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청정자연이 빚은 ‘와인’…깔끔한 맛 일품

박준하 기자 2024. 5.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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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답사기] (76) 경기 연천 ‘농업회사법인 예진’
성당 미사주 개발 제안받아 시작
양조학 박사따며 품위향상 몰두
‘지니루즈’ ‘디엠진’ 등 4종 판매
최소 3년 숙성…부드럽고 향긋
한식과 잘 맞고 식후에 먹기 좋아
귀리 증류주·쌀막걸리 제조 도전
경기 연천 농업회사법인 예진의 증류주 ‘디엠진’(왼쪽부터), 포트와인처럼 와인에 증류주를 섞은 ‘지니벨르’, 레드와인 ‘지니루즈’. 뒤쪽에 와인을 숙성하는 오크통이 보인다. 연천=이종수 기자

우리나라 와인의 본격적인 시작은 2000년대 초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국산 와인이 대중에게 알려질 즈음 국내에서 생산된 포도는 단맛이 부족해 와인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맛에 대한 기호가 다양해지고 국산 와인 품질이 개선되면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경기 연천에서 생산된 ‘캠벨얼리’ 포도로 와인을 만들며 국산 와인을 지키고 있는 홍정의 농업회사법인 예진(홍스비노)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포도농사는 1998년 연천 물난리로 참외농사를 망친 직후에 시작했어요. 제가 천주교 신자라서 수녀님 소개로 몇몇 수녀원에 포도를 납품하게 됐죠. 그러다 한 신부님이 천주교에서 쓰는 미사주를 개발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어요.”

홍 대표의 와인은 미사주에서 출발했다. 술을 만들기 전 음료사업을 하긴 했지만 독학으로 술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니 한계가 많았다. 그는 10여년간 포도를 재배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술을 만들었다. 와인의 품위가 어느 정도 도달한 후에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해 양조학 박사까지 취득했다.

그가 첫 술을 낸 건 2018년. 3년 숙성한 ‘캠벨얼리’로 빚은 레드와인 ‘지니루즈’(12.5도)와 이를 증류한 ‘디엠진’(38도)이 그 주인공이다. 술 이름의 ‘지니’와 ‘진’은 딸바보인 홍 대표가 딸의 이름 ‘예진’에서 따왔다. 예진은 양조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자식처럼 소중하게 재배한 포도로 만든 술이라서다. ‘디엠진’은 연천 ‘DMZ(비무장지대)’에서도 착안했다. 와인 라벨에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야생동물과 연천의 자연환경을 넣어 지역적인 특색을 살렸다.

“연천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해요. 그런 청정 자연환경에서 자란 포도를 적극 활용한 거죠. 술을 마시는 사람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연천에 대한 특별한 느낌을 가졌으면 했어요.”

이곳에서 나온 술은 현재 네 종류다. ‘지니루즈’와 ‘디엠진’ 외에도 알코올 도수를 달리한 증류주인 ‘N38’(28·48도), 포트와인처럼 와인에 증류주를 섞은 ‘지니벨르’(20도)가 있다.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에서 만드는 와인으로 와인이 발효되는 중간에 증류주를 섞어 도수와 당도를 높게 만드는 ‘주정강화와인’이다. 국내 와이너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와인 가운데 하나다. 홍 대표는 외국 주정강화와인 10여종을 마셔보고 연구하며 ‘지니벨르’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맛은 어떨까. ‘지니루즈’는 마실 때 산미가 도드라지고 목 넘김이 깔끔하다. 처음 마셨을 때보다 두번째 마셨을 때 과일의 풍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물림 없이 마실 수 있고 한식과 페어링(어우러짐)하기에도 좋다. ‘지니벨르’는 ‘지니루즈’보다 단맛이 확연하게 강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질감이 묵직하고 향이 강한 포트와인과 달리 질감이 가볍고 은은한 나무향·자두향이 나는 달콤한 와인이다. 식후 마시는 와인으로 딱 좋다. 증류주는 전반적으로 맛이 부드럽고 깔끔하다. 목을 넘기는 순간 포도향이 향긋하게 밀려온다. 이러한 풍미는 ‘상압다단식 증류기’로 술을 내린 덕분이다. 이 증류기로 술을 증류하면 원료의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지고 술맛이 부드럽게 나타난다.

“와인은 흔히 ‘시간의 술’이라고 해요. 최소 3년 이상 진득하게 숙성해야 술맛이 도수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죠. 꾸준히 오래 숙성시킨 술을 내놓으려 합니다.”

홍정의 농업회사법인 예진 대표가 증류기 앞에서 증류한 술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홍 대표는 와인에서 멈추지 않고 연천에서 나는 농특산품으로 새로운 술 제조에도 도전하고 있다. 연천 귀리로 만든 증류주와 다래와인 등이 그것이다. 또 새로운 양조법을 적용한 연천 쌀막걸리 개발에도 열심이다.

“요즘 쌀이 남아돈다고 하잖아요. 잉여 농산물은 시장 격리나 이벤트성 홍보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주 같은 가공식품으로 소비하는 방안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연천 농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술을 개발하려는 이유이기도 해요. 앞으로는 이를 기반으로 포도밭·와이너리·카페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연천=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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