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출석 시 “족보 금지” “공개사과”…선 넘은 ‘수업거부’ 강요

김윤주 기자 2024. 5.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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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의대 TF 문서로 확인
위반하면 가혹한 처벌 예고
경찰, 일부 의대생 상대 수사중
지난 4월29일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텅 비어있다. 연합뉴스

한양대 일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수업 거부’를 강요하고 이를 어길 시 모든 학생에게 대면 사과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문서로 확인됐다. 경찰은 한양대 일부 의대생들을 상대로 강요·업무방해 혐의로 수사 중이다.

2일 ‘한양대 의대 티에프(TF)’가 작성한 서류와 복수의 한양대 의대생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티에프는 수업 거부에 참여하지 않으면 ‘학습자료 공유를 제한하겠다’며 학생들에게 수업 거부를 사실상 강요했다. 티에프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한양대 의대생들이 집단행동을 위해 자체적으로 꾸린 조직이다. 앞서 교육부는 한양대 의대 티에프가 수업 거부를 강요했다는 등의 제보를 접수해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한겨레가 접한 복수의 한양대 의대생들은 티에프의 강요로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학생들에게 ‘왜 서약서를 내지 않냐’고 묻고, 이른바 ‘족보’로 통하는 ‘학습자료를 공유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설명이었다. ㄱ씨는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만나 “반강제적인 분위기에서 학생들 95%가량이 서약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18일 티에프가 학생들로부터 받은 서약서에는 ‘전국 40개 의과대학이 공동으로 결의한 단체행동의 취지에 동의하며, 한양대 의대가 동맹휴학에 동참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수업 거부·휴학 등에 참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티에프는 서약서를 작성한 학생들에게 서약서를 위반했을 때 가혹한 처벌도 경고했다. 티에프가 학생들에게 보낸 문서를 보면, 전체 학년을 대상으로 공개 사과를 진행하도록 하고, 이른바 ‘족보’로 불리는 ‘학술국 자료’에 대해 영구적으로 접근을 제한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한양대 의대에선 한 학생이 교수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의대 건물 안에선 ‘족보’를 보지 않기로 한 학생들끼리의 약속을 어겨, 전체 학생에게 대면 사과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서약서를 어길 경우 이를 똑같이 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다. ㄱ씨는 “사과하는 것을 보면서 무서웠고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서약서를 위반하는 경우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ㄴ씨도 “대면 사과는 개인의 인격을 모독하고 강하게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의대 티에프가 학생들에게 출석 현황을 인증받겠다고 밝힌 공지. 독자 제공

해당 문서에는 메신저를 통해 ‘출석 인증방’을 운영하고, 학생들이 학교 누리집의 출결 현황을 인증하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티에프 학생 일부가 온라인 강의에 참석해 나머지 참석자 수를 확인하는 등의 방식으로 출석한 사람을 특정하겠다고도 했다. 티에프는 이후 추가 공지를 내어 “온라인 수업을 수강할 경우 단체행동 결의에 모순되고, 출석한 기록이 전산에 남아 교육부에 보고될 위험이 있다. (출결 현황을 인증하면) 학우들이 같이 온라인 수업을 거부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본인만 수업을 거부하고 있진 않은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며 학생들에게 출결 현황이 나오는 화면을 녹화한 영상을 제출하라고 했으나, 수사가 시작되면서 이런 인증을 실제로 받지는 않았다.

이에 반기를 드는 학생들을 향한 공격도 이어졌다. 의대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 등에는 한양대 의대 상황을 교육부에 신고한 의대생이나 수업 거부에 참여하지 않는 의대생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수업 거부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을 ‘악성 종양’을 뜻하는 ‘말리그’에 빗대 ‘한양대 말리그는 걸리면 졸업 못 하겠다. 제발 걸려라’, ‘몰래 수업 듣는 말리그들은 소문이 쫙 퍼졌다’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의대생들은 이런 상황으로 집단행동에 문제의식이 있더라도 이를 드러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ㄱ씨는 “단체행동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있고, 개인 사정으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말조차 꺼내기 힘들다”며 “의대생인 동시에 환자의 가족이자 간호사 등 다른 병원 노동자의 친구로서,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행동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ㄴ씨도 “개인 의사는 신경 쓰지 않고 단체행동에 무조건 참여하도록 밀어붙이는 행태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의사 출신인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는 “단체의 위력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도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이므로 학교의 업무를 방해한 업무방해죄, 다른 학생이 수업을 듣지 못하도록 한 강요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 수업을 듣지 못한 학생이 이를 강요한 학생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성동경찰서는 일부 한양대 의대생에 대해 강요·업무방해 혐의로 수사 중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경찰 수사 결과 (강요·업무방해 혐의 등이) 사실로 확인되면 해당 대학에 학칙에 따른 학생 징계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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