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심판이야” 스포츠계 판 흔드는 AI심판[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5. 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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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KT 위즈) 선수를 격분케 한 ABS의 스트라이크 판정 <영상제공=티빙>
“제가 여전히 주장하는 것은 그 시스템의 정확성이 100%가 아니라는 겁니다. 99%라고 치죠. 어쨌든 100%는 아니고, 여전히 이해 안되는 판정도 있어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2012년 인터뷰를 통해 도입 6년차인 테니스의 ‘호크아이 시스템’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불신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수십대의 카메라로 공의 궤적을 추적해 ‘인-아웃’을 판단하는 이 시스템은 2006년 프로테니스협회(ATP) 투어에 도입된 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인간 심판의 판정 오차범위는 30~40mm인 반면 호크아이는 3mm 이하의 오차만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페더러는 선수 생활 말년까지 ‘안티 호크아이’의 대표주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기계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죠.

테니스판 ‘러다이트’ 운동은 요새 한국 프로야구를 들었다놨다 하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투구판정 시스템) 논란을 연상케 합니다. 최근 KT 위즈의 베테랑 내야수 황재균 선수는 ABS 판정에 격분을 참지못하고 항의해 퇴장을 당하는가 하면, 리그 대표 투수 류현진 선수도 시스템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정상권 선수들의 말처럼 ABS 도입은 시기상조였던 것일까요? 나아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내리는 판정은 스포츠경기의 적용에 더욱 신중해야하는 것일까요?

입모아 ‘ABS 문제 있다’지만...통계로 드러난 네모 반듯한 스트라이크존
올해 KBO가 도입한 ABS 판정 기준 <출처=KBO 보도자료 갈무리>
ABS는 야구 경기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추적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자동으로 판정하는 시스템입니다. 타자의 체형과 홈플레이트를 근거로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만들고 투구가 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국 프로야구는 끝면과 중간면 2번 통과)하면 존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허구연 총재의 결단으로 세계 프로야구 1군 리그중엔 처음으로 ABS를 도입하게 됩니다. 응원팀 경기를 보다가 이해못할 스트라이크 판정에 속이 터지는 팬들 대부분이 쌍수를 들고 환영한 조처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경기에 뛰는 선수들과 감독·코치진은 아직 시스템에 대한 신뢰감이 높지 않습니다. 경기장마다 존 설정이 다르다는 불만부터 판정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립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구장마다 스트라이크 존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투수와 타자 모두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한술 더 떠 “현장에서 불만이 많고 믿을 수가 없다”며 “어떤 기준으로 판정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경기장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2023년과 2024년 KBO 스트라이크존 비교 <출처=스포츠투아이·유튜브 ‘야구의 참견’>
일평생 프로야구에 투신한 선수들과 감독의 ‘감’을 단순히 신기술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부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해온 야구의 스트라이크존은 ABS가 준거로 삼은 야구 규정집 속 스트라이크존과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시스템 운영사인 ‘스포츠투아이’가 내놓은 도식 자료에 따르면 ABS가 도입된 올해 프로야구 스트라이크존이 네모 반듯한 것과 달리 인간이 판정했던 지난해의 스트라이크존은 네 모서리가 뭉툭한 원에 가까운 모양이었습니다. 황재균 선수가 분개했던 그 공 역시 타자 무릎을 스치듯 들어간 몸쪽 아래 꽉찬 공이었죠.

또 포수가 포구 순간 글러브를 존 안으로 이동시키는 ‘프레이밍’ 기술, 투수의 제구력에 대한 기존의 평가, 기세(?) 등 다양한 요소가 버무려진 기존의 스트라이크존과 함께 지내왔던 프로 선수들에게는 자로 잰듯한 ABS 시스템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

판정 논란 없어질 신호탄 될까...축구·체조·농구 곳곳 ‘로봇 심판’ 도입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일본이 거함 스페인을 잡아낸 원동력이 됐던 ‘1mm의 기적’. 공이 라인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는 판정을 통해 다음 플레이에서 이뤄지는 결승골이 최종 인정됐다. <출처=AP>
예상컨대 한국 프로야구는 잠시간의 과도기를 겪은 뒤 이 AI 심판에 빠르게 적용하고 명경기를 쏟아낼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스포츠세계 곳곳에서는 정확한 신기술이 인간 심판을 대체하거나 역할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나온 테니스의 호크아이 시스템은 이제 경기에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동작을 보이는 체조분야에서도 AI 채점기가 인간 심판을 돕습니다. AI 채점기는 기존 선수들의 연기와 규칙을 학습하고, 카메라를 통해 실제 선수가 연기할때 관절 움직임을 파악해 점수를 내는 것입니다.

