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심판이야” 스포츠계 판 흔드는 AI심판[올어바웃스포츠]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2012년 인터뷰를 통해 도입 6년차인 테니스의 ‘호크아이 시스템’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불신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수십대의 카메라로 공의 궤적을 추적해 ‘인-아웃’을 판단하는 이 시스템은 2006년 프로테니스협회(ATP) 투어에 도입된 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인간 심판의 판정 오차범위는 30~40mm인 반면 호크아이는 3mm 이하의 오차만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페더러는 선수 생활 말년까지 ‘안티 호크아이’의 대표주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기계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죠.
테니스판 ‘러다이트’ 운동은 요새 한국 프로야구를 들었다놨다 하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투구판정 시스템) 논란을 연상케 합니다. 최근 KT 위즈의 베테랑 내야수 황재균 선수는 ABS 판정에 격분을 참지못하고 항의해 퇴장을 당하는가 하면, 리그 대표 투수 류현진 선수도 시스템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정상권 선수들의 말처럼 ABS 도입은 시기상조였던 것일까요? 나아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내리는 판정은 스포츠경기의 적용에 더욱 신중해야하는 것일까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허구연 총재의 결단으로 세계 프로야구 1군 리그중엔 처음으로 ABS를 도입하게 됩니다. 응원팀 경기를 보다가 이해못할 스트라이크 판정에 속이 터지는 팬들 대부분이 쌍수를 들고 환영한 조처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경기에 뛰는 선수들과 감독·코치진은 아직 시스템에 대한 신뢰감이 높지 않습니다. 경기장마다 존 설정이 다르다는 불만부터 판정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립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구장마다 스트라이크 존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투수와 타자 모두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한술 더 떠 “현장에서 불만이 많고 믿을 수가 없다”며 “어떤 기준으로 판정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경기장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포수가 포구 순간 글러브를 존 안으로 이동시키는 ‘프레이밍’ 기술, 투수의 제구력에 대한 기존의 평가, 기세(?) 등 다양한 요소가 버무려진 기존의 스트라이크존과 함께 지내왔던 프로 선수들에게는 자로 잰듯한 ABS 시스템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
앞서 나온 테니스의 호크아이 시스템은 이제 경기에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동작을 보이는 체조분야에서도 AI 채점기가 인간 심판을 돕습니다. AI 채점기는 기존 선수들의 연기와 규칙을 학습하고, 카메라를 통해 실제 선수가 연기할때 관절 움직임을 파악해 점수를 내는 것입니다.
신기술 심판에 가장 적극적인 스포츠중 하나가 축구입니다. 22명이 선수들이 뒤엉키는 피치 위에서 선수들과 90분간 함께 뛰는 축구 심판들의 판정은 잊을만하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17년부터 비디오보조심판(VAR·Video Assistant Referees)을 통해 오프사이드 반칙, 패널티지역 반칙, 골라인 여부 등에 대해 고화질 카메라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인 일본과 스페인에선 VAR이 톡톡한 역할을 합니다. 일본의 골이 터진 장면에서 VAR이 아니면 잡아낼 수 없는 불과 몇 mm의 차이로 공이 인플레이 상태인 것이 확인돼 최종적으로 경기 승패를 갈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발 나아가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을 도입해 경기 속도감도 살립니다. 경기장 지붕 아래에 장착된 전용 추적 카메라들를 사용해 선수 몸과 공의 위치를 시시각각 계산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FIFA에 따르면, 이 기술 덕에 오프사이드 판정에 드는 시간이 평균 70초에서 20~25초로 줄어들어 경기의 박진감을 더욱 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미국의 열혈 농구팬이자 조지아 공대생인 아유시 파이는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의 파울 여부를 AI를 통해 판독하는 시스템인 ‘덥드(dubbed)를 만들었습니다. 이 AI는 3000장이 넘는 농구 사진을 학습해 공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선수의 발목과 손목 위치를 추적해 트래블링, 더블드리블 등 반칙을 감지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파이는 현재 추가적인 데이터와 기능을 통해 슈팅 파울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버전의 ’덥드‘를 개발중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인간 대신 AI나 로봇이 모든 판정을 도맡으면 새로운 문제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대표적으로 AI의 데이터 편향성이 거론됩니다. AI는 이미 주어진 데이터를 통해 학습합니다. 문제는 이 데이터 자체가 이미 편향적으로 구성됐다면 AI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특히 이런 문제는 경기 규칙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심화될 수 있습니다. NBA는 기본적으로 공격수의 진로를 방해하는 수비수의 공격수에 대한 접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미한(marginal)’ 접촉으로 진로나 움직임에 방해가 없을 경우 예외적으로 반칙이 아닙니다. ‘경미한’에 대한 판단은 심판마다 다릅니다. 어떤 심판에겐 경미한 접촉이 다른 이들에게 ‘경천동지’로 취급될 수 있는 문제지요.
인간 심판의 역할이 단순히 현재의 판정을 내리는 것뿐 아니라는 점도 ‘AI 심판 경계론’의 대표적인 주장입니다. 어떤 심판은 경기가 과열될 우려가 있는 경우 보다 강한 판정을 내려 선수들을 진정시킵니다. 반면 경기에 지장이 없는 사소한 위반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나중에 제재하는 ‘집행유예’의 미덕을 발휘하기도 하죠. AI와 로봇은 이런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테니스의 호크아이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콧대 높던 프로테니스계가 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배경엔 2004년 US오픈 여자 단식 8강전이 있습니다. 역대 최고의 여자 테니스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그날 네트 건너편의 제니퍼 캐프리아티가 아닌 주심 마리아나 알베스와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인에 걸치며 들어가는 공들을 족족 아웃이라고 판정하는 주심을 보고 윌리엄스는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결국 세트스코어 1-2로 경기에서 패배한 윌리엄스는 “경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기술 발전은 이제 윌리엄스와 같은 피해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이유를 들며 판정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을 거부하는 것은 ‘드라마틱한 승리’를 위해 억울한 피해자를 수없이 만들어내는 책임 회피에 불과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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