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인문정신과 합해진 공간의 힘

조재휘 영화평론가 2024. 5.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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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은 인간이 자연 이치에 합치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여겼다.

전통적으로 동양 사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분별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하늘과 땅이 만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면, 인간은 자연의 운행에 따라 성실하게 일하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존재의 생육과 완성을 돕는 조력자가 됐다.

회로 설계에 따라 전자의 흐름이 바뀌듯, 인간 삶은 공간에 매여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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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쓰는 시’

옛 사람은 인간이 자연 이치에 합치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여겼다. 원시 유학에서는 삼재(三才)라 하여 하늘(天)과 땅(地) 사이에 사람(人)이 놓이고, 이 셋이 모여야 비로소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봤다. 전통적으로 동양 사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분별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 스틸 컷.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인간은 단순히 환경에 순응하는 객체가 아닌, 우주 질서를 이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능동적인 주체이자 일원이었다. 하늘과 땅이 만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면, 인간은 자연의 운행에 따라 성실하게 일하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존재의 생육과 완성을 돕는 조력자가 됐다.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2024)는 이러한 참찬화육(參贊化育)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는 서울 선유도 공원부터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서울아산병원과 경춘선 숲길, 오설록 티 뮤지엄 등, 한국의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손길을 거친 공간의 여러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개인 일상에서 묻어나는 사유의 조각이 어떻게 작업의 결과물과 연관되는지, 그 상관관계를 다루고자 한다.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 조경가에 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이 평생을 바쳐 이룬 성취를 기념한다는 단순한 헌정의 의미를 넘어서, 또 다른 의미의 조형(造形)으로 나아가려 한 주제의식의 산물이다. 형식적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에는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인과 한국사회가 상실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점검하려는 작가적 시선의 심도가 있다.

우리는 때로 치유받는 기분이 드는 한편으로는, 저절로 일상을 구성하는 공간과 그 안에서 치르는 삶의 실제를 돌이키면서 착잡한 상념에 젖으며 영화를 보게 된다. 사람의 행복과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의 폐해,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끼리의 관계망도 끊겨버린 소외와 단절의 현실, 극단적인 물화(物化)에 따른 인간 정신 황폐화. ‘땅에 쓰는 시’는 물질적으로는 풍부해졌지만 어느 누구 하나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망설여지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겨눈다.

회로 설계에 따라 전자의 흐름이 바뀌듯, 인간 삶은 공간에 매여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춘선 숲길이 시민 텃밭을 조성하고 도깨비시장과도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면서 지역사회를 활성화한 사례처럼, 공간의 설계, 배치와 구성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전환이 올 수 있다. 자연의 회복을 마냥 기다리기보단 정성스레 보듬고 가꿔 생육을 북돋우며, 장소가 머금은 시간의 흔적과 의미 그리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되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공간을 쓰는 사람의 마음과 풍광을 헤아려 길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는다.


조경가로서 정영선의 화두는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잇는 네트워크의 회복이다. 우리는 홀로 선 외로운 존재가 아니며, 주변 환경과 사람, 우주 만물에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행복해질 수 있음을 영화는 일깨운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존재에 의존할 수 있음으로써 비로소 나도 존재할 수 있다. ‘땅에 쓰는 시’에서 우리는 인문정신과 결합한 공간의 조형이 작지만 강렬한 희망을 빚어내는 걸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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