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이도 사는법] ‘구하라 친모’와 유류분

양은경 기자 2024. 5. 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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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4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민법 제1112조 등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최근 헌재가 유류분 제도의 일부 내용에 대해 위헌 내지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습니다. ①고인의 형제자매에 대해 유류분을 인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서는 당장 효력을 사실시키는 ‘단순위헌’ 결정을, ②특정인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고 ③유기·학대 등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도 유류분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민법의 유류분 규정에 대해서는 ‘헌법 불합치’결정을 했습니다.

이중에서 ③과 관련해서 이번 헌재 결정이 20년 넘게 연락을 끊었던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해 논란이 됐던 가수 고(故)구하라씨의 사례에 적용될 수 있다며 ‘구하라의 엄마와 같은 사례는 유류분을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구씨의 사례는 ‘유류분’이 아닌 ‘상속’ 사안입니다. 2019년 구씨가 사망한 후 친모가 20년만에 나타나 상속분을 요구하자 구씨 오빠가 친모를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심판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미혼인 구씨가 사망하면 부모가 1순위 상속인인데, 아버지가 “부모 노릇을 못해 미안하다”며 자신의 상속분을 아들에게 양도하면서 구씨 오빠가 친모와 공동상속인이 됐습니다.

구씨 오빠는 ‘자식을 돌보지 않은 부모가 재산 절반을 가져가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법원은 홀로 아이들을 키운 아버지의 기여분을 감안해 5:5가 아닌 6(유가족측):4(친모)로 상속재산 분할을 명령했습니다.

이처럼 상속은 사람이 사망하면 반드시 발생하는 법률문제입니다. 반면 유류분의 경우 고인이 유언으로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을 몰아주거나 생전 증여를 한 경우, 사회단체를 포함해 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게 재산을 모두 기부한 경우 등에 발생합니다.

즉 유류분은 1)고인이 재산을 전부 혹은 상당부분 처분하고 2) 상속인이 ‘유류분에 해당하는 만큼은 돌려놓으라’는 소송을 낼 경우에만 문제됩니다. 따라서 헌재가 위헌결정을 한 ‘유류분’과 구하라씨 유족의 ‘상속’은 다른 상황에서 발생하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상속의 경우에는 고인을 특별히 부양한 경우에 기여분을 인정해 상속을 더 주는게 인정되는데 유류분은 그런 규정이 없습니다. 또한 상속의 경우에는 결격사유를 두고 있지만 유류분에는 없습니다. 이처럼 획일적으로 가족관계에 따라 상속분의 2분의 1(직계비속, 배우자) 3분의 1(직계존속, 형제자매)로 정해지는 유류분의 비합리성을 일부 수정한 데 이번 결정의 의의가 있습니다.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생전에 고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에 대해서는 유류분을 배제하는 규정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헌재는 ‘민법 1004조 소정의 상속인 결격사유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이들 상속인에 대해서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위헌결정을 할 경우 유류분 근거규정 자체가 없어지는 데서 빚어지는 혼란을 우려해 2025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습니다.

민법 1004조의 상속인 결격사유는 고의로 피상속인이나 동순위 상속인 등을 살해하거나 유언서를 위조하는 등의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을 개정하게 되면 ‘장기간 유기’ ‘정신적 신체적 학대’ 등이 유류분 상실사유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구하라 친모’와 같은 상황이 유류분 사건에서 발생하려면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가 생전에 어머니가 아닌 다른 상속인이나 제3자에게 재산을 넘겼어야 하고, 어머니가 그 사람들을 상대로 유류분(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내야 합니다.

이런 소송에서 현재대로라면 자녀를 저버린 부모도 법정 유류분을 받을 수 있지만 법 개정 후에는 ‘장기간 유기’ ‘정신적 신체적 학대’에 해당할 경우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를 장기간 유기나 학대로 볼 것인지는 법규정 자체에서 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판례가 축적돼야 하고 그 사이에 상당한 법적 다툼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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