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왜 ‘은둔의 명주’ 몰도바 푸카리를 사랑했나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4. 5. 3. 07: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몰도바 기원전 7000년전부터 포도재배/몰도바 ‘1호’ 공식 와이너리 푸카리 12세기부터 와인생산/1878년 파리세계박람회 금메달 받으며 세계적 명성 얻어/‘피노누아 드 푸카리’ ‘신의 물방울’에도 등장

몰도바 1호 와이너리 푸카리. 인스타그램
여기 인구 330만명의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국민의 3분의 1이 와인산업에 종사합니다. 특히 생산 와인의 80%를 수출해 세계 12위의 와인 수출국에 올랐다니 정말 ‘와인에 진심’인 나라입니다. 바로 기원전 7000년전부터 포도를 재배한 몰도바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에 끼어 있는 흑해 연안의 나라 몰도바가 생산하는 와인은 과연 어떤 맛일까요.
몰도바 푸카리 포도밭 전경. 인스타그램
몰도바 4개 와인산지. 몰도바와인협회
◆몰도바 와인 역사

몰도바 와인의 역사는 기원전 70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갑니다. 돈두세니(Donduseni) 지구 나슬라브체아(Naslavcea) 마을 인근에서 3기 신생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포도종 비티스 테토니카(Vitis Teutonica) 잎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또 플로레스티(Floresti) 지구 부르숙(Bursuc) 마을에선 2300만년에 시작된 중신세의 것으로 추정되는 포도씨가 발견됐습니다. 이런 유물 등을 토대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기원전 6000~4000년 전 쿠쿠테니-트리필리아(Cucuteni-Trypillia) 문화시대에 몰도바 땅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가축을 기른 것으로 짐작됩니다. 당시 주민들은 밀, 보리, 수수, 귀리, 완두콩, 완두콩과 같은 곡물과 함께 앵두, 자두, 채소, 그리고 포도를 재배했으며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여러 정착지에서 포도씨앗이 발견됐답니다.

몰도바 대표 품종. 몰도바와인협회
푸카리를 사랑한 영국 여왕과 러시아 황제. 
◆몰도바 1호 공식 와이너리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영국의 조지 5세와 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2세까지. 이들이 공통으로 사랑한 와인이 있답니다. 몰도바 1호 공식 와이너리인 샤토 푸카리(Chateau Pucari)입니다. 이 와인은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즉위식에도 사용됐고 지금도 영국 왕실에 납품되고 있습니다. 이에 ‘영국 여왕의 와인’ ‘러시아 황제의 와인’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1827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베사라비아(Bessarabia) 지역 최초의 와이너리로 샤토 푸카리를 지정하고 전문와인제조 허가장을 내리는 특별 법령을 발표합니다. 몰도바 1호 공식 와이너리가 샤토 푸카리인셈입니다. 베사라비아는 제정 러시아 시절 현재의 몰도바 땅을 일컫던 역사적 지명입니다.

네그루 드 푸카리. 인스타그램
하지만 푸카리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12세기까지 올라갑니다. 이미 12세기 말 몰도바의 와인 산업은 동남부 유럽 경제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몰도바가 포도 재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지녔기 때문인데, 특히 몰도바에서도 푸카리 마을 포도밭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보르도와 위도, 토양, 기후가 매우 흡사한 덕분입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을 이를 간파하고 18세기부터 푸카리 마을의 아곤 조그라프(Agon Zograf) 수도원와 파트너십을 맺고 특별한 와인을 만들어 내면서 푸카리의 와인 역사가 시작됩니다.
네그루 드 푸카리. 인스타그램
푸카리는 1878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바로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 입니다. 카베르네쇼비뇽 55%에 조지아 토착품종 사페라비(Saperavi) 40%, 몰도바 토착품종 라라 네그라(Rara Neagra) 5%를 섞어 프렌치 오크배럴 18개월 숙성합니다. 코에 갖다대면 블랙체리, 블랙플럼 등 검은과일과 무화과, 샤프란 등의 허브향이 느껴지고 시간이 지나면 진한 쵸콜릿향이 올라옵니다. 단단한 골격을 지녔지만 탄닌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신선한 산도가 잘 뒷받침되는 밸런스가 좋은 와인입니다.
피노누아 드 푸카리. 최현태 기자
피노누아 드 푸카리 메달 수상.  인스타그램
◆‘신의 물방울’도 극찬한 푸카리 피노누아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15권에도 ‘영국 왕실에서 사랑하는 몰도바 공화국의 숨은 명주’로 푸카리 와인이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토착품종이 아닌 피노누아입니다. 몰도바와인협회에 따르면 몰도바 피노누아 생산량은 프랑스,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에 오를 정도로 피노누아 생산에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피노누아 드 푸카리(Pinot Noir de Pucari)는 유럽와인의 클래식한 품격에 신세계가 주는 발랄함과 모던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매혹적인 와인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피노누아 100%로 만들며 프렌치 오크배럴에서 6개월 숙성합니다. 딸기, 레드체리, 라즈베리의 과일향, 제비꽃향이 잘 표현되고 벨벳같은 탄닌과 과하지 않은 오크숙성에 오는 깊은 복합미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푸카리 프리덤 블렌드.  인스타그램
◆자유를 갈망하는 프리덤 블렌드

