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멀티레이블과 카카오 문어발 계열사 '불편한 오버랩'

조서영 기자 2024. 5. 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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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K-팝 성공 이끈 멀티레이블
엔터사 하이브 이 체제로 성장
멀티레이블 경쟁·갈등 빚기도
하이브-민희진 갈등 사태와
카카오 계열사 사태 유사해
컨트롤타워 부재가 부른 악재

# 멀티레이블은 지난 몇년간 'K-팝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이 시스템을 발판으로 성장한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우수한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 그런데 멀티레이블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받던 하이브가 최근 한 레이블의 수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른바 '어도어 사태' 후 하이브의 주가가 13.2% 떨어졌을 정도로 충격파가 크다. 마치 각 계열사가 통제불능 상태에 놓이면서 벼랑까지 밀렸던 카카오의 '엔터판'인 듯하다. 더스쿠프가 엔터사의 멀티레이블과 카카오 독립경영의 '공통적 문제점'을 분석해 봤다.

하이브 레이블과 카카오 계열사의 문제는 컨트롤타워 부재에서 기인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최근 몇년간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이슈는 멀티레이블(Multi-Labels) 시스템이었다. 멀티레이블이란 엔터사 밑에 여러 레이블을 배치해 각각의 아티스트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2018년 JYP엔터가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지금은 대형 엔터사 대부분이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기존 국내 엔터사는 대표 프로듀서(PD) 1명을 중심으로 경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SM엔터의 이수만 PD, YG엔터의 양현석 PD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인지 아티스트의 음악에선 대표 PD의 스타일이 묻어났고, 통일된 콘셉트 덕분에 충성심 높은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단점도 뚜렷했다. PD가 1명인 탓에 여러 아티스트의 음반 등 지식재산권(IP)을 동시에 제작하는 게 태생적으로 어려웠다. 일례로, 멀티레이블로 운영하는 하이브와 제작본부가 나뉘어 있는 JYP엔터는 2018년부터 최근까지 신규 아티스트를 각각 10차례, 9차례 데뷔시킨 데 비해 '1인 PD 체제'를 운영해온 SM엔터는 4차례, YG엔터는 2차례에 그쳤다.

대표 PD가 구설에 휘말리면 소속 아티스트의 활동까지 미뤄진다는 것도 '1인 체제'의 문제였다. 양현석 PD가 2019년 성 접대 의혹, 마약 수사 무마 의혹 혐의로 입건됐을 때 YG엔터가 그랬다. 이수만 PD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던 '2023년 봄' SM엔터의 상황도 비슷했다.

반면 멀티레이블은 각각의 레이블에서 음반을 제작한다. 마케팅 활동도 독자적으로 진행한다. 그만큼 멀티레이블 체제에선 새로운 IP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최근 하이브의 레이블 중 하나인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해 논란을 일으킨 뉴진스(하이브)와 르세라핌(쏘스뮤직)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 대표는 두 팀의 신보와 데뷔 시기가 겹쳐 갈등을 빚은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멀티레이블 체제가 아니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하이브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사진=뉴시스]

BTS가 몇몇 멤버의 군복무로 공백기에 들어갔는데도 하이브가 호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도 멀티레이블 체제가 있었다. 각 레이블이 자율적으로 운영해 IP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멀티레이블을 두고 "각 레이블의 독창성을 존중하는 체제"라며 "레이블 간 경쟁과 협력으로 특정 레이블·아티스트의 의존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최근 '하이브-민희진 갈등' 국면에서 멀티레이블의 단점이 명확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하이브는 지난 4월 22일 민 대표가 "(어도어의)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며 감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민 대표는 다음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내부고발을 하자 되레 반격당한 것"이라면서 반박했다.

사실 이번 갈등은 '예견된' 측면이 있다. 멀티레이블 체제에선 필연적으로 경쟁과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하이브엔 이를 조정하고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는 엔터사가 아닌 '기업'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문제다. 대표적인 건 카카오다.

카카오의 성장 방식은 '자율성'이었다. 엔터사로 치면 '레이블'에 해당하는 계열사에 독립경영을 맡겨 창조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성장을 꾀했다. 이를 발판으로 카카오는 2021년 말 계열사 194개를 거느린 매출 5조9105억원대 그룹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계열사별 독립경영은 문어발식 성장이란 폐해를 낳았다. 2021년 골목시장 침탈 논란을 시작으로, 계열사 경영진 모럴해저드 논란, 카카오 먹통 사고 등이 줄줄이 터졌다. 이 과정에서 논란에 휩쓸린 계열사만 해도 숱했다.

시장 독과점 문제와 매출 부풀리기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인 카카오모빌리티, 경영진 스톡옵션 먹튀 사태로 주가가 폭락했던 카카오페이, SM엔터 시세조종 의혹의 중심에 있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게임 표절 소송에 얽힌 카카오게임즈 등이 대표적이다.

카카오가 숱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꺼내든 솔루션이 '컨트롤타워의 강화'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골목시장 침탈 논란 땐 '공동체 얼라인먼트센터(CAC)'를 신설했다. CAC엔 카카오의 사회적 역할과 임직원의 윤리 의식 강화, 리스크 방지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적용하는 역할을 맡겼다. SM엔터 시세조종 의혹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을 땐 외부감시기구이자 컨트롤타워인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를 설립했다.

[사진=뉴시스]

이른바 '어도어 사태' 후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시스템도 카카오처럼 '혁신의 도마'에 올랐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4월 22일부터 따지면 하이브의 주가는 13.23% 하락했고, 기업가치는 1조2287억원 증발했다. 하이브의 주주들이 '어도어 사태'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돌려 말하면, 하이브든 레이블이든 이제 '컨트롤타워'가 필요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얘기도 된다. 카카오와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하이브도 컨트롤타워를 통한 조직운영 철학과 업무조율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는 과연 하이브의 성장통으로 끝날까 고질병의 시작일까. 하이브가 기로에 섰다.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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