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들" 강조하며 풋옵션 챙기는 이들은 이해 못 할 김민기의 삶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SBS 스페셜>이 대학로를 대표하는 소극장 '학전'의 33년간의 역사를 담은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선보인다. 이번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1991년 개관한 '학전'이 배출한 인재가 현역 배우를 포함한 예술인만해도 700여명, 첫 무대가 '학전'인 음악인도 200명이 넘는다. '학전'을 통해 기회를 얻고 성장한 사람이 어언 천 명에 가까운 거다. 그러나 '학전' 대표 김민기는 늘 '성공하면 떠나라. 나는 뒷 것이고 너희는 앞 것' 이라며 기꺼이 뒷자리를 자처해왔다.
자신이 가진 걸 모두 내어주고도 생색은커녕 뒷것을 지향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부모가 자기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지만 때로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 않나. 지난 21일 1부가 방송된 며칠 뒤 세상을 시끄럽게 한 모 기획사 사태가 터졌다. 이번 사태 주역들의 설전을 보면 서로 남의 자식 깎아내리기 바쁘고, 자기 자식 두고는 공치사, 서로 나 없으면 이런 성과가 가당키나 했어? 이런 식이 아닌가. 자식들 심정은 안중에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학전 그리고 뒷 것 김민기'를 권한다.
2018년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김민기 대표가 출연했다. 그때 '뒷 것' 얘기가 나왔다. 왜 이렇게 언론에서 뵐 수 없냐는 질문에 '배우들을 '앞 것들'이라고 하고요. 스탭들을 뒷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뒷 것의 두목쯤 되다 보니까 앞에 나서는 것이 너무 힘들고 불편해요'라고 답했다. 음반만 냈을 뿐 대중 앞에 얼굴 드러내고 노래를 해본 적도 거의 없다고. 그런 그가 <뉴스룸>에 나오게 된 계기는 짐작컨대 중단했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되면서 홍보 차원이었지 싶다. 매회 매진 사태를 기록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을 하루아침에 접게 된 이유는 아동청소년극과 병행하기 어려워서였다고.
김민기 대표는 죽는 날까지 '학전'을 이끌기를 바라왔으나 지난한 재정난과 암 투병이 맞물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폐관을 결정해야만 했다. 평소 김민기 대표를 존경해온 이동원 PD는 '학전'이 이렇듯 사라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단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다큐멘터리를 서둘러 기획했다고. 1부는 '학전'이 배출한 수많은 인재들이 '학전'의 가치와 얼을 짚어보는 시간 가졌다. 배우 황정민부터 가수 故 김광석까지 '이분도 학전 출신이었어?' 싶은 인물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떠한 협찬도 지원도 받지 않고 순수한 관객 수입만으로 꾸려온 '학전'. 많은 예술인들이 학전에 와서야 비로소 계약서 구경을 했단다. 배고파야 예술이라고 여기던, '열정 페이'가 당연시 되던 1990년 대 대학로에서는 생경한 풍경이었으리라.
이번 다큐멘터리로 인해 처음 알게 된 것이 많다. 우선 온 국민이 다 아는, 박세리가 자신을 위해 만든 노랜 줄 알았다는 '상록수'가 노동자 부부의 결혼식 축가였다는 사실. 정치권의 극심한 탄압으로 손발이 묶이자 호구지책으로 인천의 한 피혁 공장에서 사무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시절 동료였던 곽기종에 따르면 당시 동료들의 합동결혼식이 있었는데 돈이 없다보니 축가를 만들어 부조를 대신했다고. 또 공장 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을 담은 '공장의 불빛'을 만들게 되는데 가수 송창식 씨가 기꺼이 녹음실을 제공했단다. 음반이 발매되고 나면 어떠한 고초를 겪게 될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녹음에 참여했고 그 덕에 '공장의 불빛'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 용기, 참으로 놀랍다.
3부가 마침 5월 5일 어린이날에 방송된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김민기 대표의 어린이 사랑이 공개될 예정이고 공연 음원도 최초로 공개된다. 이번 주 일요일 밤 11시 5분, 생색내지 않는 너그러운, 진정한 어른 김민기 대표를 만나보시라.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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