성범죄의 진실에 더 다가가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5·18민주화운동 성범죄 피해 관련 첫 보상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5·18 성범죄 피해와 조사, 보상 등 전반에 대해 짚어본다.
오씨가 복용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한 투약 안내문. 박성은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5·18 당시 성범죄로 임신→출산→입양?
②44년 만에 고백 5·18 성범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 겪어"
③5·18성범죄 상당수 피해자 사망·치매로 진실규명 불가능…보상 심의 조사 허점
④5·18 성범죄 트라우마 치료·상담 5명 미만…정신적 피해 치유 '시급'
(계속)

5·18 성범죄 피해자 상당수가 트라우마를 호소하지만 상담을 받는 경우는 5·18 전체 상담자의 1% 미만으로 극히 드문 상황이다. 광주CBS의 5·18 44년 연속기획보도. 5·18민주화운동 44년, 가슴에 묻은 진실. 3일은 네 번째 순서로 5·18 성범죄 피해자들이 수십 년 동안 가슴에 상처를 묻으며 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치료나 상담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도한다.

"여성의 삶 포기했다 생각"…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5·18 성범죄

"옛날에는 누가 뒤에서 여자 아니라고 수군거릴까 봐 싫었는데…
어쨌든 털어내니 속이 후련해"

오연숙(여, 가명)씨는 5·18 당시 상무대에서 시신을 닦는 꿈을 아직도 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년째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 그러나 말하지 못한 그날의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오씨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3시 광주 YWCA에서 밥을 하던 도중 군인의 손에 붙잡혀 차량으로 끌려갔다. 오씨는 그날 하복부를 군인의 대검으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흉기에 찔리고 군홧발로 구타당했다.

오씨는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지만 통증과 하혈은 두 달 동안 계속됐다. 결국 오씨는 1980년 7월 한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다친 이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결국 이보다 더 세월이 흐른 후에 찾은 다른 산부인과에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씨는 성 피해는 물론 구금 사실도 말하기 어려웠다. 가족은 오씨에게 미국에 가라는 말만 전했고 마을 이장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지 말라"라고 했다. 가족도, 지인도, 직장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한 오씨는 피해 사실을 가슴에 담은 채 43년을 보냈다.

오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5·18 당시 입었던 피해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는 여전히 말할 수 없었다. 오씨는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누가 알까 봐 두렵기만 했다"며 "자궁을 적출한 이후에는 상점에서 생리대를 판매하는 곳을 지나가면서도 주위를 살폈다"라고 말했다.

오씨는 이제야 말할 수 있어 후련하면서도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까'라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오씨는 "같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다 나이가 들어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를 포함한 5·18 당시 성 관련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트라우마 극복에 대한 의지조차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5·18 성범죄 트라우마, 40회 넘는 상담·치료로 이어지기도


광주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 캡처

5·18 성범죄 피해로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찾은 여성들은 최대 40차례가 넘는 상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18 성범죄의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리건강연구소 김석웅 소장은 "여전히 5·18에 대한 왜곡이나 폄훼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선뜻 자신의 피해도 밝히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관련된 내용을 접하면서 다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례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관계 형성과 건강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본인의 회복력과 사회적 지지 등이 충분하다면 빠른 속도로 극복할 수 있다"라며 "일부 피해자는 '굳이 들춰내야 하냐'라고 말하지만 피해 사실에 대해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건강한 정체감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5·18 관련 상담자 中 성범죄 관련 상담·치료는 1% 미만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직권조사한 진상규명 조사보고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성범죄 피해 의심 사례로 살핀 52건 가운데 자살 치매 정신분열 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례는 6건으로 5·18조사위가 검토한 사례의 10% 이상으로 파악됐다. 조사위가 살핀 사례 52건과 8차 보상에 신규 사례로 추정되는 11건을 합친다면 성 관련 피해 사례는 최대 63건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관련 상담을 받은 사례는 5건 미만으로 알려졌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2012년 10월 문을 연 이후 진행된 전체 5·18 관련 치료·상담의 1% 미만인 셈이다.

광주트라우마센터 김명권 센터장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 상담·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적 인식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센터장은 "5·18 성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상황을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보다 감춰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 위축되고 고립되면서 더욱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무력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센터장은 "특히 우리나라의 정서적·사회적 인식 때문에 낙인효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측은 사회적 인식 개선의 일환으로 비대면과 방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트라우마 극복을 돕고 있다. 이 같은 트라우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객관화하는 것만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고 조사됐다. 사회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등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5·18 보상 심의 대상에 '성폭력' 추가됐지만 판정은 여전히 '상이(傷痍)'

최근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보상 판정 기준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행안부가 성범죄를 보상 심의 기준에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우려는 커졌다.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위원회는 행안부 기준에 따라 성폭행과 관련한 판정 기준을 여전히 상이로 판정해 보상하기로 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를 포함해 분과에서 꾸려진 의사들이 등급 판단을 한다"며 별도의 세부 규정이 알려진 것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보상심의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심의 기준을 어떻게 확정하고 조사를 진행할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과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성범죄 보상 심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된다. 이 같은 우려와 관련해 광주시 등은 계엄군 주둔 시기나 위치 등 객관적인 사실과 어긋나는 경우 해당 사례를 배제하는 방안과 과거보다 진전된 방식으로 성범죄에 대한 조사와 심의를 진행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범죄로 인한 신체·정신적 피해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한다면 기존에 받았던 등급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수 있어 성범죄 피해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실제 상당수 5·18 성범죄 피해자는 상이 등 복합 피해 사례로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8차 보상을 신청하고 5·18조사위 보고서에서 규명 사례에도 들어간 14건 중 7건이 중복이며, 제8차 보상에 신청한 26건 중 13건이 중복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등은 5·18조사위 보고서에서 규명 사례로 판단한 16건과 함께 제8차 보상 심의에서 인정될 성범죄 피해 사례를 정신적 피해 배상 소송에 포함할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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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CBS 김수진 기자 sjs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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