푸카리 프리덤 블렌드(Pucari Freedom Blend)는 조지아 토착품종 사페라비(Saperavi) 65%, 몰도바 토착품종 라라네그라(Rara Neagra) 20%, 우크라이나 토착품종 바스타르도(Bastardo) 15%를 섞어서 프렌치 오크배럴에 12개월 숙성합니다. 신 체리, 레드체리, 크랜베리, 붉은 건포도향으로 시작돼 온도가 오르면 말린 자두로 이어지고 스파이시한향과 숲속의 젖은 흙, 가죽 등 3차 풍미도 잘 느껴집니다. 세 나라를 대표하는 토착 품종 세가지를 섞은 이유가 있습니다. 몰도바, 조지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지 20주년을 맞은 2011년 탄생한 와인으로 ‘결코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모든 사람들의 와인이며, 자유의 와인’이란 철학을 담았답니다. 이 때문에 푸카리 프리덤 블렌드는 ‘조지아의 심장’ ‘몰도바의 떼루아’ ‘우크라이나의 자유정신’이 모두 깃든 와인이라 불립니다.

푸카리 프리덤 블렌드.  인스타그램
우크라이나 품종 바스타르도는 원래 프랑스의 쥐라가 고향인 품종으로 보통 트루소(Trousseau)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스타르도와 사페라비를 교배해서 만든 품종이 바스타르도 마가라츠스키(Bastardo Magarachsky)인데 이는 1949년에 우크라이나의 마가라츠(Magarach) 연구소에서 탄생했습니다. 2016년 기준 이 품종은 몰도바에서만 180ha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푸카리 프리덤 블렌드에서 바스타르도가 우크라이나의 자유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 바스타르로 마가라츠스키 품종이 우크라이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푸카리는 러시아 침공 이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 5000여명를 돕는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와이너리가 운영하던 호화 스위트룸, 테이스팅룸 등을 긴급 숙박시설로 제공해 CNN, 워싱턴포스트 등 많은 언론들이 국제사회를 돕는 푸카리의 행보를 보도했습니다.
페테아스카 드 푸카리.  인스타그램
푸카리 와이너리 전경. 인스타그램
◆신이 축복한 땅, 푸카리 포도밭

현재 푸카리 와인은 몰도바 와인 전문 수입사인 차르와인을 통해 국내에 수입되고 있습니다. 푸카리 와인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오랜 역사와 함께 뛰어난 떼루아를 지닌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푸카리 포도밭은 해발 120~150m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포도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춰 몰도바에서도 가장 축복 받은 땅으로 불립니다. 불과 60km 떨어진 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인근 드네스트르 강에서 형성되는 안개가 추운 겨울에 포도밭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여름에는 포도가 천천히 완숙하게 만듭니다. 특히 배수가 잘 되고 칼슘이 풍부한 비옥한 흑토 역시 푸카리 와인의 명성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카베르네 소비뇽 드 푸카리. 최현태 기자
카베르네 소비뇽 드 푸카리. 인스타그램
현재 매년 100만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 하고 있는 푸카리 와이너리는 프리미엄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계 수확이 아닌 손수확 방법을 고수해 포도의 품질을 극대화합니다. 또 와인에 깊은 풍미를 부여하기 위해 프렌치 오크배럴에서 3년동안 숙성합니다. 푸카리 와이너리의 프리미엄 라인의 와인은 15~25년 이상의 장기 숙성이 가능한 고품질의 와인으로, 지금 마시기에도 손색이 없지만 장기 숙성하면 더욱 풍성한 복합미가 완성됩니다.

푸카리는 몰도바가 러시아에 통합되고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1980년대 침체기를 겪다가 1991년 독립과 함께 깨어나기 시작했고 2003년 푸카리 와인은 비나리아 푸카리 컴퍼니(Vinaria Purcari Company) 그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전통적인 양조 방법에 현대적인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와이너리는 빠른 속도로 재건됐고 다양한 국제와인품평회에서 200여개 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주목받는 와이너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푸카리 와인셀러. 인스타그램
유라시아와인앤스피릿대회 골드 수상과 비비노 톱1% 와인 마크. 최현태 기자
현재 몰도바 뿐아니라 루마니아, 불가리아에 1450ha 규모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루마니아 프리미엄 와인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몰도바 최대의 와인수출 생산자로 전세계 40여개국에 수출합니다. 푸카리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유명와인매체 디캔터로부터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중앙 및 동유럽 (CEE) 지역 와이너리입니다. 특히 소비자들이 직접 와인을 평가하는 비비노(Vivino)에서 7만건 이상의 리뷰를 바탕으로 평균 평점 4.1점을 받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게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