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SPC 허영인 회장, 노조탈퇴 실적 ‘일일보고’ 받아”

배지현 기자 2024. 5. 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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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소장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2월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허영인 에스피씨(SPC) 그룹 회장이 “파리바게뜨 지회 (조합원) 숫자를 줄여서 시위할 수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조와해 작업을 주도한 정황을 검찰이 파악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허 회장은 지난달 21일 구속기소됐다.

3일 한겨레가 확보한 허 회장 등 에스피씨 관계자들의 공소장을 보면, 허 회장은 2021년 1월 서울 서초구의 본사 회장실에서 황재복 대표이사에게 “파리바게뜨지회는 1인당 1만5000원씩 월급에서 조합비를 공제해 (매달) 약 1000만원에 가까운 조합비가 징수되니 그 돈으로 매일 시위하는 것 아니냐”며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노조탈퇴 작업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파리바게뜨지회는 임금 인상 등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허 회장 자택 근처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황 대표이사는 노무관리 총괄 전무 등에게 ‘더 이상 파리바게뜨지회와 같이 갈 수 없다’며 허 회장 지시를 전달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허 회장은 민주노총 탈퇴 작업이 시작된 뒤인 2021년 3월부터 황 대표이사로부터 노조 탈퇴 실적을 ‘일일보고’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허 회장이 “왜 실적이 적냐, (노조원들) 정리를 안 하나. 속도가 늦다”고 황 대표이사를 질책하고,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 탈퇴 종용 작업을 더욱 신속하게 하라”고 지시하는 등 노조 탄압 방침을 공고히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런 발언 등을 근거로 허 회장의 지시에 따라 민주노총 조합원 없는 일명 ‘클린 사업장’을 목표로 한 노조 와해 작업이 에스피씨 기업 차원에서 진행됐다고 봤다.

지역 사업부장들이 중간 현장관리자(BMC·FMC)들에게 ‘조합 탈퇴 실적’을 독촉했고, 이에 일부 현장관리자들이 매장이나 집 근처로 제빵기사들을 직접 찾아가 ‘승진이 안 될 수도 있으니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라’고 종용한 정황도 담겼다. 실제 에스피씨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승진인사 정성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부여해 불이익을 줬다. 그 결과 2021년2월부터 2022년7월까지 민주노총 조합원 570여명 가운데 560여명이 노조에서 탈퇴했다.

허 회장이 2017년 12월 ‘민주노총 힘빼기’를 위해 한국노총 소속 노조의 조합원 확보를 지원한 정황도 담겼다. 검찰은 허 회장이 황 대표이사에게 사실상 ‘어용노조’인 한국노총 피비파트너즈 노조(피비노조)가 설립됐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뒤 “사측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피비노조가 당연히 설립돼야 한다”며 “피비노조와 앞으로 잘 해보라”고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2019년 7월 민주노총 소속의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근로자 대표로 선출되자, 허 회장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노사관리를 어떻게 해서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오느냐”며 황 대표이사를 크게 질책한 뒤 노사책임자를 경질했고, 사쪽에 친화적인 피비노조 조합원 수를 과반수로 늘려 임 회장의 근로자 대표 지위를 박탈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실제 임 지회장은 민주노총 노조 조합원 수가 급감하면서 근로자 대표 지위를 상실했다.

허 회장은 한국노총 소속 피비노조의 운영에 개입한 혐의도 받는다. 2022년 에스피씨 그룹을 대상으로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가 출범하자, 허 회장은 ‘피비노조에 부탁해서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에 응하지 않겠다’는 황 대표이사의 보고를 승인했고, 이에 따라 피비노조 쪽은 사회적 합의 이행에 반발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는 등 노사 갈등을 ‘노노 갈등’으로 비치게 만들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한겨레는 에스피씨와 허 회장 쪽에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차례 연락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임삼빈)는 지난달 2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허 회장을 구속기소하고, 에스피씨와 계열사인 피비파트너즈 전현직 임원 16명, 피비파트너즈 법인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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