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답 농사 안녕’ 바둑판 논서 기계화 영농…기후변화 따른 재편은 숙제

관리자 2024. 5.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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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60년, K-농업을 말하다] (5) ‘천수답’에서 ‘수리답’으로…경지정리와 수리시설
일제강점기 수리조합서 출발
1945년까지 4만㏊ 경지정리
1960년대 국책사업으로 전환
1990년대 개방 대응 강력 추진
2004년 일반 정책목표 마무리
농업생산성·영농편리성 향상
“정비 방식·보전체계 개편 필요”

과거 하늘만 바라봤던 ‘천수답’ 농사에서 이제는 인간과 기술이 좌우하는 ‘수리답’ 농사로 발전했다. 농업생산기반 정리를 위한 경지정리사업은 농작업 기계화율을 99%까지 높인 것은 물론, 수리·관개 시설의 개선으로 물 걱정 없는 농사를 짓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농업인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참여를 높이며 농업의 대형화·기계화·첨단화에 성공한 사례가 됐다. 우리나라 경지정리·수리시설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톺아본다.

1970년대 포클레인으로 논 경지정리를 하는 모습. 농민신문DB

우리나라 경지정리와 수리조합 역사=경지정리는 농업생산기반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농업용 토지를 물리적으로 개조하는 사업이다. 불규칙하고 세분화한 경지를 적절한 규모로 나누고 농로와 용·배수로 등을 정비한다. 우리나라 농지정리는 농지 구획화와 논 농업의 수리·관개 개선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밭(田)에 물을 공급하면 논(沓)이 되듯, 수리·관개 개선작업은 논 기반 정비의 기본이다.

근대적 형태의 경지정리사업은 일제강점기에 수리·관개 개선을 주도하던 ‘수리조합’ 사업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 수리·관개 개선의 역사는 벼농사 역사와 맞물려 있다. ‘삼국사기’에는 전북 김제의 ‘벽골제’가 330년에 축조돼 농업용수를 공급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수리시설 설치는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 담당하거나 소규모인 경우 다양한 형태의 ‘수리계(水利契) 조직’을 결성해 추진했다. 최초의 수리조합은 1908년 전북 만경강 유역에 설립한 ‘옥구서부수리조합’이다. 이 조합은 전북 군산 ‘미제저수지’ 등을 복구해 옥구면과 미면(현 옥구읍과 미성동) 일대 농지에 물을 공급했다. 이후 1917년 ‘조선수리조합령 및 시행규칙’이 제정돼 토지 소유자 중심으로 수리조합이 활발히 설립되고, 수리개선사업이 추진됐다.

최초로 시작한 경지정리사업은 1925년 11월14일 공사 인가를 받은 전북 익산군 오산면 목천리 지역 400㏊를 구획정리한 것이다. 사업 시행 중 1927년에 ‘조선토지개량령’에 따라 경지정리사업이 토지개량사업에 추가됐다. ‘토지개량령’은 관개배수 설비와 공사뿐만 아니라 토지 교환·분합·개간, 도로·저수지 변경 등 농지 정비에 대한 모든 것을 포함했다. 또한 1929년 5월28일 ‘토지개량 등기처리규칙’이 공포돼 환지 처분에 대한 제도 정비도 이뤄졌다. 환지 처분은 토지 개량 후 종전 토지 소유권자에게 새로운 땅으로 갈음해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경지정리사업은 일본이 독일의 사업을 본뜬 바둑판 모양의 구획정리와 용·배수를 겸용하도록 수로를 설치했을 뿐, 기계화 영농의 기반이 될 농로 설치는 거의 없었다. 이후 1939년 ‘조선토지개량협회’를 발족하고, 1940년 ‘조선수리조합연합회’가 출범하는 등 사업이 확대되면서 1945년까지 4만㏊ 농지의 경지정리가 이뤄졌다.

해방 이후에도 미군정청이 ‘농지개량사업에 대한 기본방침’을 천명하고, 나름대로 농지 기반을 정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치·사회적 혼란과 한국전쟁으로 법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일제강점기에 제정한 법체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엔 수리시설 복구와 재건을 통한 식량난 해결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때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 UNKRA)의 원조를 받기 위한 수리조합이 많이 신설됐다. 1945∼1960년에는 주로 원조자금에 의존해 소규모 용수 개발과 개간·간척만 시행하고, 경지정리사업은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1954년 전쟁 재해 지구의 수리시설 복구 사업으로 경남 고현지구에 수리조합을 설치해 부분적인 경지정리가 추진됐을 뿐이다.

