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회사인줄 알았더니 쓴 뷰티 기업? 동국제약의 반전[안재광의 대기만성's]

2024. 5. 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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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하는 사업을 들여다보면 ‘이 회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요. 예를 들어 HD현대라는 회사가 있죠. 옛날 현대중공업 그룹이요. 이 회사가 조선사인 줄 알았는데, 매출을 보니까 정유사업이 더 크더라고요. 동아제약도 제약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뜯어보니까 음료 회사라고 불러도 될 만큼 박카스에서 나오는 매출이 컸습니다.

 이번에 다룰 이 회사도 생각과는 좀 달랐는데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의약품이 엄청 많습니다. 잇몸약으로 유명한 ‘인사돌’, 상처 나면 바르는 ‘마데카솔’, 혓바늘 연고의 대명사 ‘오라메디’ 등등이 있는데요. 그런데 이 회사의 반전은 이런 국민 약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생활용품 기업, 혹은 뷰티 기업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쪽에서 매출이 많이 나옵니다. 이번 주제는 ‘제약사의 탈을 쓴 뷰티기업’ 동국제약입니다.


 ◆인사돌·마데카솔·오라메디…국민약 줄줄이 내놔

동국제약은 권동일 회장이란 분이 1968년에 설립했습니다. 제약사를 다니다가 뛰쳐 나와서 창업을 했다고 하죠.

 원래는 해외에서 약을 가져와서 국내에서 파는 걸 하다가 ‘자기 약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약품 개발에 나서게 됐는데요. 근데 막 창업한 제약사가 시장을 뚫는 게 당연히 쉽진 않았겠죠. 1970년대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이 소화제, 항생제였는데요. 이런 약들은 이미 큰 제약사가 차지하고 있었고요. 큰 제약사가 없는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해서 본 게 잇몸약 시장입니다.

 이 시절엔 잇몸약 시장 자체가 없었어요. 하지만 권동일 회장은 이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치솟질도 잘 안 했고요. 흡연율도 굉장히 높을 때였는데요. 아무데서나 막 담배 피울 때였죠. 비행기 타면 재떨이 있는 것 보셨을 겁니다.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울 정도였어요. 흡연은 잇몸병 유발 요인 중 하나죠. 이런 상황에서 동국제약은 1978년에 인사돌을 내놔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프랑스 제약사로부터 상처 연고 성분을 수입해서 마데카솔 연고도 선보였고요. 그 시절엔 상처 나면 ‘빨간약’밖에 없었잖아요. 그런데 다친 데 발라도 티도 안 나고 회복도 빨라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잘 팔린 게 약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마케팅을 워낙 잘한 것도 있습니다. 인사돌, 마데카솔 광고는 TV만 틀면 나왔어요. 모델도 상당히 인지도 있는 배우나 연예인이 많이 했는데요. 송해 선생님을 비롯해서 최불암, 이순재, 고두심 같은 원로 배우들이 여기 모델을 두루 거쳐 갔습니다.

 마케팅의 힘으로, 혹은 약의 효능으로 성장을 하긴 했지만요. 권동일 회장이 63세의 나이에 2001년 세상을 떠나면서 동국제약이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장남이 회사를 갑자기 맡게 됐는데요, 지금도 회사를 이끌고 있는 권기범 회장이죠. 이때 나이가 34살이었어요. 회사 말아먹기 딱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 반대였습니다. 권기범 회장은 제2의 창업이라고 해도 될 만큼 회사를 엄청나게 성장시킵니다.

 사실 창업주 때까지만 해도 매출이 300억원대의 중소기업이었어요. 인사돌, 마데카솔, 오라메디 같은 걸 일반의약품(OTC)이라고 하는데요. 권기범 회장은 우선은 동국제약의 강점인 일반의약품 시장에서 품목을 엄청나게 확장해요. 여성 갱년기 치료제 ‘훼라민Q’, 탈모 치료제 ‘판시딜’, 정맥순환 개선제 ‘센시아’, 치질약 ‘치센’ 등등을 계속 내놨어요. 어디선가 다 들어본 약이죠. 해당 분야에서 대부분 1등입니다. 훼라민Q는 국내 시장점유율이 70%를 넘는 압도적 1등이고요. 치센 점유율도 50%나 하죠. 또 인사돌과 마데카솔, 오라메디도 시장점유율이 30% 안팎에 달합니다.

 

 ◆마데카솔 연고가 화장품·뷰티기기로 확장

대한치주과학회와 동국제약 주최로 지난 3월 열린 '제16회 잇몸의 날' 행사에서 배우 최불암이 건강한 잇몸을 위한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문제는 이런 일반의약품만으론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시장이 작거든요. 제약사로 크게 성공하려면 의사가 처방을 해주는 훨씬 큰 시장인 전문의약품(ETC)에서 승부를 해야 하는데요. ETC 쪽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버티고 있어서 경쟁하는 게 쉽진 않습니다.

