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크리스마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87년 6월10일 5공 전두환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독재 타도'와 '호헌(護憲) 철폐'를 외치며 서울 명동성당을 점거했다.
이른바 '6월항쟁'이다.
"명동성당에 전경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제기됐다.
당시 경찰을 지휘하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이던 고건은 반대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87년 6월10일 5공 전두환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독재 타도’와 ‘호헌(護憲) 철폐’를 외치며 서울 명동성당을 점거했다. 이른바 ‘6월항쟁’이다. 안기부장(현 국가정보원장) 주재로 공안장관 회의가 열렸다. “명동성당에 전경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제기됐다. 당시 경찰을 지휘하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이던 고건은 반대했다. 그는 “성당에 전경이 강제 진입하면 바티칸(교황청)에서 가만 있겠느냐”며 “우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가톨릭에서 불매운동 한마디라도 하면 한국 경제는 망한다”고 했다. 결국 고건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정부는 시위대의 자율적 해산을 기다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앞서 소개한 고건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의 민주화에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며 야당 정치인 김대중(DJ)은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돼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때 요한 바오로 2세는 직접 서한까지 써서 보내며 DJ 구명에 앞장섰다. 결국 DJ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82년에는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다. 훗날 DJ가 대통령이 되고 평양에 가서 북한 지도자 김정일과 만난 2000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고 대한민국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머무르길 바란다’는 내용의 기념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성년 남학생과 술 마시고 성관계한 여교사 되레 ‘무고’
- "北남녀 고교생, 목욕탕서 집단 성관계" 마약까지...북한 주민들 충격
- “배현진과 약혼한 사이" SNS에 올린 남성, 재판서 혐의 인정
- “영웅아, 꼭 지금 공연해야겠니…호중이 위약금 보태라”
- 술 취해 발가벗고 잠든 여친 동영상 촬영한 군인 [사건수첩]
- 백혈병 아내 떠나보내고 유서 남긴 30대...새내기 경찰이 극적 구조
- 제자와 외도한 아내 ‘사망’…남편 “변명 한마디 없이 떠나”
- “정준영, 내 바지 억지로 벗기고 촬영…어둠의 자식이다” 박태준 발언 재조명
- “내 친구랑도 했길래” 성폭행 무고한 20대女, ‘녹음파일’ 증거로 덜미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