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홍철의 딸’ 아닌 ‘여서정’으로 다시 날다

장필수 기자 2024. 5.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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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

여서정은 1996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아버지 여홍철의 딸을 넘어 오롯이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지만, 속은 까맣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여서정은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23 세계체조선수권대회 도마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내 또다시 한국 여자체조 역사를 새로 썼다.

여서정은 다시 한 번 도마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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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2024, 우리가 간다] 여자체조 주장 여서정
여서정(가운데)이 지난 2022년 10월8일 오후 울산 중구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기계체조 여자일반부 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여서정은 이날 여자일반부 단체전 2위를 차지하며 은메달도 목에 걸었다. 연합뉴스

“네가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이 끝난 뒤 어머니는 딸에게 은퇴를 권했다. 여서정(21·제천시청)이 도쿄 대회에서 거머쥔 동메달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여자 도마에서 따낸 금메달은 한국 여자체조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었다. 선수로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에 여서정은 운동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산이 높았던 만큼 골도 깊었던 것일까. 여서정은 1996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아버지 여홍철의 딸을 넘어 오롯이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지만, 속은 까맣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엄격한 선수촌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주변의 기대가 가슴을 짓눌렀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나면, 홀로 방에 앉아 어머니와 전화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몸까지 아파오면서 마음은 급격히 무너졌다. “올림픽 이후 그간 누적된 긴장이 확 풀리면서 허리 디스크 통증 때문에 2021년 8월부터 12월까지 그냥 쉬었어요.” 여서정은 처음으로 “일주일 쉬면 3주를 고생해야 하는 스포츠”인 체조를 5개월간 내려놓았다.

체조 선수 여서정이 경기 용인시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은 오래갔다. 여서정은 이듬해 열린 2022 세계체조선수권대회 여자 도마 결선에서 8명 중 7위를 기록했다. 그는 지금도 이 대회를 “가장 아쉬운 대회”로 꼽으며 “체조는 자신이 원하는 기술을 하기 위해 몸이 잡혀 있어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합을 뛰어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올림픽 동메달로 이끌었던 기술 ‘여서정’(공중 720도를 비트는 동작·난도 5.8점)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환희와 고통이 이어졌던 시간은 여서정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 한때는 ‘부모님이 체조를 안 했었으면 좋았겠다’고 푸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체조를) 해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후광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으면서 본인에게 적합한 훈련 방식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코치님의 말을 무조건 따랐다면, 이제는 의견 조율도 하고 제게 필요한 게 뭔지 알아가면서 내적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체조를 대하는 태도도 한층 너그러워지면서 성적도 반등하기 시작했다. 여서정은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23 세계체조선수권대회 도마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내 또다시 한국 여자체조 역사를 새로 썼다.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막내였던 그는 이제 주장이자 맏언니로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여자체조 대표팀을 이끈다. 후배 4명(신솔이, 이다영, 이윤서, 엄도현)과 함께 단체전과 개인전에 참가한다. 한국 여자체조 역사상 올림픽 단체전 출전은 36년 만이다. 여서정은 다시 한 번 도마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체조 선수 여서정. 올댓스포츠 제공

체조 선수로서는 전성기를 지나고 있는 시점, 파리올림픽은 ‘국가대표’ 여서정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일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부상을 달고 살며 “안 아픈 데를 찾는 게 더 힘든” 상황이지만, 그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쉬움은 없나’라는 물음에는 “인생에서 올림픽은 한번 가기도 어려운 시합이다. 두 번 참가하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딱히 아쉬움은 없다”고 답했다. 여서정은 독자 기술인 ‘여서정’을 구사하며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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