신기술 심판에 가장 적극적인 스포츠중 하나가 축구입니다. 22명이 선수들이 뒤엉키는 피치 위에서 선수들과 90분간 함께 뛰는 축구 심판들의 판정은 잊을만하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17년부터 비디오보조심판(VAR·Video Assistant Referees)을 통해 오프사이드 반칙, 패널티지역 반칙, 골라인 여부 등에 대해 고화질 카메라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인 일본과 스페인에선 VAR이 톡톡한 역할을 합니다. 일본의 골이 터진 장면에서 VAR이 아니면 잡아낼 수 없는 불과 몇 mm의 차이로 공이 인플레이 상태인 것이 확인돼 최종적으로 경기 승패를 갈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발 나아가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을 도입해 경기 속도감도 살립니다. 경기장 지붕 아래에 장착된 전용 추적 카메라들를 사용해 선수 몸과 공의 위치를 시시각각 계산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FIFA에 따르면, 이 기술 덕에 오프사이드 판정에 드는 시간이 평균 70초에서 20~25초로 줄어들어 경기의 박진감을 더욱 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조지아 공대 편입상 아유시 파이가 만든 농구 AI 심판 ‘덥드’가 트래블링 반칙을 판단하는 모습 <출처=조지아 공과대학 홈페이지>
판정 논란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농구에서도 신기술을 통해 경기를 보다 공정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의 열혈 농구팬이자 조지아 공대생인 아유시 파이는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의 파울 여부를 AI를 통해 판독하는 시스템인 ‘덥드(dubbed)를 만들었습니다. 이 AI는 3000장이 넘는 농구 사진을 학습해 공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선수의 발목과 손목 위치를 추적해 트래블링, 더블드리블 등 반칙을 감지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파이는 현재 추가적인 데이터와 기능을 통해 슈팅 파울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버전의 ’덥드‘를 개발중입니다.

AI 학습 데이터에 문제는 없나요? 모호한 규칙도 AI심판 도입 걸림돌로
2023년 1월 열린 NBA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LA 레이커스의 경기 마지막 장면. 레이커스의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오른쪽)은 돌파를 통해 버저비터 득점을 노렸지만 상대팀 조엘 엠비드가 손목을 채면서까지 막으며 패배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NBA 사무국은 이 장면이 파울이 불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미한(marginal)’ 접촉에 불과했다고 설명해 논란이 됐습니다. <출처=USATODAY>
이처럼 스포츠 세계에서 AI 등 신기술로 무장한 로봇 심판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거스를수 없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축구 분석업체 ’사커먼트‘의 최고경영자 알도 코미는 “기술 발전에 따라 심판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 도달 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20~30년 안에 AI가 심판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이 현상이 긍정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일뿐”이라고 확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인간 대신 AI나 로봇이 모든 판정을 도맡으면 새로운 문제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대표적으로 AI의 데이터 편향성이 거론됩니다. AI는 이미 주어진 데이터를 통해 학습합니다. 문제는 이 데이터 자체가 이미 편향적으로 구성됐다면 AI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특히 이런 문제는 경기 규칙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심화될 수 있습니다. NBA는 기본적으로 공격수의 진로를 방해하는 수비수의 공격수에 대한 접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미한(marginal)’ 접촉으로 진로나 움직임에 방해가 없을 경우 예외적으로 반칙이 아닙니다. ‘경미한’에 대한 판단은 심판마다 다릅니다. 어떤 심판에겐 경미한 접촉이 다른 이들에게 ‘경천동지’로 취급될 수 있는 문제지요.

인간 심판의 역할이 단순히 현재의 판정을 내리는 것뿐 아니라는 점도 ‘AI 심판 경계론’의 대표적인 주장입니다. 어떤 심판은 경기가 과열될 우려가 있는 경우 보다 강한 판정을 내려 선수들을 진정시킵니다. 반면 경기에 지장이 없는 사소한 위반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나중에 제재하는 ‘집행유예’의 미덕을 발휘하기도 하죠. AI와 로봇은 이런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드라마틱한 승리 뒤에 피해자의 눈물...‘오심이 더이상 경기의 일부 아니어야’
2004년 US오픈 8강 경기에서 억울한 라인 판정을 당하고 항의중인 세레나 윌리엄스 <출처=Gettyimages>
스포츠 세계에서 오랫동안 통용됐던 관용어구중 하나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구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인간의 눈으로만 판정을 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합리화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시 테니스의 호크아이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콧대 높던 프로테니스계가 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배경엔 2004년 US오픈 여자 단식 8강전이 있습니다. 역대 최고의 여자 테니스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그날 네트 건너편의 제니퍼 캐프리아티가 아닌 주심 마리아나 알베스와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인에 걸치며 들어가는 공들을 족족 아웃이라고 판정하는 주심을 보고 윌리엄스는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결국 세트스코어 1-2로 경기에서 패배한 윌리엄스는 “경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기술 발전은 이제 윌리엄스와 같은 피해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이유를 들며 판정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을 거부하는 것은 ‘드라마틱한 승리’를 위해 억울한 피해자를 수없이 만들어내는 책임 회피에 불과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문헌과 외신>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07/jul/11/tennis.wimbledon ◎https://medium.com/@naimsyed12/the-innovation-of-hawkeye-technology-in-sports-officiating-1b8bce502ee9 ◎https://t3chsport.wordpress.com/2018/05/22/thoughts-on-hawk-eye-system/ ◎https://www.vanderbilt.edu/jetlaw/2023/11/13/artificial-intelligence-referees-offsides-and-out-of-bounds/#_ftnref10 ◎https://news.gatech.edu/news/2023/07/25/tech-student-brings-artificial-intelligence-basketball-officiating ◎https://barcainnovationhub.fcbarcelona.com/blog/future-without-human-referees/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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