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중립은 없다? 민주당 ‘의장 후보들’의 위험한 인식 [채진원 쓴소리 곧은 소리]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2024. 5. 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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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정성호·조정식 “이재명 대표와 호흡 맞춰야” “선거 승리 토대 깔겠다”
원내에 등장한 ‘친명 돌격대’…야당 패권주의 현실화되면서 의회 독재 우려

(시사저널=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많은 국민은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비명계인 박용진 의원이 끝내 공천에서 탈락하는 '비명횡사, 친명횡재'의 비민주적 공천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국민은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인 박 의원을 무도하게 제거하고 호위무사를 공천하는 '독재'의 모습을 보면서 '이재명 사당화'와 '방탄국회'를 걱정했다.

또 국민은 '친이재명 공천'으로 배지를 단 국회의원들이 과연 전체 민의를 대변할 수 있을까, 혹시 의원 자율성이 낮기에 민의와 민생보다는 온갖 특권과 특혜만을 취하면서 '이재명을 향한 충성 경쟁'에 앞장서는 것은 아닐까를 근심했다. 더 나아가 보스에게 충성하며 민의를 배신하는 의원들의 행태가 '파벌의 해악'(mischiefs of faction)과 다수결의 독재(tyranny of majority)로 진전해 민의의 전당인 국회마저 점령하지 않을까를 우려했다.

이런 걱정과 근심, 우려는 22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야당 패권주의'라는 쓰나미 위험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패권주의라는 말은 법적·정치적·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비민주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물리적 의지를 강요하는 경우에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총선 이후 '대여 강경 태도'를 보이면서 '다수결 독재'에서 '패권주의'로 향하고 있는 민주당의 모습은 쓰나미를 닮았다. 패권주의라는 쓰나미는 반(反)협치와 비토크라시(vetocracy)를 상징한다. 22대 국회에서도 '거야의 입법독주와 이에 맞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되풀이하자는 것일까? 민주당이 총선 민심을 오판하면서 패권주의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풍을 부르는 위험 징조는 자성 없는 이재명 대표의 고압적 태도,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강경 태도, 국회의장 후보들의 당파적 태도 등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2023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김진표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민형배 "협치라는 말 머릿속에서 지워야"

우선 영수회담에서 드러난 이 대표의 고압적 태도가 문제다. 이 대표는 A4용지 10장의 원고를 15분간 읽어가면서 대통령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께서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협치 실패의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전가하면서 '야당의 입법독주'를 자성하지 않는 오만한 모습이다.

이어서 원내정치 세력화로 더욱 강력해진 '더민주전국혁신회의'(전국회의)의 대여 강경 태도도 문제다. '이재명 대표 연임론'에 힘을 싣고 있는 전국회의는 총선에 50명이 출마해 31명이 당선되어 민주당 171석 중 18%가 넘는 '원내 최대 친명 돌격대'가 됐다. 당 전략기획위원장이 된 민형배 의원은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된다"고도 했다.

'전국회의'에 이어서 국회의장 후보들이 보이는 당파적 태도는 괴이하다. 이들은 다음 국회의장은 '기계적인 중립을 지킬 것이 아니라 범야권에 192석을 몰아준 총선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립의무를 지키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민주당에 유리하게 국회의장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추미애 당선자는 "국회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립도 아니다"고 했다. '친명' 좌장이라 불리는 정성호 의원도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해 토대를 깔아줘야 한다"고 했다. 조정식 의원은 "이 대표와, 당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돼야 성과를 제대로 만들어 국회를 이끌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국회의장의 당직 보유를 금지한 것은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맞추라는 뜻인데 대놓고 무시하겠다고 한다. 국회법(제20조 2항)으로 '무소속 국회의장'을 정한 것은 특정 정당·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국회를 민의의 공론장으로 공정하게 운영하라는 취지다. 입법부 수장이 이것을 버리고 특정 정파 대리인을 자처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몰상식적인 일이다.

대통령을 향해 영수회담을 요구하고, 협치를 주문하면서도 정작 협치를 부정하는 패권주의적 태도로 나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어쩌다가 민주당 지도부와 중진들이 협치 거부를 주장하고, 헌법과 국회법에 담긴 국회의장 중립 의무를 부정하게 되었을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그 핵심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는 총선 민심에 대한 오판이고, 둘째는 국회의원이라는 헌법적 지위에 대한 몰이해로 보는 게 적절하다.

국회의장 '정당 대리인' 자처는 수치스러워

그렇다면 첫째, 이번 총선 민심은 무엇일까? 국민이 정권을 심판하면서도 야당에 200석 이상을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여야 모두 정쟁 말고 협치로 민생경제 회복에 매진하라는 뜻이다. 국민은 사법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야당 대표에 대한 반감과 비호감보다도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민생경제를 회복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더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총선에서 확인된 국민의 뜻은 협치다.

따라서 야권이 대여 강경투쟁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사적인 복수혈전을 벌이며 정쟁하라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협치의 책임은 민주당에도 있다. 이런 뜻은 여론조사에도 잘 드러난다. 미디어토마토 128차 정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5.6%는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제1당으로서 정부·여당과 대화하고 협치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38.2%는 "보다 강경하게 대여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에 대한 헌법적 지위는 무엇일까? 헌법 제46조 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국회법 제114조 2항에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되어 있다. 이렇듯, 우리 헌법과 국회법은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의 대표성을 당파성이 강한 정당의 대리인(delegate)이 아니라 수탁자(trustee)로서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 보고 있다.

이에 국회의원으로서 각 개인은 당론이나 당파적 편향성에 구속받지 않고, 양심에 따라 자유로운 판단과 전문성으로 공공성과 민의에 공정하게 복무하는 게 헌법정신이다. '국회의장의 중립의무'도 위와 같은 취지다. 국회의장에게 중립의무를 지키지 말고 자당의 당파성을 대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위헌 사항이므로 자제가 필요하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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