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결정 후 평판 조회, 합법인가 함정인가[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33)

2024. 5. 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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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다섯 개 받았어.”

회식에서 ‘소맥’을 몇 잔 마신 부장이 손가락을 펴들며 뇌물을 받았다고 자랑했습니다. 팀원 A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A는 협력업체의 부조리를 발견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협력업체 감사를 면해주고 개인적으로 돈을 받은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A는 다음날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내부고발도 했습니다. 작지만 제법 강한 목소리였습니다. 회사는 내부 감사에 착수했고, 부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돈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회식에 같이 있었던 동료들도 부장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분명한 것은 협력업체에 대한 감사가 무마됐다는 사실과 부장이 들었던 다섯 손가락이었습니다.

회사가 A에게 돌려준 답변은 ‘A의 권고사직’이었습니다. 젊은 20대 직원이 20년차 부장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진실은 저 멀리 보내버린 조직에 A는 암담함을 느꼈습니다.

A는 이직하기로 했습니다. 서류, 필기, 실무 면접, 임원 면접을 거쳐 동종업계에서 더 높은 인지도를 가진 대기업에 합격했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고 근로계약서를 쓰면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회사에는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직한 회사에 출근한 지 3일 만에 인사팀장이 A를 호출했습니다. 인사팀장은 A에게 “우리가 레퍼런스 체크를 해보니 채용 취소 사유가 있었네. 전 회사에서 폭언을 했다고 들었어. 이번 채용은 취소됐으니 그만 물품을 반납하고 퇴근하게”라고 통보했습니다. A는 노트북을 반납하고 귀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사팀장은 아니라고 했습니다만 전 회사에서 내부고발을 한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A는 노동 전문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사안에서 회사는 나름의 채용 취소 사유를 들고나옵니다. 회사가 주로 하는 항변은 ①아직 근로계약을 한 게 아니고 채용이 확정되지 않았다 ②당신은 근로자가 아니고 임원이다, 또는 프리랜서다 ③채용 취소 사유가 명확했다 ④채용 과정에서 학력이나 경력 관련해서 회사를 기망했다 ⑤채용에 레퍼런스 체크(평판 조회)를 반영해야 한다 등입니다(채용 내정 취소는 일반적으로 해고보다는 정당성을 인정받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A는 회사의 주장에 반격할 만한 핵심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무슨 일 처리를 그렇게 하나요?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입사했는데 돌아갈 수도 없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상 동종업계에서 일할 수도 없고, 많은 기회비용이 상실됐습니다. A는 해고를 다투는 방법에 해고무효확인소송(법원)과 부당해고구제신청(노동위원회) 두 가지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A는 논의 끝에 바로 법원에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청구소송’ 소장을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사건은 노동 전담 재판부로 배정됐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변론기일이 찾아왔습니다.

재판장: 원고 대리인, 원고 청구 요지가 뭔가요?

원고 측: 원고는 피고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회사가 필기와 면접 절차를 거쳐 합격 통보를 하고 근로계약서도 작성했고, 출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레퍼런스 체크를 뒤늦게 하고, 허위 사실을 기초로 채용 취소라는 명목으로 부당해고를 한 것입니다.

재판장: 피고 측, 회사가 근로계약을 맺고 나서 레퍼런스 체크를 한 이유는 뭔가요?

피고 측: 당시 전력조회, 신원조회를 통해 채용 취소가 될 수 있음을 고지했습니다.

재판장: 레퍼런스 체크가 전력조회나 신원조회에 해당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레퍼런스 체크는 통상 합격 통지 전에 하지 않나요?

피고 측: 그래도 면접 후 합격 발표까지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재판장: 임원 면접 후 6일 정도 시간이 있었으니 확인하기에는 그렇게 짧은 건 아닌데요?

피고 측: ….

원고 측: 실무 면접에서도 이미 회사가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20일 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재판장: 레퍼런스 체크가 필요하다면 합격 통지 이전에 했어야 맞지 않나요? 회사가 무슨 일 처리를 그렇게 합니까.

피고 측: 그리고 원고가 ○○(전 직장)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기재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일정이 있으니 통지를 해놓고, 그 후에 확인했습니다.

재판장 : 원고가 ○○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나요.

원고 측: 네. 갑 제14, 15호증 면접 당시 녹음파일과 녹취록이 있습니다.

재판장: (녹취록을 확인하고 피고에게) 면접에서 확인된 것 같은데 아닌가요.

피고 측: 아니, 면접을 녹음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재판장: 재판에서조차 허용하지 않은 녹음, 생중계하는 시대이긴 합니다. 면접자도 대화 당사자이므로 녹음은 적법한 것이고, 녹취록도 증거로 채택하겠습니다.

■레퍼런스 체크, 채용 전에 해야 하는 이유

회사는 특히 ①지원자의 경력 누락이 있어서 채용 취소 사유인 점 ②그리고 합격 통지 이후이기는 하지만 레퍼런스 체크 과정에서 중대한 채용 결격사유가 발견된 점을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근로자 입장에서는 ①경력 누락 문제는 이미 면접에서 다 논의됐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라고 볼 수 없고 ②A가 폭언을 했다는 레퍼런스 체크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법원이 대략 2년 연봉을 지급하라고 조정했고, 회사가 받아들여 사건이 종결됐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채용 절차에서 단기간의 판단 착오로 회사가 큰 금액을 지급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채용 취소사건에서도 합격 통보 후 해당 근로자에 대한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의 댓글을 이유로 채용을 취소한 예도 있었는데, 역시 부당해고로 판정받았습니다(서울행정법원). 블라인드 댓글을 믿을 수 없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레퍼런스 체크가 필요한 경우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 절차에 맞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그 친구, 같이 일할 때 어땠어요?”-노동법 새겨보기 16화 참조 ). 그런데 절차뿐만 아니라 시기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미 공고된 채용 절차에 따라 레퍼런스 체크를 하되, 신중하게 합격 발표를 해야 합니다.

참고로 어느 회사는 채용 절차 중 보내는 안내문에 “입사 확정시 처우를 다음과 같이 사전 안내해 드립니다. 본 합의서는 최종 합격통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주의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명시했습니다. 회사는 그 후 레퍼런스 체크를 했고, 채용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이 한 줄로 회사는 부당해고와 큰 손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0구합84303).

※필자가 수행했던 사건을 각색해 게시했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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