수리조합이 난립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61년 8월25일 ‘수리조합 합병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1군 1조합 원칙’을 정립하고 수리조합 합병을 적극 추진했다. 1962년부터 수리조합이 ‘토지개량조합’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1962년 ‘개간촉진법’에 따라 개간사업이 전국적으로 추진됐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초부터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추진했지만, 당시 쌀 수입에 투입하는 돈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부담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경지정리사업은 단순한 농지기반 정비사업 차원을 넘어 수출 주도 경제정책의 안정적 추진과 우리 사회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정책 과제로 이해되던 시기였다.

경지정리가 잘된 논의 항공사진. 농민신문DB

농민 부담 없애고, 국책사업으로 전환=1960년대에 들어와 불규칙한 농로와 논두렁, 용·배수로의 미비 등으로 농업 생산성 저하와 농작업 불편 문제가 부각되면서 경지정리사업이 1964년 경북 금릉군(현 김천)에서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처음 추진됐다. 1965년에 정부 주도의 사업이 추진됐지만 경지정리 효과에 대한 농민들의 인식은 명확하지 않았다. 더불어 농로 확대와 용·배수로 설치로 경지면적 감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농토를 교환·분합하는 일에 대한 거부감, 농민의 비용 부담 등으로 사업 참여는 저조했다.

1970년 ‘농촌근대화촉진법’ 제정에 따라 ‘토지개량조합연합회’와 ‘지하수개발공사’를 통합해 ‘농업진흥공사(1990년 농어촌진흥공사로 개칭)’를 설립했고, 토지개량조합은 ‘농지개량조합’으로 명칭을 바꿨다. 1971년부터 경지정리사업은 국비 50%, 지방비 30%(도비 15%, 군비 15%), 농민 부담 20%로 정부 부담이 늘고 농민 부담이 줄면서 확대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970년대초부터 대단위농업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대규모 경지정리사업이 추진됐다.

1980년대 이후 정부는 경지정리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사업비 재원에서 국비 부담을 늘리고, 지방비와 농민 부담을 줄여나갔다.

1983년부터는 국비 60%, 지방비 20%, 농민 부담 20%로, 1988년부터는 국비 70%, 지방비 20%, 농민 부담 10%로, 1993년에는 농민 부담을 없애고 국비 80%, 지방비 20%로 추진했다.

1990년대엔 농업 노동력 부족과 농산물 수입 개방에 대응한 농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영농 규모 확대와 농작업 기계화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 때문에 경지정리는 199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추진됐는데, 단일 사업비가 1년간 1조원에 이르는 대대적인 국책사업이었다. 1991년엔 경지정리 조사 대상을 논은 물론이고 밭으로도 확대해 210만9000㏊에 대해 ‘전국 경지정리 실태와 예정지 조사’를 했다. 단순한 경지정리에서 농지종합정비로 전환하기 위해 1991년 8개 지구(1지구/도) 1만533㏊에 대해 시범사업을 하고, 필지 규모를 1∼3㏊로 대구획화했다. 1995년부터 이미 경지정리한 농지를 포함한 대구획 경지재정리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또한 기계화·대형화·첨단화하는 추세에 발맞춰 주요 기계화 경작로 확·포장사업도 추진됐다. 한편 용수 개발(관개 개선)과 경지정리를 마무리한 농지의 경우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자산상의 불이익 때문에 농지 소유자들이 경지정리를 꺼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럼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에 따라 경지정리는 오랜 기간 꾸준히 추진됐다. 2004년경 일반 경지정리사업의 정책 목표는 거의 마무리됐고, 대구획 경지재정리사업은 지속됐다.

경지정리된 논에서 무인헬기를 이용해 농약을 살포하는 모습. 농민신문DB

시대 변화에 발맞춰 농지 재편 필요=경지정리사업은 영농 기계화, 노동시간 절감, 농지 개량에 따른 증산, 물 이용·관리의 효율화, 농로 정비에 따른 유통 개선 효과 등 농업 생산성 제고와 영농 편리성 향상에 기여했다. 또한 농촌 노동력의 고령화와 부족으로 기계 진입이 곤란한 논의 휴경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문제를 해결했다. 경지정리사업은 농업의 경쟁력 제고 차원만이 아니라 부족한 농지의 유지·관리를 위한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경지정리로 전체 논의 84% 수리답화와 벼농사의 기계화율 99%를 이뤘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첨단 기술 변화 등에 맞는 물리적 기반을 새롭게 재편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과제 해결을 위해선 논 기반 정비의 방식과 농지 보전체계의 재편이 요구된다. 또한 벼농사 경영비의 약 32%가 자본 감가상각비인 점을 고려하면, 농기계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농지 소유와 이용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제도·정책의 도입이 필요하다.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경북대 전문경력인사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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