 그래서 권기범 회장은 일반의약품에서 번 돈을 전문의약품 쪽에 투자를 하고요. 한편으론 뷰티 사업에 뛰어들어요. 갑자기 뷰티 시장이 나오니까 당혹스러울 수 있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뷰티 업계 트렌드는 화장을 하는 게 아니라 피부 자체를 좋게 하는 겁니다. 이 트렌드에 동국제약이 올라타요.  

 상처 연고 마데카솔이 동국제약엔 있잖아요. 이 연고에 피부 재생 효능 물질이 있는데요, 이걸로 화장품을 만든 겁니다. 2015년 내놓은 ‘센텔리안24 마데카 크림’이란 제품인데요. 센텔리안은 마데카솔의 주 성분이고요, 24는 24시간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얼마나 팔릴까 했는데 ‘대박’이 났습니다. 특히 TV홈쇼핑에서 많이 팔렸는데요. 마데카솔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우선 인지도가 높고요. 마데카솔 성분을 화장품으로 바르면 상했던 피부가 좋아질 것이란 이미지까지 생겨서 중장년 여성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구매했어요. 지금까지 5000만 개 넘게 팔렸다고 해요. 크림 말고도 손 안 대고 바르는 스틱형, 밀도를 더 촘촘하게 한 세럼, 남자들을 위한 옴므 라인으로 다양하게 확장했어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발 더 나가서 피부미용기기까지 내놓습니다. ‘마데카 프라임’이란 것인데요. 피부과나 클리닉 가면 있는 기계 같은 것인데요. 이걸 집에서 할 수 있게 변형했어요. 화장품 바르면 피부 속까지 깊숙하게 넣어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또 피부를 하얗게 해주는 미백 기능, 피부 탄력을 회복하는 기능도 있다는데요. 이게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많이 팔리긴 했습니다. 작년 5월에 내놨는데 그해에만 200억원어치 넘게 팔렸어요. 최근엔 프리미엄 모델도 내놨는데요. 가격이 기존 제품의 세 배인 100만원도 넘습니다.

 이런 미용기기를 팔면 좋은 게 단순히 기계만 팔리는 게 아니라 화장품도 같이 팔리거든요. 기계 많이 팔아 놓으면 화장품 매출은 자연히 늘어난다는 얘깁니다. 올해는 뷰티 기계 매출로만 5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요.

 이런 식으로 권기범 회장이 사업을 확장해서 동국제약은 2023년 기준으로 매출이 7000억원을 넘었어요. 선친 시절에 비해 매출을 20배 넘게 키워 놓습니다. 더 대단한 게 매출이 계속 꾸준하게 늘고 있다는 점인데요. 2009년 이후 단 한번도 매출이 감소한 적이 없습니다. 사업 구조도 탄탄해졌어요. 화장품이나 미용기기 같은 헬스케어 사업부가 전체 매출에서 32% 정도 차지하고요. 인사돌, 마데카솔 같은 일반의약품이 20%, 전문의약품이 25% 정도 합니다. 

 물론 모든 걸 다 잘하는 건 아니에요. 약점도 있습니다. 매출이 계속 늘고 있는데 반해 이익률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데요. 2020년 한때 15%를 넘었던 영업이익률이 2023년엔 9%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탓에 영업이익은 최근 몇 년째 정체 상태이죠.

 화장품이나 뷰티기기는 시장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서 광고나 판촉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관련 비용을 계속 늘려서 수익성이 안 좋아졌어요. 광고비만 마데카 프라임 나오기 전만 해도 분기당 100억원 미만이었는데요, 제품 나오고 나선 150억원 안팎으로 크게 늘었고요. TV홈쇼핑에 주는 판매수수료도 분기당 200억원을 넘겼습니다. 회사 측은 그래서 요즘 TV홈쇼핑 비중을 낮추고 자사몰로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어요.

 2024년 한국 증시 첫 상장 기업은 에이피알이란 회사였는데요. 청약 경쟁률이 1000대 1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했습니다. 몸값, 그러니까 시가총액은 상장 초반 한때 4조원을 넘겼고요.

 이 회사의 주력사업이 바로 뷰티기기입니다. 동국제약의 마데카 프라임과 비슷한 제품을 판매해요. 물론 동국제약에 비해 시장 장악력은 훨씬 높아서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요. 동국제약이 만약 마데카 프라임으로 올해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인다면 에이피알 버금가는 관심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국제약이 일반의약품 시장에서 쌓은 마케팅 노하우를 잘 활용하고 최근 뷰티 업계의 트렌드인 이너 뷰티, 내적 아름다움이란 콘셉트를 잘 살린다면요. 동국제약이 아니라 앞으로 동국화장품, 동국뷰티로 불러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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