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뿌셔클럽’이 진짜 ‘뿌수는’ 것 [사람IN]

김영화 기자 2024. 5. 3. 07:3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맛집을 갈 땐 1층인지, 아니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인지부터 확인한다.

"요즘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라 하지만 어쩌면 선의를 발휘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문제로 느끼면 텀블러를 쓴다든지 플로깅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동 문제를 해결하는 건 요원해 보이잖아요." 계단뿌셔클럽이라는 하나의 거점이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장이 된 셈이다.

계단뿌셔클럽의 올해 목표는 홍대 주변과 을지로 등 서울의 주요 핫플을 중심으로 5만 개 계단 정보를 '뿌수는' 일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시사IN 조남진

맛집을 갈 땐 1층인지, 아니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인지부터 확인한다. 혹여 건물 앞에 5㎝ 문턱이라도 있다면 갈 수 없다. ‘핫플’로 불리는 동네였지만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식당 찾는 게 늘 일이었다. IT 회사에서 일하던 박수빈씨(35·오른쪽)와 이대호씨(34)는 점심을 먹으며 자주 푸념했다. “앱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인데, 왜 도대체 이런 서비스는 없는 걸까요?” 지도 앱에 올라와 있는 맛집 리뷰처럼 계단 정보도 알 수 있으면 했다. 기획력 좋은 박수빈씨의 제안에 “한번 사이드 프로젝트로 해보자”라며 이대호씨가 화답했다. 2021년 4월20일 ‘계단뿌셔클럽’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앱을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관건은 동네를 직접 돌아다니며 계단 정보를 하나하나 등록해줄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마케팅 비용도 많지 않은 데다 무턱대고 ‘도와달라’ 호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을 위한 시혜적 활동이기보다는 누구나 느슨하고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박수빈).” 게임 퀘스트를 깨듯 ‘계단정복활동’이라 이름 붙인 것도 그런 이유다. 주말에 산책할 겸, 동네 친구를 만들 겸 나와달라고 홍보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20~30대가 가장 많았는데 이동권 문제에 관심이 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이들부터 그저 주말에 놀거리를 찾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2시간 남짓한 계단정복활동을 마치고 나면 하나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자주 가던 식당들에 이렇게 계단이 많은 줄 몰랐다고. 익숙한 동네가 달리 보였다.

3년 차, 계단뿌셔클럽이 만든 ‘계단정복지도’에는 수도권 1만4000여 개 계단 정보가 등록되었다. 계단이 있는지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있는지까지 사진과 문구로 제시된다. 시민 1400여 명이 정복 활동을 170번 해서 만든 ‘단독’ 데이터다. 이대호씨는 이를 통해 누구에게나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라 하지만 어쩌면 선의를 발휘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문제로 느끼면 텀블러를 쓴다든지 플로깅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동 문제를 해결하는 건 요원해 보이잖아요.” 계단뿌셔클럽이라는 하나의 거점이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장이 된 셈이다.

계단뿌셔클럽의 올해 목표는 홍대 주변과 을지로 등 서울의 주요 핫플을 중심으로 5만 개 계단 정보를 ‘뿌수는’ 일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부업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면서 본업이 되었다. 성과 지표 1%를 높이는 데 치중하기보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고 싶었다고 한다. 문제해결형 멤버십 프로그램 ‘크러셔 클럽’에 돈과 시간을 내고 참여하는 크루도 60여 명으로 늘었다.

이 서비스를 만들고 이용할 주체는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아차나 캐리어를 끌 때, 거동이 어려운 지인과 동행할 때 등 누구나 이동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절하지 않으면 누구나 이동 약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미래의 나와 가족을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박수빈씨의 말이다. 실제로 한 20대 참가자는 할머니와 갈 수 있는 식당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찾았다. 저마다 흩어진 개개인이 느슨한 커뮤니티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며 이대호씨는 생각한다. 진짜 도파민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효능감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고. 가볍고 명랑하게, 계단뿌셔클럽이 깨부수고 있는 건 계단만이 아니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