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꺾이는 학생인권조례

오세진 기자 2024. 5.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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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를 폐지한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이 지난달 26일 통과시킨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 본문 글자 수는 이 열여섯글자가 전부다.

서울시민 9만7702명(유효 서명 기준)이 참여해 최초로 주민발의 형식으로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60명에 의해 12년 만에 폐지됐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으로 교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기 전부터 극우·보수 기독교 진영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줄곧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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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의 본회의 상정을 의결한 지난달 26일 서울 세종대로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시의회 의원들이 입장하는 동안 ‘학생인권법과 청소년 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활동가 등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를 폐지한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이 지난달 26일 통과시킨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 본문 글자 수는 이 열여섯글자가 전부다. 서울시민 9만7702명(유효 서명 기준)이 참여해 최초로 주민발의 형식으로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60명에 의해 12년 만에 폐지됐다. 폐지조례안이 통과되자 서울시의회 밖에서 “동성애, 성전환, 낙태 등을 옹호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전국 7개 광역시도(경기·광주·서울·전북·충남·제주·인천) 중 지난달 24일 충남을 시작으로 서울에서 두번째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가결됐다. 이를 강행한 국민의힘 소속 충남도·서울시 의원들은 “최근 일선 교육 현장에서 교권 추락의 주된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되고 있다”며 “학생 인권만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광역시도의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2017년 0.59건→2019년 0.61건→2021년 0.51건)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광역시도 사례(2017년 0.61건→2019년 0.62건→2021년 0.54건)가 조금 더 많다.(한겨레 2023년 7월26일치 1면 보도) 교권 침해는 학생인권조례와 무관한 것이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으로 교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기 전부터 극우·보수 기독교 진영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줄곧 주장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임신과 출산 등 문란한 성생활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여기에 동조하며 폐지를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이는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냄과 동시에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주장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 오해 넘어 이해로’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했다. 인권위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거나 권장하지는 않지만, 어떤 이유로든 학생이 임신과 출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면 그로 인해 퇴학 등 교육 기회가 박탈되거나 혐오 및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할 필요는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차별금지 조항을 통해 합리적인 사유 없이 학생을 차별하지 않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인권위 입장은 단호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 주장에 가깝다. 학생인권조례는 특정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주류적 경향과 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개인,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들 또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동등한 주체라는 점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도록 교육하려는 것이다.”

가뜩이나 윤석열 정부가 ‘성소수자’ 용어를 삭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했는데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한 학생인권조례마저 사라지면, 평소 ‘없는 존재’로 간주되는 청소년 성소수자는 학교 안에서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학생·교직원 등 모든 학교 구성원이 상호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해 법을 새로 만들거나 있는 법을 개선해도 모자랄 판에 최소한의 버팀목마저 없애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조례가 이대로 꺾여서는 안 될 것이다.

오세진 젠더팀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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